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 기업가치 희석에 불만, 오너일가 지분가치 제고 작업 해석도…SK “양쪽 주주 모두에게 도움”
#양사 주주들을 위한 합병?
SK(주)와 SK머티리얼즈는 지난 8월 20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두 회사 간 합병 추진 안건을 의결했다. 우선 SK머티리얼즈가 특수가스 등 사업부문 일체를 물적 분할해 신설법인 SK머티리얼즈를 만든다. 이와 동시에 존속지주사업 부문은 SK머티리얼즈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한 뒤 SK(주)와 합병한다. SK머티리얼즈 보통주 1주당 SK(주) 보통주 1.58주가 배정된다. 현재 상장사인 SK머티리얼즈가 비상장사로 바뀌게 된다. 합병 절차는 오는 10월 29일 열리는 SK머티리얼즈 주주총회와 SK(주) 이사회 승인을 거쳐 12월 1일 마무리될 예정이다.
사측은 이번 합병 결정의 이유로 SK(주)와 SK머티리얼즈의 사업 역량을 결합해 소재 사업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SK(주)가 보유한 글로벌 투자 역량 및 대규모 자본력을 활용해 SK머티리얼즈의 성장세를 견인하겠다는 전략이다.
SK(주) 측은 합병 법인의 기업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양사 주주 역시 합병에 따른 주주 가치 제고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SK머티리얼즈는 반도체용 특수가스와 2차전지 핵심소재인 전구체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영업이익률이 24.5%에 달하는 알짜 기업이다. 따라서 합병법인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주주가치도 높아진다는 논리다.
시장에서는 SK머티리얼즈가 보유한 성장 잠재력 높은 계열사들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2016년 OCI에서 SK그룹으로 편입된 이후 활발한 인수합병(M&A)과 합작사(JV) 설립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SK머티리얼즈 아래 반도체 배터리 화학 소재분야 신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재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산업가스 생산), SK트리켐(전구체), SK쇼와덴코(질화막 및 산화막), SK머티리얼즈리뉴텍(탄산가스),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포토레지스트),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OLED 소재) 등 6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올 7월에는 미국 업체와 국내에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음극재 양산을 준비 중이다.
다만 SK머티리얼즈는 지주사의 자회사로, 보유한 계열사들이 손자회사가 되기 때문에 투자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는 M&A 시 피인수기업(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타사와의 합작 투자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SK(주)와 SK머티리얼즈가 합병한 이후에는 손자회사였던 6개 투자회사들이 신설법인 SK머티리얼즈와 함께 SK(주)의 자회사가 된다. M&A 시 일정 지분만 확보해도 되는 등 투자가 보다 자유로워진다. 아울러 SK머티리얼즈는 그간 활발한 투자로 차입금이 늘면서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한데, 합병하면 지주사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김한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용 재원과 투자경험이 풍부한 SK(주) 주도로 사업 강화를 위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며 “배터리 음극재 등의 투자나 최근 SK실트론을 필두로 한 SiC 전력반도체 사업 밸류체인 통합, 강화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소액주주들 “소부장 대장주 잃었다”
그러나 합병 시 SK머티리얼즈의 IT소재 업체로서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인 반도체용 불화수소 양산 성공과 반도체 호황기 흐름을 타고 소부장 대장주로 꼽혀왔다. 전구체 사업과 최근 시작한 음극재 사업도 2차전지 핵심 소재로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번 합병으로 SK머티리얼즈 및 아래 계열사들의 성장성을 평가해 투자했던 주주들은 지주사의 지분을 갖게 됐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SK머티리얼즈의 경우 실질적인 합병 수혜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한다. SK 합병으로 배당금은 늘어날 수 있으나, 국내 최대 IT 소재 업체로서의 투자 매력이 희석되기 때문”이라며 “투자자 입장에서 SK머티리얼즈 피합병으로 국내 최대 순수 IT소재 업체 투자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책임투자팀장은 “지주사의 주식을 갖는다는 건 굉장히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펀드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라며 “안정성 측면에서는 훨씬 우위에 있겠지만, 반대로 리스크가 있더라도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사의 합병이 오너일가의 지분가치를 극대화하고,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점도 주주들의 불만 요인이다. SK(주)는 고성장세를 기대받는 사업 아이템을 보유한 SK머티리얼즈 및 그 자회사들의 가치를 고스란히 끌어안으면 기업가치 상승효과를 볼 수 있다. 최태원 회장과 오너일가의 지분 가치도 높아진다. 물적분할로 신설한 SK머티리얼즈를 재상장하거나, SK실트론과 합병해 가치와 규모를 키운 뒤 상장하는 등 다양한 투자 유치 전략도 펼 수 있다.
아울러 시장에서는 SK그룹이 추후 SK(주)와 지난 4월 출범한 ICT(정보통신기술) 부문 중간지주사인 SK스퀘어를 합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SK스퀘어를 합병하면 그룹 핵심 계열사이자 SK스퀘어 아래에 있는 손자회사 SK하이닉스가 자회사로 전환돼 지주회사 체제 관련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병 시 SK(주) 최대주주인 오너일가 측 지분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SK(주)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이번에 알짜 계열사 SK머티리얼즈를 합병한 것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
한 재계 전문가는 “SK머티리얼즈는 영업이익률이 높은 알짜 회사로, 지속적으로 소모되고 반도체 특성상 한번 사용하면 바꾸기도 어려운 소재를 생산하기 때문에 성장성이 매우 높다”며 “음극재와 전고체, 산업가스 등 SK머티리얼즈 계열사들의 수익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합병 필요성이 적은데도 단행하는 이유는 주주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최태원 회장과 오너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지주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SK(주) 주주들 가운데 기존 SK머티리얼즈 주주들에 대해 신설 SK머티리얼즈가 새로 기업공개(IPO·상장)를 할 경우 주식을 일부 배당해주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SK(주) 관계자는 “SK(주)는 투자지주사로 그동안 다양한 글로벌 투자를 해오다 보니 SK머티리얼즈 소재사업의 파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판단에 합병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기업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보면 배당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되는 점 등 양쪽 주주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며 “주총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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