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을 한 괘씸죄가 적용되어 그는 징역6년을 선고받았다. 노년의 그의 삶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이었다. 가족은 외국에 있었다. 면회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감옥에 있는 그를 찾아가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문정역에서 내려 장방형의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차 있는 사이의 길을 이십분쯤 걸어 구치소에 도착했다. 초가을의 햇볕이 따가 왔다. 구치소 입구에서 신분증과 출입 전자텍을 교환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교도관들이 없어지고 이제는 무인 시스템이다. 철창마다 옆에 감지장치가 붙어있다. 목에 건 전자텍을 거기에 대면 철창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구치소 깊숙이 있는 접견실에서 친구를 만났다. 인간은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면 위로가 된다. 입시에서 낙방했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건 같이 떨어진 친구다.
“어떻게 지내냐?”
내가 물었다.
“잘 지내.”
그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도 감옥에 계시는데 나 쯤이야 뭐’ 하던 친구였다.
그래도 그의 미소의 뒤편에는 엷은 적막함이 담겨 있었다.
“요즈음은 대통령 말고 위로받는 죄인은 옆에 안계시냐?”
내가 장난기를 섞어 물었다.
“옆방에 부장검사출신 변호사가 들어와 계셔. 왜 들어와 있는지 주위사람들 한테 말하지 않는대.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불편해 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깊이 잠들어 있는 새벽 네 시면 일어나서 공부한다면서 부시럭 대서 옆 사람들이 싫어하더라구. 자기는 집행유예로 곧 나갈 거라고 한 대.”
“부장검사 출신이 왜 들어왔어?”
“돈을 많이 먹었나봐. 왜 그런 변호사들 많잖아? 얼마 전에도 판사에게 로비해서 보석으로 풀어준다고 하고 오십억원인가 받은 판사출신 여성변호사도 있잖아?”
“대통령도 뇌물죄로 들어가고 부장검사도 들어가고 그랬는데 너는 돈 먹은 게 아니고 사업하다 네 돈 다 털렸는데 억울하지 않냐?”
“그게 내 팔잔데 어떻게 하겠어? 인간이 어떻게 운명을 이겨? 운명이 인간을 휘감아 버리는 거지.”
“오늘아침에 감옥 독방에 있던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감옥에서 벽에 뚫린 식구통으로 식은 저녁밥을 받고 혼자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쓸쓸하다고 하던데?”
가족과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건 행복이었다.
“그건 맞아. 여기 구치소를 보면 독방에서 혼자 밥먹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그래도 네 명이 있는 방에서 그 사람들 하고 같이 밥을 먹어. 다행이지”
“영치금은 있냐?”
아무도 그에게 돈을 줄 사람이 없었다.
“돈 필요 없어. 내가 당이 있어서 밥도 조금만 먹으면 돼. 영치금으로 반찬을 사서 보탤 필요가 없어. 나라에서 주는 반찬만 먹어도 충분해. 뭐 짜장밥도 주는 데 뭘.”
“변호사인 내가 경험하면 감옥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던데 말이야. 범털은 모포나 속옷도 새 거 입고 개털은 범털이 버린 걸 주워 입고 말이야.”
“내가 입고 있는 옷하고 옆방 사람이 입은 옷하고 비교해 봐라.”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접견을 하고 있는 옆의 죄수가 보였다. 얇아 보이는 청색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걸 같이 보면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법무부에서 주는 누런 죄수복을 입고 저 사람은 자기가 사서 입은 거지. 요즈음은 그게 감옥안의 빈부차이라고 할 수 있지. 운동할 때 신는 운동화도 고급을 신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리고 영치금으로 먹을 걸 사서 감방 안에서 혼자 먹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그게 감옥 안 부자들의 모습이지.”
“빈 시간은 뭐를 하고 지내니?”
“그 시간이면 성경 한번이라도 더 읽으려고 노력해. 간디나 그 제자들도 감옥이 수도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했잖아?”
철저히 외로운 그는 고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돈이 없어도 세상에서 격리되어 있어도 바위처럼 묵묵히 앉아서 비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신경줄을 끊어버리신 것 같았다. 그는 어떤 다른 세계에 대한 눈이 열린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나 감옥에서나 마디가 굵은 손을 성경책 위에 얹음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자세가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