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
먼저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자. 박 전 대표 캠프 측의 홍윤식 씨는 ‘마포팀’을 운영하면서 경선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있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 정보과 출신 권오한 씨에게 이 전 시장 초본을 발급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확보한 권오한 씨(전 서울 성북경찰서 보안과장)의 진술에 따르면 권 씨는 홍 씨에게서 이 후보 일가의 초본을 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홍 씨는 “두세 달 전 권오한 씨가 먼저 찾아와 ‘이 전 시장의 초본이 필요하지 않냐’고 제의했지만 위법이라고 만류했고 지난달 초 권 씨가 실제로 초본을 가져왔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홍 씨와 권 씨 가운데 누가 주도적으로,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이 전 시장의 초본을 부정 발급받았는지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제3의 변수가 등장했다. 사건 초기부터 권 씨가 발급받은 초본이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할 때 ‘흔들었던’ 초본과 동일한 것이었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결과 서울 신공덕동사무소에서 신용정보회사 직원에게 발급되어 박근혜 캠프로 흘러 들어갔던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의 주민등록초본이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전달되었고 그 중간에 중앙 일간지 부장 출신 L 씨와 같은 회사 정치부 L 기자가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주민등록초본을 김혁규 캠프 쪽에 건넨 것으로 알려진 김갑수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초본을 L 기자에게 부탁해 복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사자인 L 기자는 지난 19일 검찰 조사에서 “어느 날 아침 출근해 보니 내 자리에 초본이 담긴 봉투가 놓여 있었고, 김 전 대변인 쪽에서 이를 몰래 복사한 것 같다”며 자신의 개입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의 핵심은 박 전 대표 측 인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전 시장의 초본을 여권에 흘렸을 가능성이다. 이것은 현재 이 전 시장 측이 주장하는 이명박 죽이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 범여권 및 국가권력과의 연계설’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검찰의 조사 결과와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하나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지난 6월경 이 전 시장의 초본이 홍윤식 씨 아니면 권오한 씨 주도로 불법 발급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홍 씨와 같이 마포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앙 일간지 부장 출신 L 씨와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홍 씨와 L 씨는 마포팀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면서 마포에서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 한반도 대운하 정부보고서 유출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았던 P 전 교수가 두 사람과 함께 마포팀을 실질적으로 이끌던 핵심 3인방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L 씨가 공유했던 초본이 L 기자와 또 한번 공유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L 기자는 정치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L 씨 또한 같은 언론사에서 정치부장으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문제의 초본을 공유할 만큼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초본은 L 기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김갑수 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에게 흘러갔고 그것이 바로 김혁규 의원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친이그룹의 한 의원은 초본 발급을 한 장본인 권오한 씨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권 씨는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장 출신으로 L 씨의 소개로 홍윤식 씨를 만나 올해 2월부터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위치한 마포팀에서 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권 씨는 별도의 방은 없었지만 사무실에 책상을 놓고 팀 회의에도 참석했으며 주로 외부에서 정보 수집 업무 등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의 의원은 “경찰 출신으로 오랫동안 정보계에 몸담아온 권 씨가 여권에서 박 전 대표 캠프에 파견된 일종의 전령사일 가능성도 있다. 여권이 김대업식 공작 정치를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 조사가 곧 나오겠지만 권 씨의 실체를 분명하게 밝혀낸다면 여권이 정치 공작 차원에서 권 씨를 박 전 대표 측에 보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윤식 씨가 권 씨의 실체를 알면서도 초본 발급을 공유했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이 박근혜-여권 공조설 규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러한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박 전 대표는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경선 승리를 위해 당을 배신하는 ‘매당’(賣黨) 행위를 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마포팀의 여권 공조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 전 시장 후보검증 문제는 박 전 대표 캠프의 핵심 사안이었다. 당연히 박 전 대표가 마포팀에서 올라오는 이 전 시장 후보검증 문제를 보고 받았을 것이다. 홍사덕 선대위원장이 마포팀을 서포터스 수준으로 깎아내리고 있지만 이 전 시장 측이 파악하기로는 마포팀이 네거티브 공작의 컨트롤 타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박 전 대표 캠프가 작심하고 네거티브 작업을 직접 할 경우 부담이 많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곽 사조직인 마포팀이 네거티브 문제를 전담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은 “마포팀은 캠프의 공조직이 아니며 퇴직인사들의 사랑방 모임 성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박 전 대표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초본의 유통 경로가 밝혀져 박 전 대표 측 인사가 여권과 이명박 죽이기 공작에 참여한 것이 확인된다면 그 사안 자체만으로 박 전 대표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명으로 남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늘 자신들을 ‘공작정치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는데 정작 가장 아픈 그 ‘비수’를 같은 당 후보에게 날렸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