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 피의자 로버트 페트릭(왼쪽)과 그의 부인이자 피해자인 제닌 서트펜. | ||
세계적인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에서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 뉴스 지도 전화번호 쇼핑 사진 등 클릭만 하면 찾고자 하는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런 구글의 정보를 악용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는 방법을 구글에서 검색한 후 실제 범죄에 이용한 것. 하지만 고스란히 컴퓨터에 남아있던 검색 정보는 결국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었으며, 마침내 범인을 검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개인의 인터넷 습관이나 검색 기록이 어떻게 수사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이번 사건은 현재 미국 내에서 ‘사생활 보호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제아내가 실종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녁에 있었던 오케스트라단 연습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아요.”
때는 지난 2003년 1월23일 새벽 3시13분.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거주하는 컴퓨터 전문가 로버트 페트릭(51)은 911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 무렵 지역 오케스트라단 리허설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아내가 여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첼리스트였던 제닌 서트펜(57)의 자동차가 오케스트라단 건너편에 있는 한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뒷좌석에는 첼로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그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에 걸쳐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를 목격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한을 산 적도 없었고 또 납치일 가능성도 희박해지자 경찰은 가장 먼저 남편을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다. 수사 도중 그가 과거에 사기죄 및 수표 위조죄로 체포된 사실이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경찰은 최근에도 그가 또 한 차례 수표를 위조했다는 증거를 포착하고 서둘러 그를 구금했다.
게다가 그의 집과 자동차를 수색하던 경찰견이 침대 위의 베개와 그의 트렁크에 대고 반응을 보인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살해됐다거나 납치되었다는 별다른 증거가 나타나지 않자 경찰은 결국 ‘자살 사건’으로 마무리 짓고 시체를 찾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서트펜이 실종되기 직전까지 일하고 있던 회사의 상사와 그녀의 세 아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자살할 리 없다며 남편인 페트릭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떼지 못했다.
상사인 리처드 에반스는 “그녀의 실종에는 이상한 구석이 너무 많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월5일이었으며, 그 후 1월9일~1월16일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몸이 아파서 회사에 나가지 못한다. 나중에 전화를 걸겠다’는 답장만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그가 집에 전화를 걸 때마다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수십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아내가 너무 아파서 전화를 못 받는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결코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그녀의 세 아들들 역시 같은 증언을 했다. 모두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아들들은 거의 매일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지난 1월5일 혹은 1월7일 이후로는 엄마와 단 한 통화도 하지 못했다. 아들들은 모두 “그렇게 오래도록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건 엄마답지 않았다. 전화를 걸 때마다 새아버지는 ‘엄마가 아파서 전화를 못 받는다’거나 ‘이미 잠들었다’는 말만 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오케스트라 동료들 역시 그녀의 자동차가 발견된 주차장은 그녀가 평소 이용하던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 항상 안전한 곳을 선호하던 그녀가 그렇게 외딴 곳에 주차를 할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3개월이 지나갈 무렵 마침내 서트펜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폴스 레이크’ 호수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들이 호수 바닥에서 떠오른 커다란 상자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상자 안에 파이프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던 서트펜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사인은 질식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누군가 그녀의 얼굴을 틀어 막고 숨지게 한 다음 호수에 던져 버린 것이다.
시체 발견 직후 페트릭은 다시 한 차례 살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으며, 검찰의 수사 결과 몇몇 증거들이 법정에 제출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경찰견의 이상한 반응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들은 그의 유죄를 단정 짓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경찰견의 반응만으로 유죄를 판결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그의 스포츠카는 트렁크 안에 시체를 넣을 만큼 그리 넉넉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도 그랬다. 게다가 실제 살인이 벌어진 시점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수사의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이렇게 결정적인 증거 없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재판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전환점을 맞게 됐다. 페트릭의 컴퓨터를 압수해 수사하던 검찰이 그의 인터넷 검색어들을 추적한 결과 놀라운 ‘증거’들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일로 추정되는 1월 초~1월 말까지 그가 ‘구글’을 통해 검색한 단어들 중 ‘시체 분해’ ‘사후 강직’ ‘목’ ‘꺾기’ 등의 수상한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물론 ‘아내를 죽이는 방법’이라는 등의 결정적인 검색어는 아니었지만 그의 검색기록 중에는 ‘맨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22가지 방법’ 등 다분히 의심 가는 사이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가 검색어를 입력한 날짜가 공교롭게도 아내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짜와 일치했다. 더욱 확실한 증거는 그가 ‘구글’로 ‘폴스 레이크’ 호수의 지도와 바닥의 지형 등을 검색해 다운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그가 실종 신고를 내기 직전에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런 검색 기록은 모두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 그는 이런 증거들을 바탕으로 마침내 ‘유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까닭에 살해 동기는 여태껏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태. 단지 과거 그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 가담했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여성들과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아내가 눈치채자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검찰은 평소 낭비벽이 심한 그가 아내의 잔소리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한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에서는 인터넷 습관이나 입력한 검색어가 개인 고유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좋은 본보기라는 점, 그리고 그 사람의 취향이나 관심사, 정치적 성향 등을 수집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증거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법정에서 ‘즐겨찾기 사이트’ ‘검색어 기록’ 등 개인의 인터넷 습관이 증거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