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유승민 남경필 김무성 등 범보수 대선주자들을 돕는 주변부가 꿈꾸는 동상사몽이다. 대세를 선점한 민주당 후보들에게 밀려 지지율을 다 합해도 20%가 채 되지 않는 후보들이지만 그들의 캠프나 지지자가 대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앞서와 같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이 인용되든 반대로 기각되든 지금 상황보다는 여론이 보수 진영에 한결 우호적으로 돌아설 것을 전제하고 있다.
특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미는 새누리당으로선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황 권한대행과 새누리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일종의 꽃놀이패 이론을 정립했다. 요즘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 논리를 통해 아주 노골적으로 황 권한대행을 띄우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띄우고 있다. 일요신문DB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미소로만 답하며 ‘소이부답(웃을 뿐 말이 없다)’하고 있는 황 권한대행이 요즘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많은 코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헌재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말라는 ‘금언령’도 그 중 하나다. 출마냐 불출마냐 하는 입장 자체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관련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말라는 조언이 이어진다.
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놓친 일종의 군불 때기 효과를 이어가자는 제안도 적지 않다. 반 전 총장이 귀국 직후 쉼 없이 달리며 권력욕을 표출했다면 이미 지지율 10%대인 황 권한대행은 신비주의를 조성하면서 언론의 조명 밖으로만 나가지 말라는 조언이 몰리고 있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헌재의 탄핵 결정 이후의 여론은 무조건 새누리당 편이라고 확신한다. 기각된다면 법적으로 연루된 바 없는 박 대통령을 범죄인 취급한 야당이 보수층의 표적이 될 것이다. 반대로 인용된다면, 향후 그의 사법적 처리 과정에서 보수층이 결집할 수 있다고 본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른 퇴임과 함께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보수층이 목격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동정여론이 비등해질수록 새누리당이 유리하다. 황 권한대행이 저렇게 소이부답으로 버티고 있다면 분명 기회는 온다고 본다.” 이 당직자는 황 권한대행과 적잖은 인연으로 오래 알아온 사이다.
그림자 내조형에 가까웠던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적극적으로 전환시킨 것도 새누리당 전략의 일환으로 읽힌다. 하루에 공식 일정만 몇 개씩 소화하고 있다. 취재진에 대한 질문도 정치적으로 바뀌었다. 최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난 황 권한대행은 기자들이 막아서서 질문을 쏟아내자 “국회로 갈까요. 말까요”라고 했다. 이 “갈까요 말까요”를 두고 출마를 할까요 말까요로 해석한 일부 언론보도가 나갔다가 삭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예전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팩트만 나열했던 황 권한대행이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묘한 답변을 내놓으며 여의도 정가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링에 오를지 말지조차 모호한 황 권한대행이 여론조사 리스트에 올라 다른 보수주자들의 공감을 잡아먹고 있다는 것도 새누리당으로선 유리한 점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지사를 ‘보수 후보’로까지는 인식하고 있지 않은 지지층은 대부분 황 권한대행에게 모여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집토끼(보수층)를 잡겠다는 두 주자(유승민 남경필)의 애가 타들어가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황 권한대행 스스로가 여론조사기관에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하고 있지 않고, 또 이쪽(여권)에서도 이름을 뺄 필요가 없다는 요청을 황 권한대행에게 한 것으로 안다”며 “황 권한대행도 출마 의지가 전혀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귀띔했다.
특히 황 권한대행 지지층이 60대 이상 노년층과 대구경북(TK)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 지점부터 다져야 할 유 의원으로선 여간 골치가 아닐 수 없게 됐다. 최근에는 총리실과 법무부에서부터 황 총리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흘러나오고 있다. 상당수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라고 한다.
그래서 유 의원은 범보수 후보 단일화를 일찌감치 거론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국민의당 가리지 않고 친문재인을 뺀 모두가 경선의 링에 오르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세론의 영향이 커지면서 양자대결이 아니면 승산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유 의원 캠프에서는 경선에서 흥행을 불러 스토리를 만들어야만 지지율이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황 권한대행과 유 의원이 경선대에 올라가는 순간 본인이 ‘보수 후보’로 프레임돼 각인되기 때문에 그 점도 노렸다는 분석이다.
남 지사 측은 우선 유 의원부터 잡고 보자는 쪽으로 전략을 가다듬었다고 전해진다. 대선이 목표가 아니라 경선까지 완주해 ‘따뜻한 보수’의 아이콘인 유 의원과 경쟁하는 모습을 각인시키자는 쪽이다. 개혁보수의 두 번째 아이콘이 돼 차차기를 노려야 한다는 쪽으로 시간표가 수정됐다는 말이 정가에서 회자하고 있다. 유 의원에게 모병제로 연일 끝장토론을 제안하던 남 지사는 유 의원이 ‘보수 후보 단일화’를 들고 나오자 단일화 불가론으로 응수하며 다시 토론을 제안했다. 유 의원이 하자는 것에 ‘반대 마케팅’으로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유 의원이 창업하고 싶은 나라를 공약으로 내걸자 남 지사도 창업 관련 일정을 짜면서 응수하고 있다. ‘나는 한 놈만 팬다’는 식이다.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칭으로 더 불리는 김 의원을 향해 측근과 주변부에서 구원등판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만난 김무성계 의원들 대다수는 “형님이 자기 입으로 입장을 번복하기는 그렇고 주위에서 판을 만들어주면 재등판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마치 짠 듯 이야기하고 있다. 유 의원과 남 지사가 의미 있는 지지율을 넘지 못하면 재등판을 공론화해 밀어 올리는 전략을 짜고 있다는 말이다.
김 의원이 반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당일 측근들과의 술자리에서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28주 동안 연속 1위를 한 적도 있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고 밝혀 출마 여지를 남겨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친박계가 ‘황교안 띄우기’에 적극적이지만 그의 출마가 쉽진 않을 것이란 당내 비판도 적잖다. 탄핵 결정 시일이 가까워지면서 보수세력의 결집 필요성이 커졌고, 그 구심이 황 권한대행이 되고 있지만 우선 당내에서 출마 선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인제 원유철 안상수에 이어 홍준표 김문수 김관용 조경태 정우택 등도 저울질 중이다.
9룡이란 얘기도 10룡이란 설도 분분하다. 황 권한대행 출마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런 군소 주자들이 대거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검사 출신인 황 권한대행이 직접적인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도 큰 약점으로 꼽힌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황교안표 정책이나 성과가 전혀 없지 않냐”는 물음이 나오는 이유다.
각종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최근 보수지지층의 응답 유보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푸념하고 있다. 민주당 주자들의 지지율을 다 합하면 반반이었던 보수와 진보의 비율이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보수지지층은 입을 닫고 진보층은 적극적이어서 결과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한다. 지지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보수 주자들이 대거 출마를 결정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응답하지 않는 보수지지층이 자신을 향할 것이란 믿음에 있는 것이다. 헛된 믿음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