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7일 손학규 전 지사와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왼쪽부터)이 대통합 논의를 위해 자리를 같이했다. 대통합이라는 총론에 의기투합한 손-정 두 유력 주자의 최종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런 가운데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대권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대통합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매개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전 총리 등 범여권 ‘빅3’는 대통합이라는 총론에는 동조하고 있지만 대망론과 관련한 속내는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실제로 친노그룹 소장파 리더격인 김두관 전 장관은 친노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전 총리를 비판하고 나섰고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은 겉으로는 대통합을 역설하면서도 호남표를 의식한 물밑 행보를 걷고 있다. 범여권 대통합 작업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동시에 본격화되고 있는 범여권 대권경쟁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혈투를 예고하고 있는 분위기다. 바야흐로 폭풍전야 모드로 돌입한 범여권 대권 서바이벌 게임을 진단해 봤다.
중도통합민주당이 출범하면서 범여권은 열린우리당-대통합신당파-통합민주당 등 ‘세 지붕 한 가족’으로 재편됐다. 삼각편대가 구축됨에 따라 이들 제 세력들 간의 통합 주도권 장악 및 대권 입지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이 전 총리를 비롯해 김혁규·한명숙·신기남 의원 등 친노주자들이 잇달아 대선출마를 선언했고 정동영 전 의장도 3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어서 범여권 빅뱅과 맞물린 대선지형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합 주도권 경쟁은 제 정파들의 정치생명은 물론 유리한 대선고지 선점 여부를 결정짓는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제 정파들이 대통합을 외치면서도 아전인수식 통합 논리로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합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세력은 열린우리당 2차 탈당파와 ‘민주평화국민회의(국민회의)’ 측이 주도하고 있는 제3지대 대통합파다. ‘기득권 포기’ 카드로 통합 키워드로 자리매김한 김근태 전 의장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문희상 전 의장과 정대철 전 고문,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중진들도 대통합신당을 적극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범여권 빅3로 분류되고 있는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도 사실상 제3지대 대통합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시민사회세력이 주축이 된 국민회의와 재야세력, 범여권 현역의원 34명이 국민경선을 매개로 대통합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명분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우원식 이목희 의원 등 범여권 의원 34명과 국민회의 산하 기구인 국민경선운동본부 인사들은 지난달 25일 범여권 단일 대선후보를 개방형 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으로 선출하기 위한 ‘국민경선추진협의회(국경추)’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국경추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에게 연석회의와 국민경선 참여를 촉구하고 있는데 정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은 이미 국민경선 참여 의지를 밝힌 바 있고 범여권 합류를 선언한 손 전 지사도 여기에 동참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김혁규 의원 등 친노주자들도 질서 있는 대통합을 전제로 국민경선에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어 금주 중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범여권 대선주자 연석회의 결과에 따라 범여권 대통합 향배 및 대선구도 윤곽 또한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들 제3지대 대통합파는 연석회의를 성사시킨 뒤 통합 대세론을 명분으로 대통합신당을 출범시킨다는 전략이다. 국경추는 이미 10월 중에 범여권 단일 후보를 확정한다는 ‘국민경선 로드맵’까지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국경추를 정점으로 한 대통합신당이 순조롭게 출항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국민경선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현행 선거법상 ‘단일 정당’ 형태가 불가피하지만 통합민주당은 독자후보를 내세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열린우리당 내 친노그룹도 당 사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여곡절 끝에 출항한 통합민주당은 당분간 독자노선을 고수하며 통합 주도권 경쟁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통합 방향과 대선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간의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지만 신설합당을 공식화한 만큼 당장 범여권 대통합신당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히 김 대표는 ‘범여권 국민경선을 통한 단일후보 선출’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반면 박 대표는 ‘독자후보 선출 후 후보단일화’ 방안을 고수하고 있어 내부 조율 과정에서도 적잖은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이 독자후보로 가닥을 잡아갈 경우 이인제 의원, 추미애·김영환 전 의원 등이 치열한 당내 경선을 치르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내 경선이 흥행에 성공해 독자후보가 경쟁력을 갖출 경우 범여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독자후보의 지지율이 국민경선에 참여한 범여권 주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을 경우 ‘흡수 통합’ 이라는 수모도 감내해야 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질서 있는 대통합에 동조하는 분위기지만 정파간 이해관계는 복잡하기만 하다. 정세균 의장 등 당 지도부와 잔류한 정동영·김근태계 의원들은 대선주자 연석회의 등을 통해 대통합 합의가 도출될 경우 대통합신당에 적극 동참한다는 방침이지만 친노그룹은 열린우리당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않는다면 대통합에 참여할 수 없다는 강경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친노주자들도 엇갈린 대권행보를 보이고 있다. 변화무쌍한 대선지형 변화 추이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긴 하지만 이해찬·한명숙·김혁규 예비후보는 국민경선 참여 쪽에 유시민·김두관·신기남·김원웅·김병준 예비후보 등은 열린우리당에 남아 독자적인 선의의 경쟁을 펼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열린우리당 후보를 지지하고 후보단일화가 성사되면 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친노그룹은 열린우리당을 사수하면서 독자후보를 선출한 뒤 대선 막판에 범여권 후보단일화 과정에 참여하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여권 주자 중 지지율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의 최종 선택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당장은 제3지대 대통합신당론에 의기투합하고 있지만 신당 창당이나 국민경선 과정에서 불리한 쪽이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겉으로는 대통합론을 주창하면서도 호남민심을 의식한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호남권에 지지기반을 둔 통합민주당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손 전 지사는 지난달 27일 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측 안규백 조직위원장과 만나 “신당을 만든다고 한들 명분이나 시기가 맞겠느냐”며 “나는 통합민주당과 단절하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손 전 지사 측은 29일 모 언론사가 이 같은 발언 내용을 보도하자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손 전 지사 측은 기자에게 보낸 해명 자료를 통해 “손 전 지사가 안규백 위원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나 ‘신당 안 만든다’는 발언은 한 적이 없다”며 “국민대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역설했을 뿐 신당 관련 발언은 일절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손 전 지사 측의 해명으로 논란은 조기에 차단됐지만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손 전 지사나 호남 출신인 정 전 의장 입장에서 통합민주당과 단절하는 것은 곧 대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지금 당장은 제3지대 대통합론에 동조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범여권 대통합이 불발되거나 국경추가 주도하는 국민경선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 통합민주당으로 말을 갈아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