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아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레임덕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거란 전망이다. | ||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학력 검증’ 파문을 야기한 신정아 사건은 신 씨의 출국과 사건 관계자들의 ‘모르쇠’ 행보로 일단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장윤 스님의 폭로 발언을 계기로 변 전 실장이 신 씨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신 씨가 청와대에 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신 씨 스스로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변 전 실장 정도가 배후면 (실세는) 수없이 많다”고 주장하면서 변 전 실장 외에 또다른 거물급 인사가 연루된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됐다. 변 전 실장이 신 씨의 동국대 교수임용 및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선임 과정에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이미 밝혀진 데다 신 씨가 성곡미술관에 근무할 당시 4년 동안 유치한 기업 후원금이 10억 원에 달하는가 하면 신 씨의 동국대 조교수 채용 전후로 동국대가 교육인적자원부의 각종 특성화사업에 선정돼 165억여 원을 지원받기로 하는 등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메일 내용이나 목걸이 선물에 이어 누드 사진까지 언론에 공개되면서 일반 국민들의 야릇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일대 섹스 스캔들로 변질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계에서는 ‘변-신 스캔들’이 단순히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기인한 비리 사건에 그치지 않고 권력형 비리로 확전된 ‘신정아 게이트’로 보고 있다. ‘신정아 사건’ 발생 이후 신 씨와 친분을 맺어 왔던 문화·종교·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거론됐던 이른바 ‘신정아 리스트’가 재계 및 정·관계 인사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정치권은 변 전 실장은 ‘깃털’에 불과하고 또다른 거물급 인사가 연루돼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몸통론’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도 변 전 실장 외에 현 정부 전·현직 고위인사와 DJ 정부 핵심 실세들의 실명이 ‘신정아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신 씨의 컴퓨터 이메일 복원 작업을 통해 변 전 실장의 비호 사실을 밝혀낸 검찰은 제2, 3의 거물급 비호세력이 연루된 정황을 잡고 확인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일각에서는 신 씨 배후 인물로 아직까지 거론되지 않은 새로운 거물급 인사가 포진해 있을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구여권 핵심 실세로 통했던 K 씨와 P 씨, 노 대통령의 386 실세로 통하는 A 의원과 B 씨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은 사실 여부를 떠나 현정부 거물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물론 손학규 전 경기지사까지 나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주자인 이해찬 전 총리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11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변 전 실장이 ‘신정아 사건’의 몸통이라는 주장에는 아직 의혹이 많다”며 “참여정부 들어 기획예산처 장관, 청와대 정책실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한 변 전 실장의 배후에 이해찬 후보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 전 총리를 배후 인물로 지목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같은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정아 게이트’는 사건의 성격으로 볼 때 변 전 실장과 신정아 사이의 개인적인 인간관계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리는 보다 높은 차원의 권력실세가 아니라면 신정아가 비상식적인 특혜를 받았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고 주장해 권력 비호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 전 총리 측 양승조 대변인은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 의혹 제기병’이 다시 도졌다”며 “명색이 원내 제2당인 한나라당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기 후보의 비리 의혹을 보호해야 하는지 참으로 불쌍하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이 전 총리도 이날 통합신당 서울·경기 정책토론회에서 손학규 전 지사로부터 ‘신정아 사건’ 연루 의혹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한나라당이 어떻게든 엮어볼까 하는데 옳은 태도가 아니다”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신정아 씨 오피스텔에서 바라본 청와대. | ||
범여권도 권력형 게이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효석 통합신당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변 실장, 정윤재 전 보좌관을 위시해 청와대 주변 인물들이 자꾸 개입되는 것이 우려스럽다”면서 “청와대가 앞장서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고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변 전 실장의 윗선인 이른바 몸통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검찰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권력형비리 조사 특별위원장인 홍준표 의원과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는 노 대통령을 ‘윗선’으로 직접 지목하기도 했다.
장 대표는 특히 “노 대통령이 신정아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야기하고 있다. 장 대표는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노 대통령이 신정아 사건의 몸통인 이유’라는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이 신정아 사건과 무관했다면 민정비서실에 변양균 씨를 조사하게 해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며 “혐의 사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는데도 자신이 바로 신정아 사건의 몸통이기 때문에 조사를 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과 검찰이 사건발생 40일이 넘도록 밝혀낸 것이 없었던 것은 노 대통령이 이 사건의 실체규명을 반대했기 때문”이라며 “변 씨가 언론의 빗발치는 의혹 제기에도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노 대통령이 변 씨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 대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청와대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내심 불쾌감과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변 전 실장의 부인 박 아무개 씨를 청와대 관저로 불러 위로한 것이나 평소 기자들과의 접촉이 별로 없었음에도 이번 신정아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진 것을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 권 여사는 11일 낮 변 전 실장이 ‘신정아 사건’ 연루 의혹으로 낙마한 데 대해 박 씨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격려하기 위해 오찬을 함께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권 여사가 어제(11일) 변 전 실장 부인과 오찬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일로 인해 변 전 실장의 부인이 힘들어할 것 같아 위로하는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권 여사는 또 12일 ‘제1회 대한민국 도서관축제’ 개막식에 참여한 직후 잠실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과 나는 (신정아 사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신 씨가 청와대와 노 대통령 고향 봉하마을에 그림을 넣었다’는 등 항간의 청와대 연루설을 부인했다. ‘신정아 사태에 변 전 실장을 뛰어넘는 윗선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권 여사는 “‘윗선’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대통령과 나는 ‘윗선이 누구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며 “변 전 실장이 연루돼 곤혹스럽지만 대통령과 나는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에서는 권 여사가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민감한 시점에 변 전 실장 부인을 직접 불러 위로한 배경이 왠지 석연치 않다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유감을 표명한 당일 권 여사가 굳이 박 씨를 불러 위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변 전 실장이 스캔들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신적 충격이 컸을 박 씨가 혹여 윗선 개입설과 관련한 알져지지 않은 사실을 폭로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반영된 ‘입막음’ 오찬이 아니냐는 섣부른 억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문화계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봉하마을에 신 씨가 추천한 그림 다수가 전시됐거나 전시될 예정이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소속인 김희정 한나라당 의원은 13일 “청와대의 미술품 구입 지출액은 지난 2004년 1200만 원에서 2005년 9700여만 원으로 대폭 늘었다”며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부처에서 구입한 미술품들을 조달청에 보고하지 않아 ‘정부미술품보관관리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의원 측은 “기획예산처가 보고하지 않은 미술품은 2점으로 가격은 4000만 원 대로 알고 있다”며 “신정아 씨가 작품 구매에 관계가 있는지 해당 부처에 확인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신정아 게이트’는 범여권 실세들은 물론 살아 있는 권력까지 ‘윗선’으로 거론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다. 정윤재 전 비서관의 파문과 함께 임기말 청와대를 직격한 ‘신정아 게이트’ 파문은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최대의 시험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사건이 어디까지 번질지 그리고 진실은 무엇인지 검찰 수사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이를 계기로 극심한 레임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선정국 주도권 장악을 노린 정치권의 강경한 공방이 한몫을 하고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노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레임덕은 급류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