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8일 김두관 전 장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손학규 전 지사(왼쪽)와 유시민 전 장관이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주신당의 예비경선을 앞두고 두 사람의 연대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범여권 경선구도는 결국 민주신당을 중심축으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수파, 문 사장 등이 각각 리틀리그를 형성하는 다자구도가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다음달 3일부터 5일까지 실시하는 민주신당 컷 오프에는 손학규 전 경기 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천정배·신기남 의원, 김두관 전 장관 등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관심을 끌었던 추미애 전 의원도 민주신당 참여를 결정, 적어도 9명이 격돌할 태세다.
한편 10월 중에 실시될 민주당 경선은 6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출정식을 가진 이후 지지율이 범여권 주자들 가운데 2~3위를 오가는 등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조순형 의원을 비롯해 이인제·신국환 의원, 김영환 전 의원이 이미 출사표를 던졌고 장상 전 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전 의원도 합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해체된 열린우리당 대선주자 중 김원웅 의원과 김혁규·강운태 전 의원은 끝내 민주신당과의 합당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 앞으로 행보가 주목된다. 친노 대선주자인 이들은 지난 12일 강남 모처에서 만나 우리당과 신당의 흡수 합당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앞서 강경 사수파 당원들로 구성된 ‘우리당지킴이연대’도 합당 무효화를 주장하며 지난 7일 서울 남부지법에 당 지도부 권한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바 있다.
오는 23일 정치 참여를 선언할 예정인 문 사장도 16일 제주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정당에 가입할 계획은 없으며 지금은 독자적으로 가야할 때”라고 밝혀 사실상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민주신당이 다시 한나라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을 차지하긴 했지만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배경에는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군소 주자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신당 지도부는 내달 초 실시되는 컷 오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선 흥행몰이에 나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지만 희망보다는 당 안팎으로 암초들만 산적해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신당으로서는 무엇보다 합당 과정에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내부 강경파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게 선결 과제다.
통합결정 직전까지 ‘열린우리당 배제’를 요구했던 김한길 의원 주도의 통합신당 계열과 천정배 의원 주도의 민생정치모임은 통합 이전에 우리당의 ‘선(先) 반성과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며 세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집단탈당을 통해 대통합의 물꼬를 텄던 자신들은 여론의 뭇매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데 반해 열린우리당 잔류파들이 아무 입장 표명 없이 신당에 합류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정배 의원 역시 “우리당을 무조건 승계하는 것은 안 되며, (우리당의) 반성과 국민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인 2표제로 결정된 컷 오프 방식을 놓고도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신당 국민경선위원회는 예비경선 여론조사 설문 문항을 ‘대통령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십니까. 2명을 선택해 주십시오’로 확정했으며 선거인단 1만 명과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 24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결과를 반반씩 반영해 경선에 참여할 예비후보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선거인단 1만 명은 26일까지 민주신당에 접수된 선거인단 중에서 지역·연령 등을 고려해 선출하도록 돼 있다. 조직력이 강한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인 만큼 각 후보 진영은 자신의 지지자를 선거인단에 넣기 위해 대대적인 모집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당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조직표 동원, 배제투표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혼탁 경선을 예고하고 있다. 조직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 측 양승조 대변인은 16일 “일부 후보 진영에서 ‘종이당원’과 대리접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일이 지속될 경우 경선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빅3로 분류되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 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전 총리 진영의 세 확산 경쟁이 치열하다. 손 전 지사 진영은 지난 14일 지지 의원·캠프 관계자 워크숍을 갖고 컷 오프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100만 선거인단 확보’라는 야심찬 목표로 대세론을 굳힌다는 전략이다. 지지 의원들과 캠프 핵심 관계자들은 전국을 돌며 선진평화연대 하부 조직 결성과 선거인단 모집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조직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정 전 의장 측은 국민통합추진본부 등을 중심으로 ‘1인당 1000명 모으기’ 캠페인에 돌입했다. 예비경선 선거인단으로 50만 명을 등록시켜 1위로 컷 오프를 통과한다는 계획이다. 정 전 의장은 매일 10여 개의 비공개 일정을 만들어 직접 지지층 확보에 나서고 있고 캠프 관계자들도 선거인단 모집 등 세 확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 전 총리 진영은 열린우리당 당원을 중심으로 시·군·구 조직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야단체 인사들과 청와대 출신 386그룹들이 이 전 총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부산 조직에 합류하는 등 2002년 대선 당시 ‘노풍’을 일으켰던 주역들이 세 확산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천정배 의원, 김두관 전 장관 등도 컷 오프 통과를 목표로 조직 정비와 세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컷 오프 방식이 1인 2표제로 실시되는 만큼 후보 간 짝짓기 등 합종연횡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후보 간 짝짓기 시나리오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범여권 주자들이 난립할 때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요신문>도 지난 792호(7월 22일자)에서 범여권 짝짓기 시나리오를 기사화한 바 있다.
