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이 드디어 제3지대에서 깃발을 올린다. 하지만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여러 정파의 지분 다툼으로 아직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지난 24일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한 공동의장과 예비대선후보들. 왼쪽부터 정대철 김호진 공동의장, 김 | ||
12월 대선까지 5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겨우 범여권 주요 정파들의 제3지대 신당 창당 움직임에 탄력이 붙고 있다. 대통합 신당론은 이미 대세를 굳혀가고 있고 범여권 주요 대선주자들도 신당파가 추진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에 참여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범여권 일각에선 한나라당 경선(8월 19일)이 끝나고 범여권 경선이 시작되는 9월 중순 이후에는 국민적 관심이 범여권으로 쏠리면서 대선주자들의 지지율도 수직 상승할 것이란 장밋빛 청사진도 제시하고 있다. 범여권이 대통합을 이루고 후보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한나라당 후보가 누가 됐든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도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제3지대 신당이 순조롭게 창당될지 또 출항하더라도 순항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는 제 정파가 한 배를 탄만큼 지분이나 역할을 조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범여권 주요 정파들은 겉으로는 제3지대 신당 창당에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심 지분과 역할을 놓고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도당위원장 등 경선과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 포스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파 간 지분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26일 창당대회를 개최한 서울시당의 경우 우리당 탈당파인 이미경 의원과 민주당 대통합파인 심재권 전 의원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당 대 당 통합을 주장하면서 24일 탈당한 우리당 송영길 전 사무총장과 홍재형 전 최고위원은 각각 인천시당과 충북도당 접수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27일 열린 전북도당 창당대회에선 당초 정균환 창준위공동위원장이 도당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타 정파간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 위원장과 이강래·이은영 3인 공동위원장 체제로 출범했다. 광주시당 위원장 역시 정파간 지분 문제로 김영진 전 의원, 지병문 의원, 임현모 광주교육대총장, 박형린 전 광주YWCA 사무총장 등 4인 체제로 출항했다.
전남도당 위원장은 손학규 전 지사 측이 중앙당 창준위원장 자리를 포기한 대가로 요구한 김효석 의원 단일체제로 확정됐다. 부산시당의 경우 손 전 지사 측이 조경태 의원을 적극 밀고 있지만 타 정파의 반발로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대전·충남위원장 선임은 우리당 소속인 이해찬 전 총리 측과의 마찰로 창준위원장조차 선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사회단체도 지분 경쟁에 뛰어들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범여권 주요 정파와 시민사회단체 측은 25일 30명 이하의 상임중앙위원을 선정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정치권 측은 “정치 역량이나 세력 분포를 감안해 정치권의 비중이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시민사회단체 측은 “상임중앙위원도 중앙위원과 마찬가지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출신이 일 대 일의 비율로 나눠 맡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범여권 주변에선 정치권의 주요 정파는 물론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치열한 지분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점에 미뤄볼 때 내달 5일로 예정된 신당 창당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높아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창당준비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겉으로는 대통합을 외치면서도 속으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지분 경쟁 내지는 지분 나누기를 하고 있다”며 “우여곡절 끝에 신당이 창당되더라도 갈등이 심화될 경우 제2 제3의 분당사태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지난 26일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의 서울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손학규 정동영 예비후보. 양측의 세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범여권 일각에선 오래전부터 대통합을 역설하며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주도해온 정 대표와 주요 대권주자 사이에 사전 밀약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즉 대권에 욕심이 없는 정 대표는 당권을 담보로 범여권 대통합을 주도하고 대선주자들은 정 대표가 깔아 놓은 신당을 기반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친 후 승자가 범여권 최종 주자로 나선다는 게 밀약설의 골자다.
대선불출마 선언 후 대통합 전도사역을 자임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신당 창당을 앞두고 두문분출하고 있다는 사실과 여전히 범여권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신당 합류를 늦추고 있는 점도 밀약설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김 전 의장은 기득권 포기 후 범여권 대선주자들과 주요 정파 수장들을 두루 접촉하면서 대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고 범여권 관계자들도 그런 그의 결단과 역할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신당 창당에 핵심 가교 역할을 했던 김 전 의장이었지만 그는 24일 신당 창준위 결성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통합 행보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건강이 안 좋다느니 중병에 걸렸다느니 악성 루머만 무성히 나돌고 있을 뿐이다.
김 전 의장의 이상 행보 이면에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을 것이란 게 범여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정 대표와 주요 대선주자 간 밀약설과도 연관돼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 분석가들은 대권을 포기한 김 전 의장이 범여권 대통합을 견인한 공이 인정된다면 신당 대표 등을 맡아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신당 작업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자 김 전 의장의 역할과 입지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고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한 세력 확장 경쟁만 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 대표가 신당 공동대표로 선임된 배경에는 냉혹한 정치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 김 전 의장이 소리 없이 통합행보를 멈추고 있는 말 못할 속사정도 결국 비정한 정치현실에서 기인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 사장도 26일 “당분간 대통합신당에 합류하지 않고 혼자 가고 싶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전북지역신문 발행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현재로선 국민경선추진협의회에서 추진 중인 예비주자들의 컷 오프(예비 경선)에도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내가 대통합 신당에 참여해 대표를 맡을 것이라는 정치권의 분석과 예측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범여권 제 정파들이 신당 합류를 독려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맞는 역할이나 대선주자로 뛸 수 있는 환경 조성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데 대한 불만이 적잖게 묻어 있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사장이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장처럼 대권열차에 탑승하지도 못하고 낙마할 것이란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범여권 주요 대선주자들은 세력 확장 등 본격적인 경선 경쟁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특히 범여권 빅2로 분류되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의 세 불리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한나라당 못지않은 치열한 경선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손 전 지사 측은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마의 10%’를 넘어서면서 40여 명이 넘는 현역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돕고 있다”며 ‘손학규 대세론’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손 전 지사의 독주체제가 구축될 경우 기타 대선주자 진영으로부터 전방위 공격을 받을 것이 뻔한 만큼 이에 대비한 방어 전략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정 전 의장 측은 “‘손학규 쏠림 현상’은 일시적인 거품에 불과하고 경선이 시작되면 전통적인 범여권 지지세력들은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 대신 민주개혁평화 세력을 대표하는 정 전 의장 지지로 돌아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정 전 의장 측 한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세력 확장을 위해 우리 측 인사들을 빼가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한나라당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네거티브 공격은 자제하겠지만 도가 지나칠 경우 경선 과정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노그룹 대표주자로 자리매김 한 이해찬 전 총리도 거침없는 대권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5일 우리당 충북도당 초청강연회에 참석한 이 전 총리는 “대통합 신당에서 경선을 하면 한나라당을 이길 후보가 당선된다. 결과적으로 어차피 이해찬이 후보가 될 테지만 과정은 거쳐야 하지 않느냐”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또 이날 강연에서 한나라당 빅2를 겨냥해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토론을 해야 하는데 결과는 뻔하다”며 “이 후보는 결국 땅 문제이고 박 후보는 5·16을 구국 혁명이라고 했는데 이런 반역사적 사고 방식으로는 미래를 이끌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범여권 주자 중 지지율 3, 4위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총리의 거침없는 발언에 대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란 시각과 함께 너무 오버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갈 길이 먼 범여권으로서는 벌써부터 후보들 간의 신경전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어 대통합신당의 앞날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