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박근혜 전 대표가 선거캠프 해단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지난 30일 박 전 대표 측 핵심인사들은 한나라당 연찬회에 빠지고 식사모임을 가졌다. 박 전 대표 역시 지난 2일 대구를 방문하는 등 이들의 독자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사실 박 전 대표 측은 승자 이명박 대선 후보가 당내 화합을 위한 ‘진정성’만 보여준다면 언제라도 이 후보를 돕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가 겉으로는 화합을 외치면서도 이재오 최고위원 등 일부 측근들이 ‘패자가 더 반성해야 한다’고 이중플레이를 벌이고 있다며 “더 이상 화합 의지를 읽지 못하겠다. 우리도 우리대로 뭉쳐할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9월 정기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후보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더 커질 경우 ‘전폭적인 지지’는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양측 간의 대결은 이미 대선을 넘어 차기 18대 총선을 준비하는 듯한 분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패자’ 박근혜 전 대표는 칩거를 끝내고 앞으로 과연 어떤 정치 행보를 보일까.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대부분의 예측과는 달리 별다른 후유증 없이 ‘아름답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경선 뒤 이명박 대선 후보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면서 오히려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 측은 이명박 후보 측이 과연 화합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명박 후보 측이 갈등의 씨앗을 제공했던 이재오 최고위원을 계속 신뢰하고 ‘강성’ 이방호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는 등 화합보다는 당권 확보를 위한 전투 진용을 짰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명박 후보 측이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말만으로 ‘화합하자’고 하면 진정한 화합이 안 된다. 이명박 후보가 말 대신에 믿을 수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박 전 대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가 지금은 화합하자고 말해놓고 나중에 대선에서 승리하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이 후보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진 쪽에서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박 전 대표 측을 자극한 부분이나 이명박 후보가 ‘자는 척하는 사람은 절대로 깨울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한 부분도 승자가 먼저 화합의 제스처를 보여주어야 패자가 따라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점에서 화합의 뜻이 별로 없음을 내비치는 이 후보의 의중을 나타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러한 박 전 대표 측의 불신 기류는 경선 뒤 양측이 처음 공개적으로 화합의 장을 마련할 기회마저 걷어차 버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달 30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대거 불참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의 연찬회 대거 불참은 향후 양측의 관계가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선행지표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경선을 치른 뒤 2주일이 넘어섰지만 이 후보 측에서 전혀 당내 화합을 위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은 것을 두고 박 전 대표 측이 ‘이제 냉각기는 충분하다. 우리도 우리식대로 대응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이 연찬회 불참으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박 전 대표 측은 향후 당 운영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이 후보 측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부분적 비협조 모드로 나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지난달 30일 저녁 연찬회가 열리고 있을 때 허태열 유승민 유정복 의원 등이 캠프 상임고문을 지낸 서청원 전 대표의 초청으로 서울시내 모처에서 따로 만찬 모임을 가진 것에 주목하고 있다. 서 전 대표는 캠프 해단식에서 ‘박 전 대표 측도 반성해야 한다’는 이재오 최고위원 발언과 관련, “무슨 반성을 해야 하나. 안하무인격이고 기고만장한 사람들은 절대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이 후보 측을 맹비난했다는 점에서 이날 모임이 단순한 식사자리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 바 있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 보좌관은 이에 대해 “그날 모임은 특별한 의미가 없고 서 전 대표가 캠프에서 열심히 일한 의원들을 격려했던 자리로 알고 있다. 다만 이 후보 측이 계속 화합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생각을 가진 것에 대한 대책도 오갔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실 이 후보 측의 일부 강경파들은 대선 때 박 전 대표 세력을 배제하고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충성도가 없는 사람들이 선대위에 들어와 봤자 득보다는 실이 더 많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정권교체라는 대의 때문에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는 선대위 체제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인위적 화해’를 포기하고 각개 격파를 통해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포섭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후보 측에서 우리들을 공중분해시킬 방법만 계속 연구하고 있는 것 같다. 경선이 끝난 지 2주일이 넘었는데 진정한 화합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도 그에 맞서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서 전 대표가 초청한 의원들의 모임에서도 이러한 얘기가 오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 및 정권 교체를 위한 백의종군’이라는 명제를 제시했기 때문에 자칫 조직적인 대응이 당 화합을 깬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박 전 대표 캠프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한 바 있는 관계자 A 씨는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분명히 백의종군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명박 후보를 위해서이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번 대선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진다면 ‘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박 전 대표가 앞으로 이 후보와의 만남을 통해 어떤 역할을 받으면 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것이 이 후보를 위한 정치적 행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 측의 미묘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사실 박 전 대표 측으로서는 여전히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에서는 “이 후보가 전당대회 이후 내놓은 이렇다할 메시지가 하나도 없다. 지지율은 떨어진다. 경부대운하로 장사를 잘 했지만 그 뒤 지도자감으로서 내놓은 게 하나도 없다. 메시지도 왔다 갔다 한다. 오로지 대통령 욕심에만 찌든 사람”이라고 혹평한다.
이러한 박 전 대표 측의 분위기는 그가 향후 9월 정기 국정감사에서 의혹을 해소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후보 사퇴론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이 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을 위해서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은 향후 이 후보가 온갖 의혹에 또 다시 시달릴 경우 이 후보를 위해 몸을 던져 돕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정감사를 통해 의혹이 해소될 경우 적극적으로 돕겠지만 온갖 의혹이 풀리지 않는 ‘허점투성이’의 이 후보는 돕지 않겠다는 게 박 전 대표 측 분위기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러한 ‘제한적 협조론’을 통해 이 후보 측과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들의 세력을 내년 총선 때까지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관계자 A 씨는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먼저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와 함께 9월 정기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확실하게 해소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대선에서도 위험에 빠지고 결국 한나라당 전체가 다 죽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도 흠 있는 이 후보를 섣불리 돕기도 힘든 상황이다. 괜히 도왔다가 이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이 우리에게도 오지 않겠는가”라고 밝히면서 “박 전 대표는 물론 당을 위해서 그를 도와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의혹투성이 후보를 끝까지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이 후보가 계속 상처투성이로 남아 당이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한나라당은 공중분해된다. 총선에서 어떻게 다시 한번 살려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하는가.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작아진다면 박 전 대표로서도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당내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이 후보의 대선 결과에 한나라당 보수우파의 생존이 걸려 있다. 장난이 아니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이겼으면 안정적으로 승리했을 것인데 이 후보가 이겨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번 이 후보 승리가 여론조사의 역선택 때문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오히려 이 후보가 본선에서 더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하에 여권 지지층이 이 후보를 역선택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박 전 대표 세력은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총선이 이 대표의 영향력 아래에서 치러지게 되면 박 전 대표 세력은 공천에서 대거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으로서는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독자생존을 위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최근 계속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박 전 대표 측은 영남이라는 확실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며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원인의 배경에 박 전 대표 측의 지지세력이 여전히 이 후보 지지를 유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박 전 대표 측이 향후 강경책을 펼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다. 반면 속전속결로 당의 내홍을 정리한 뒤 민생행보를 벌이겠다는 이 후보의 구상은 완전히 어긋났다. 오히려 박 전 대표측의 '도움' 없이는 당 장악뿐 아니라 대선 승리에도 빨간불이 켜지기 때문에 앞으로 이 후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