▲ 이명박 전 서울시장 | ||
그러던 여권과 박 전 대표 진영이 최근 작심한 듯 이 전 시장에 대해 직격탄을 계속 날리고 있다. 일단 1등은 죽이고 봐야 한다는 ‘묵시적 공감대’ 아래 이 전 시장에 대한 전방위적인 후보 검증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의 대응도 초반의 ‘점잖은’ 모습에서 벗어나 ‘독한’ 표정으로 사력을 다해 맞서고 있다. 가랑비에 속옷까지 젖을 상황이 올 경우 지금까지의 지지율 1위에 위기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전 시장은 내외를 가릴 것 없이 펼쳐지고 있는 총체적 후보 검증 공세에서 벗어날 비책을 갖고 있는 것일까.
지난 6월 14일 서울 여의도 용산빌딩 아침 7시 30분. 이명박 전 서울 시장 캠프 요원들이 새 사무실 입주 후 첫 아침 조회를 위해 자유롭게 모여 있었다. 평소 이 전 시장은 농담을 던지는 등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하지만 이날 그의 표정은 단단한 바위처럼 무거워 보였다. 캠프 관계자들도 비장한 분위기에 압도돼 얼굴이 굳어있었다. 자고 나면 하나씩 쏟아지는 ‘이명박 의혹’ 때문인지 1위 후보의 느긋함은 캠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오프닝 행사에서 “좌파 무능 정권의 재집권은 막아야 한다”며 강한 톤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져온 ‘좌파정권’을 비난했다. 이어진 비공개 연설에서는 내부 단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 참석 인사는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최근 캠프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 파 저 파 하면서 편을 가른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조직이든 그런 일들이 있다. 너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일해 달라. 내가 최대한 공평하게 캠프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전 시장의 ‘캠프 내 계파 갈등 직접 언급’은 향후의 본격적인 전투를 앞두고 적전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강한 메시지였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한 참석자는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이 최근 캠프 선거대책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터져 나온 인사 잡음에 대해 직접 언급해 조금 당황했다. 그런 이야기야 있었지만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건 일종의 터부 아니겠는가. 이 전 시장의 말을 들으면서 ‘앞으로 처절한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끼리라도 확실하게 단합해야 한다’는 화합의 메시지로 들렸다. 또한 앞으로 인사 등의 민감한 문제로 내부 갈등을 일으키려는 세력에 대한 공개 경고이기도 하지 않겠는가”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이 최근 들어 샅바를 바짝 당겨 쥐려는 배경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권의 재집권 전략을 그가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가 이번 경선을 화합의 축제가 아닌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제로섬 게임’으로 규정한 것으로 판단, 그에 상응하는 강경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먼저 여권 재집권 전략 부분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자. 그는 지난 6월 13일 경남 지역을 방문해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세상이 날 죽이려 이 난리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며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죽이기’를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의 강한 어조에 놀란 일부 기자들이 “발언이 이례적으로 강경했다”고 하자 이 전 시장은 “총체적 이명박 죽이기가 시작된 것 아닌가 싶다”며 향후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이 전 시장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초기의 전수 방위 대형에서 공격 대형으로 바꾼 것은 여권이 우선 무엇보다 앞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지지율 고공 행진이 쉽게 뒷걸음질 칠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자 여권이 더 이상 방관하다가는 추격의 시점을 놓칠 수 있다고 판단, 전면 공세에 나섰다는 것이 그가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결론을 내린 정세 판단이다.
