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선에서 이긴 이명박 후보는 ‘선 화합’을 강조했지만 추석을 전후해 개혁의 폭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진은 지난 8월 13일 대선후보경선 경기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후보의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이 후보 주변에서는 대선 선대위가 꾸려지는 추석을 전후해 과감한 당 개혁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당 인사와 관련해서도 “탕평 인사를 했다가 이 후보 흔들기가 시작되면 뒤늦게 낭패를 보기 쉽다”며 공격형 인물 전면 배치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당을 장악한 이 후보의 개혁 드라이브 추진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현재 한나라당의 최대 화제는 ‘1.5%의 방정식’이다. 당내에서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에 2452표(1.5%)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것을 두고 앞으로도 양측은 화합보다는 당권을 놓고 계속 쟁투를 벌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1.5%의 표차는 이 후보에게는 대선 가도에 ‘경종’을 울려준 반면, 박 전 대표에게는 ‘희망의 빛’을 던져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실 박 전 대표 측은 경선이 불과 며칠만 늦게 열렸어도 충분히 역전이 가능했다고 아쉬워한다. 경선 막판 불거진 검찰의 도곡동 땅 수사 결과 발표 이후 박 전 대표의 ‘불안한 후보론’이 한나라당 지지층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선에서 한나라당 지지층들마저도 동요하는 이 후보의 ‘약점’이 본선 때는 그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반 국민들에 의해 더 크게 부각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이런 분석은 향후 이 후보의 앞길을 험난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이명박 후보의 ‘맷집’은 역대 어느 후보보다도 강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도 그럴 것이 6개월 이상 박 전 대표 측과 범여권에서 네거티브 공격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그의 지지율은 35% 수준을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 후보가 그만큼 강력한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고 말하면서도 “당초 범여권 쪽에선 이 후보와 대적할 인물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위축됐었다. 하지만 불과 1.5% 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경선 결과가 발표된 뒤 ‘이명박 대세론도 별 거 아니다. 네거티브 몇 건만 더 나오면 이 후보도 젖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명박 대세론’이 무너지고 그의 ‘허약한’ 실체가 드러난 것이 이번 경선이라는 것이다. 또한 국민들도 박빙의 승부를 보고 이 후보가 역시 문제가 있는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5% 방정식’의 또 다른 포인트는 박 전 대표의 건재함을 확인한 동시에 그에게 18대 총선 뒤에도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난 2005년 당 혁신위의 당헌 개정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박 전 대표가 당의 대선 후보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개정안은 여론조사를 수용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경선에서 당원을 비롯한 일반 선거인단 투표에서 432표 차이로 신승을 거두고도 여론조사에서 졌기 때문이다. ‘당심에서 이기고 민심에서 졌다’는 억울함 때문에 박 전 대표 세력은 앞으로도 이 전 시장의 대선 가도에 일정한 ‘비토그룹’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 최초로 ‘세력이 튼튼한 비주류’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그러나 이 후보의 당내 착근을 더디게 하거나 아예 막을 가능성이 있다. 박빙의 경선 승부는 또한 이 후보가 당무 운영에 있어서 박 전 대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박 전 대표의 지지세력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을 했지만 ‘백의종군’의 뜻을 밝히며 이 후보의 선대위원장 수락을 거부할 제스처를 취한 것도 결국 장외에서 계속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친이-친박’ 세력 간의 숙명적인 권력 쟁투를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 박근혜 전 대표 | ||
그래서 이 후보는 경선 승리 뒤 며칠 만에 ‘선 화합 후 변화’의 수순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런 전략 수정의 기저에 1.5%의 방정식이 깔려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후보는 최근 ‘당 개혁론’이 ‘인적청산’으로 해석되는 등 구구한 말이 나오자 “누가 혁명을 하나. 언제 인위적 인적쇄신을 한다고 했느냐. 선 화합이고 후 변화”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일단 후보로서 당에 ‘연착륙’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과 함께, 경선에서 신승한 상황에서 우선 당심을 다독이고 안정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캠프 내에서 “예상대로 7%의 차이만 나왔으면…”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성향상 언젠가는 한나라당 내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 것이다. 그래서 당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분명히 바꾸려 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정치컨설팅 업체 e윈컴 김능구 대표도 한 좌담회에서 “본선을 놓고 봤을 땐 지지기반 확장을 위해 이 후보의 강점인 중도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움직임이 당 쇄신과 함께 이뤄질 것이며 더 나아가선 제2 창당 수준까지 가리라 본다. 인적 쇄신에 이어 당명 개정까지도 갈 수 있다. 이 후보는 처음부터 늘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다. 선대본부가 꾸려진 뒤 그런 움직임이 본격화되리라 본다. 이 후보는 모든 것을 쏟아 붓고도 당심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더욱 민심에 의지할 것이다. 너무 화합을 생각하다 보면 실기할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이 후보의 핵심 측근 A 의원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내 보직 몇 개를 박 전 대표 측에 준다고 해서 화합이 되는 게 아니다. 앞으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후보가 선대위 구성을 앞당기자고 강조하는 것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미한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박 전 대표와 일종의 ‘냉각기’를 가지고 있지만 추석을 전후해 선대위가 꾸려지는 시점을 전후해 대대적인 당내 개혁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 개혁의 핵심 중 하나인 인사와 관련해서도 그는 “캠프 일부에서는 현재의 강재섭 대표도 교체해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 새로운 간판을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강 대표 체제는 유지하되 원내대표나 사무총장 등의 요직을 통해 당 운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강 대표의 실권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A 의원은 당내 인사도 이 후보 측근 중심의 강력한 친정 체제 구축이 정답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캠프 내에서는 여전히 박 전 대표의 존재를 많이 의식하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 이 후보에 대한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지는 등의 사태가 오면 당내에서도 박 전 대표 세력을 중심으로 후보불가론이나 사퇴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저쪽(박 전 대표 측)은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박 전 대표나 이회창 전 총재 등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공격해올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이번에 강력한 공격수들을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어설프게 화합한다고 하면서 약한 인물을 지도부에 배치했다가 나중에 역공을 맞으면 그것을 수습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딜레마’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중립 의원은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당의 체질을 바꿀 필요성은 강하게 느끼지만 개혁 추진 과정에서 박 전 대표 세력으로 대변되는 영남권 보수 그룹과 필연적인 마찰을 빚을 수 있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적전분열 양상을 빚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당 개혁과 박 전 대표와의 화합은 칼의 양날과 같다. 앞으로 이 후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대선 가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