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을 방문한 김만복 국정원장이 8월 5일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기념촬영을 했다.(위), 2000년 6월 회담 때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및 양측 대표단이 건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정상회담 주인공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고 대북정책을 진두지휘하며 정상회담 전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담당했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은 햇볕전도사라는 애칭과 함께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주역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빛과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진행된 대북송금 특검 결과 천문학적인 뒷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DJ는 ‘돈으로 산 정상회담’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고 박 전 실장과 임 전 장관은 사법처리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정상회담 직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사들 중 상당수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특검이 진행되면서 그 빛과 영광은 어두운 그림자와 불명예로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특검 결과 DJ 정부가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4억 5000만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특검팀은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일등공신이었던 박지원 전 실장이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대북 지원금 1억 달러를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대신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산업은행이 현대상선 측에 4000억 원을 대출해 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결국 박 전 실장은 2003년 대북송금 및 산업은행 불법대출 알선과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교도소 수감 중 녹내장과 심장질환 등을 앓아오던 박 전 실장은 지난해 11월 법원의 병보석 결정으로 풀려났고 올해 2월 사면됐다.
정상회담의 또 다른 일등공신인 임동원 전 장관 역시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임 전 장관은 2004년 5월 사면 복권됐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임 전 장관은 2000년 5월 31일 박 전 실장,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함께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현대에 대한 특별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DJ정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정상회담 성사를 뒷받침했던 정몽헌 회장은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받던 2003년 8월 서울 계동 현대사옥 12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해 충격을 던져줬다. 당시 정 회장은 현대에서 조성한 비자금 중 150억 원을 박 전 실장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특검 수사 결과는 DJ에게도 치명적인 불명예를 안겨줬다. 당시 특검팀이 “돈이 정상회담 전에 모두 송금됐고 송금 과정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였으며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비밀리에 송금함으로써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돈과 정상회담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혀 사실상 천문학적인 뒷거래를 매개로 정상회담이 성사됐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 이후 DJ와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고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부추기는 뇌관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2차 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되면서 이들 주역들의 역할론과 맞물린 향후 대북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조만간 DJ를 만나 김 위원장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전수받는 등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DJ와 1차 회담 주역들의 조언을 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2차 정상회담 발표가 있던 날(8일) 윤병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DJ에게 보내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된 경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했고 문재인 비서실장도 이날 박 전 실장에게 회담 합의 사실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