정치권 전략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권은 본선에서 꺼내놓을 자료를 지금 모두 풀어놓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이 사실상의 대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전 시장 죽이기는 흩어진 여권의 지지층을 복원시키는 동시에 본선에서 상대하기 쉽다고 판단한 박 전 대표를 고를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이명박 대세론을 깰 수 있는 시점이 지금 아니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고 판단해 조금 무리하게 덤비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 전 시장 측이 최근 강경 분위기로 선회한 것은 여권이 이명박 죽이기를 통해 본선을 쉽게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차별화되고 신선한 여권 후보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박 전 대표와의 관계도 이미 막다른 골목에 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시장 캠프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이번 경선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이 전 시장이 판단한 것 같다. 지금 싸움은 누가 먼저 죽이느냐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질됐다. 양측은 검증 카드를 손에 들고 서로의 급소를 정조준하고 있다. 양측의 사생활 부분이 치명상을 입힐 핵폭탄이 될 것이다. 이런 싸움에 무슨 협상이 있고 경선 뒤 아름다운 화합이 있을 수 있겠느냐. 공개적으로는 서로 돕겠다고 하지만 이미 그런 수준은 벗어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지난 13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노무현 대통령. 사진제공=한겨레 | ||
이와 함께 이 전 시장 측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당 안팎의 전방위 검증공세에 적극 대처하지 않을 경우 자칫 경선 가도 초입부터 ‘치명상’을 입고 경선 주도권을 박 전 대표 측에 내준 채 끌려 다닐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여야를 막론한 ‘총체적 공격’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크게 세 개의 전선을 구축하고 반격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째는 현재의 정치 구도를 ‘친이’ 대 정치권 전반의 ‘반이’ 구도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 측은 김혁규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계속 나서서 자신에 대한 흠집 내기를 시도하자 이 사건의 본질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큰 폭탄을 터뜨리고 이와 관련한 여러 자료들이 박 전 대표 캠프에 흘러 들어간 의혹이 있다”며 박 전 대표 캠프와 범여권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주공격 대상은 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전 시장이 최근의 후보 검증 공방에 대해 청와대 배후론을 거론하는 것은 현실성 있는 대응 방안이라고 본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정권의 공작정치에 의해 피해를 본다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여야의 정치공세를 효과적으로 비껴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아직도 정치적으로 건재한 노 대통령과 정면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야권의 유일한 대항마가 자신이라는 점을 각인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노-이 전쟁’에서 제3의 변수로 밀려나기 때문에 두 사람 대결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허점도 없지는 않다. 이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런 전략은 이 전 시장이 현재의 수세적인 국면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수단은 될 수 있지만 박 전 대표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공세적인 전략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리고 이번 공세를 이 전 시장이 막아내지 못하면 여론이 일시에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시장의 두 번째 반격 카드는 박 전 대표와의 전쟁에서 맞불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박 전 대표의 급소라고도 할 수 있는 최태민 목사 문제와 사생활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박 전 대표의 가장 민감한 사생활 부분에 대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느 기자는 “박 전 대표의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도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권 일부 의원들도 정보를 포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그 사실이 알려질 경우 경천동지할 일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이 전 시장 캠프에서는 “박 전 대표도 검증할 부분은 검증해야 한다. 다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는 저쪽의 대응을 보고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일단 두 사람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인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불붙은 양측의 검증 공방이 결국에는 사생활을 포함한 민감한 부분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 시장 측으로서도 고민은 있다.
이 전 시장 캠프 사정을 잘 아는 앞서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 측이 혹시 박 전 대표의 사생활과 관련된 X파일을 쥐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꺼내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여자를 공격한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그의 순결한 이미지를 향해 재를 뿌리다가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리고 박 전 대표의 성격상 그런 민감한 건을 건드렸다가 정말 판을 깨자고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 전 시장 측이 쉽사리 내놓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후보검증 청문회가 열리고 이 전 시장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나빠진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은 현재 박 전 대표의 사생활과 관련해 광범위한 스크린 작업을 하고 있고 동시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제보를 수집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상상황이 왔을 때 꺼내놓을 최후의 무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세 번째는 한반도 대운하 등 정책면에서 완전히 우위를 점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최대한 홍보해 나간다는 것이다. 검증 국면에서 큰 상처 없이 벗어날 경우 국민들을 상대로 큰 정치를 해 나간다는 것이다.
과연 이 전 시장이 검증 전쟁을 이겨내고 끝까지 지지율 1위를 고수할 수 있을지 지금이 최대의 승부처인 셈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