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증공방에 대해 대응을 자제하던 이명박 전 시장이 맞불 작전으로 전략을 바꾸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주 공격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 ||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는 당내 검증 문제와 관련해 ‘무대응 원칙’을 선언하고 의연한 자세를 취하던 이 전 시장 측도 다시 맞불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더 이상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X파일의 확대·재생산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각종 의혹들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자료들이라고 보고 있는 이 전 시장 측은 권력 차원의 정치공작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일부 강경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력 핵심부 차원의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X파일’ 논란이 한나라당 검증 사선을 넘어 노 대통령과 이 전 시장 간의 직접 대결로 비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정치권 주변에서 정체불명의 ‘이명박 X파일’이 나돌았던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나라당 경선후보 등록 이후 범여권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최근의 의혹 공세는 그야말로 융탄폭격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한나라당 검증 과정에서 ‘BBK 주가조작 의혹’ ‘대운하 보고서’ ‘출생·병역 관련 의혹’ 등이 불거진데 이어 최근에는 ‘옥천땅·양재동 부동산 차명 보유 의혹’ ‘도곡동·은평뉴타운 투기 의혹’ 등 이 전 시장의 재산 문제가 의혹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들이 이러한 부동산 의혹 등에 대한 취재를 통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자 이 전 시장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 측은 정부기관이나 권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른바 ‘청와대 배후설’ 등 정치공작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고강도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4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장은 권력 배후 의혹 등을 부추기는 성토장으로 변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날만 새면 언론을 통해 하나씩 이상한 것을 흘리며 정치공작으로 대선을 이끌려는 작전을 세우고 있다”며 권력 핵심부를 겨냥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금감원이나 국정원, 국세청, 행자부 이런 정부기관이 아니고는 어떻게 개인의 사생활, 남의 재산을 떼어볼 수 있느냐”며 “정치공작으로 정권을 넘겨주려는 추악한 권력욕을 즉각 중단하고 만약 청와대에 정치공작 TF가 있다면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권력형 공작개입이 없다는 것을 국민 앞에 담화를 발표하든지 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공작 배후자로 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부를 우회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측 정두언·진수희·윤건영 의원은 이날 국세청과 행정자치부를 방문해 내부자료 유출 여부 등을 추궁했다. 개인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나 보유 상황 등 당사자가 아니면 입수하기 힘든 자료들이 무차별적으로 폭로되고 있는 것은 정부기관이나 권력 차원의 개입 가능성이 짙다는 게 이 전 시장 측의 논리다. 이 전 시장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을 비롯한 10여 명도 6일 국무총리실을 항의 방문해 ‘이명박 죽이기’ 공작의 실체를 밝히라고 촉구하는 등 정부를 상대로 한 자료 유출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진수희 대변인은 이날 항의 방문에 앞서 배포한 논평에서 “국세청 납세정보시스템(TIS)이 ‘이명박 죽이기 공작’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개인의 부동산거래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TIS에 접근할 수 있는 기관은 청와대와 국정원밖에 없다”며 권력 핵심부의 ‘배후 공작설’을 거듭 주장했다.
이 전 시장도 ‘정치 공작’ 의혹에 대해선 직접 전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는 3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한 강연장에서 “내가 전과 14범이라는데 확인하려 해도 확인할 길이 없는 정보다. 권력형 음해는 21세기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에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며 권력기관의 정치공작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전 시장 측 장광근 대변인도 4일 논평을 통해 “이 후보 주변의 부동산 거래내역은 국세청이 관리하는 ‘국세통합시스템’이 아니면 자료유출이 불가능하다”며 “국정조사 등을 통해 누가 언제 이 정보에 접근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 측은 의혹을 제기한 범여권 의원들과 언론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증 공방전은 급기야 법정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권력 차원의 정치 공작 의혹이 짙은 만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항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이 전 시장 측과 한나라당이 제기한 고소·고발은 무려 10여 건에 달한다. △서울 도곡동 1300여 평 부지 실소유 의혹 등 차명 이용한 부동산 투기 의혹 △이 전 시장에 대한 출생 및 병역 관련 의혹 △20여 차례 주소지 이전과 관련한 투기 및 위장 전입 논란 △BBK 주가조작 의혹 △96년 선거법 위반 재판 당시 비서였던 김유찬 씨에 대한 위증교사 여부 △청와대 배후설 주장에 대한 맞고소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전 시장 측은 또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표 측에 대해서도 ‘노(No) 네거티브’ 기조를 유지하되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될 경우 법적 대응도 불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전 시장의 처남인 김재정 씨의 도곡동 땅 명의신탁 의혹을 제기한 박 전 대표 측 서청원 상임고문과 유승민·이혜훈 의원을 검찰에 고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노무현 대통령 | ||
당 공작정치 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 안상수 위원장은 “이 전 시장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한 인사들이 사용한 소송기록과 수사기록, 회사정관 등은 불법적으로 열람하지 않고는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고 위장전입 의혹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 전 시장 등의 주민등록표를 열람하거나 등초본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권력 개입 의혹과 음모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만큼 일단 검찰 수사 추이를 지켜본 뒤 여의치 않을 경우 국정조사나 특검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5일 기자와 만나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을 낙마시키기 위한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범여권 핵심부가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전 시장과 관련한 네거티브 자료를 언론 등에 무차별적으로 유포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공작 의혹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나 정황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정부기관이나 권력 차원의 비호가 없는 한 구하기 힘든 불법자료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로되고 있고 친여 매체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혹은 충분하다”며 “내부적으로도 자료 유출 경로를 파악하고 있고 일부 믿을 만한 제보를 확보한 만큼 머지않아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 측이 ‘청와대 배후설’ 등 정치공작 카드를 또다시 꺼내들자 청와대 측은 내심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즉각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실체도 없는 배후설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입장이다. ‘대운하 보고서’ 유출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배후’ 의혹을 제기한 이 전 시장 측 인사들과 법적 공방전(맞고소)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보자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청와대 배후설 등 정치공작 의혹은 갈수록 확전될 조짐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대선후보 공약을 정부기관 등이 연구·조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다 정부 일부 부처에서 이 전 시장의 대운하 공약이나 박 전 대표의 페리열차 공약을 검토하는 TF팀이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 핵심 인사들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한방에 보낼 수 있는 X파일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범여권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들은 연습게임에 불과하고 한나라당 경선 직전이나 본선을 대비한 메가톤급 X파일이 터질 것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은밀한 사생활이나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한 대형 비리사건 등이 X파일의 핵심일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노 대통령과 이 전 시장을 정점으로 한 대권 서바이벌 게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에 혼전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검증공방이 어디로 번져나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확실한 증거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이러한 검증이 당연히 해야 할 검증인지, 아니면 정치공작의 일환인지는 어쩌면 선거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판단은 유권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