유권자 한 명이 두 명의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보니 상위권 후보는 1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그리고 중하위권 주자들은 컷 오프 통과를 목표로 서로 짝을 지어 상부상조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빅3가 누구와 연대하느냐는 컷 오프 1위 싸움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로선 국민 지지도나 조직력 면에서 앞서고 있는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이 1순위표의 상당 부분을 가져갈 것으로 보여 2순위표를 잡기 위한 합종연횡이 치열해지고 있다.
1인 2표제는 또 경쟁상대를 미리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어 빅3라고 해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민주신당 이목희 국민경선관리위 집행위원장은 선거인단을 무작위로 선정하기 때문에 각 후보들이 선거인단을 파악해서 배제투표 지시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선거인단 모집부터 관여하기 때문에 배제투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손 전 지사 측은 상대적으로 반감이 적은 주자와 연대를 모색하는 동시에 기타 주자들의 협공을 차단하기 위해 친노주자와 손을 잡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 대표주자를 자임하고 있는 유시민 의원이 범여권 주자들의 손 전 지사 협공에 문제를 제기하며 유화책을 쓰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손학규-유시민 연대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전통 민주평화세력의 대변자임을 강조하고 있는 정 전 의장 진영에서는 범여권의 적통성에 부합되는 주자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일 고심 끝에 민주신당에 합류한 추미애 전 의원과의 전략적 연대론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호남 출신인 정 전 의원이 영남 출신인 추 전 의원과 손을 잡을 경우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을 얻을뿐더러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면 지원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총리를 비롯한 한명숙 유시민 김두관 등 이른바 친노주자 간 단일화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한 전 총리는 이미 ‘친노주자 단일화’라는 원칙에 합의한 바 있어 컷 오프 과정에서도 연대를 과시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일화에 소극적인 유 의원과 김 전 장관은 친노주자라는 강성 이미지를 보완할 수 있는 비노주자와의 짝짓기로 정면 승부를 벌일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적 사제 관계인 이 전 총리와 유 의원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컷 오프 통과를 자신하고 있는 만큼 예비경선보다는 본경선 과정에서 힘을 합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운동권 출신이지만 부드러운 이미지가 장점인 한 전 총리는 여성 주자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 합종연횡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인기 있는 짝짓기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주변에서는 빅3 중 한 전 총리와 손을 잡은 주자가 1위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범여권 경선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신당이 전열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경선 잔치를 준비하고 있지만 흥행몰이에 성공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강경파들의 반발 기류등 합당 후유증이 여전히 잠복 상태에 있고 컷 오프전이 본격화될 경우 네거티브 공방전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이 ‘상처뿐인 영광’으로 마무리되면서 거센 후폭풍에 직면해 있듯이 범여권 또한 진흙탕 경선으로 비화되면서 흥행은커녕 정치 불신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중심으로 전개돼 왔던 대선정국에 종지부를 찍고 9월 컷 오프를 시작으로 대반전을 꾀하고 있는 범여권 경선전이 흥행몰이에 성공할지 아니면 한나라당의 상처를 답습할지 국민들의 시선은 서서히 민주신당 경선장으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