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판정 징계 H 씨 홍준표 지지 선언과 맞물려 묘한 소문…임 의원 “관련 민원 들어와 협회로 고스란히 내려준 것”
1990년대 한국 여자핸드볼은 세계 최강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은메달은 당시 한국 여자핸드볼의 세계적 위상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황금기 멤버 중 한 명인 임오경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마, 국회에 입성했다. 또 다른 멤버 H 씨는 현재 대한핸드볼협회 기술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7년 5월 1일 ‘체육인 1만인 문재인 지지선언’에 함께 이름을 올린 핸드볼인이기도 하다.
2021년 11월 5일 대한핸드볼협회는 전국체육대회 핸드볼 여고부 결승에서 불거진 편파판정 논란과 관련한 징계를 발표했다. 경기 운영 미숙 책임을 물어 이 경기의 기술임원들을 징계한다는 내용이었다. 징계 중심엔 H 씨가 있었다. 이날 대한핸드볼협회는 대한체육회에 민원 심의 답변을 통해 “해당 경기에서 기술임원(Technical Officer)의 주요 책무를 소홀히 한 H(실명 거론) 기술임원에 대해 2022년 3월까지, O(실명 거론) 기술임원은 올해 말까지 모든 경기 배정을 금지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H 씨가 징계를 받게 된 것은 10월 14일 펼쳐진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핸드볼 여고부 결승전 때문이었다. 이날 결승전에선 일신여고와 황지정보산업고가 맞붙었다. 일신여고는 2~3점 차 리드를 잡으며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 그런데 경기 막판 일신여고 선수 3명이 퇴장을 당했다. 경기 종료 3분 40초 전 24 대 22로 앞서던 일신여고는 황지정보산업고에 25 대 26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경기 막판 선수 3명이 퇴장당한 상황과 관련해 편파판정 논란이 불거졌다. 황지정보산업고 감독이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것이 회자되며 논란은 증폭됐다. 그 과정에서 경기의 전반적 운영을 담당하는 H 씨가 편파판정을 주도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경기가 끝난 뒤 10월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이날 편파판정 논란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국민청원 작성자는 “기술임원들의 도 넘은 경기 관여는 편파판정을 넘어 승부조작”이라면서 일신여고 지도자와 황지정보산업고 지도자에 대한 운영위원(기술임원)의 제재가 공정하지 않았던 부분을 지적했다.
작성자는 “경기가 끝난 뒤 심판과 기술임원들에 대한 소청을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묵살됐다”면서 “아이들에게 페어플레이 정신과 준법정신을 강조하면서 기성세대는 불공정, 편법, 반칙, 불법으로 교육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이 올라온 지 9일 뒤인 11월 5일 대한핸드볼협회는 H 씨 징계를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편파판정 논란’에 따라 대한핸드볼협회가 관련자를 징계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H 씨 측이 징계에 반발했다. 징계가 협회 상벌위원회 규정,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을 무시한 채 소명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H 씨 주장이다.
H 씨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협회 관계자로부터 ‘징계 관련 기사가 나갈 것’이라는 통보만 받았을 뿐, 징계위원회를 비롯한 사건 진상규명 및 소명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취재에 따르면 H 씨는 11월 2일 협회로부터 ‘와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 회의에 참석했다.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 전무이사, 심판위원장, 본부장, 경기이사 등이 참석한 회의였다. 이날 회의에선 전국체전 여고부 결승전 당시 판정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다.
H 씨는 “이날 회의에서 한 인사가 그날 경기 운영 관계자들에게 ‘국민청원에 올라간 동일한 내용을 임오경 의원에게도 보냈다’고 말했다. ‘거기(의원실)까지 이런 일들이 올라간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뉘앙스로 공개적으로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회의가 끝난 뒤 3일 후 핸드볼협회 고위 관계자가 H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H 씨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당신의 징계 조치가 알려질 것”이라면서 “실명으로 거론되더라도 당황하지 마라”고 통보했다. H 씨는 “무슨 이유와 절차로 내게 징계를 내린 건지 물었지만 (협회 관계자가) ‘전화로는 답할 수 없다’는 답만 했다”면서 “그날 전화를 받은 뒤 정말로 나를 징계한다는 뉴스가 나와 있었다”고 했다.
대한핸드볼협회는 편파판정 논란이 불거진 경기 영상 분석을 아시아핸드볼연맹에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시아핸드볼연맹 측은 ‘매끄럽지 않은 경기 운영이 있는 점은 확인했으나 정상적인 판정과 경기 운영’이라는 답변을 보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H 씨는 징계 부당성을 입증하는 절차에 나섰다. H 씨 측 법률대리인 김선웅 변호사(법무법인 지암)는 11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기에서 3명의 선수가 동시에 퇴장당한 것이 아니라, 선수 2명은 개인 파울로 인해 심판으로부터 퇴장조치를 받았으며, 그 사이에 일신여고 감독의 경기규정 위반과 경고 누적으로 규정에 따른 선수 퇴장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일신여고 선수 3명의 퇴장은 각기 다른 사유로 심판에 의해 퇴장당한 것이고 기술임원 H 씨의 감독에 대한 경고판정은 이미 퇴장당한 선수들과 무관한 판정”이라고 덧붙였다.
핸드볼에선 감독이 경고를 2회 누적할 경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가 2분간 퇴장을 당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을 기술임원 경고에 따라 심판이 적용한 것이라는 게 H 씨 측 설명이다. 김선웅 변호사는 “상벌위원회나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개최하지도 않은 채 5개월 출전정지의 중징계를 내린 것은 핸드볼협회 결정에 누군가 부당한 개입을 했거나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외압 의혹이 제기된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선 우선 H 씨를 둘러싼 또 다른 사건 하나를 주목해야 한다. 전국체전 핸드볼 여고부 결승전이 펼쳐진 지 일주일 뒤인 10월 21일 벌어진 일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한창일 때다. 후보로 나선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대표 출신 100인 홍준표 지지선언’ 행사를 열었다. 이날 H 씨는 이 지지선언에 참석했다. 홍 의원은 지지선언과 더불어 H 씨로부터 등번호 2번이 적힌 유니폼을 선물 받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홍준표 의원이 이날 행사에서 목에 걸고 있던 금메달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핸드볼에서 우승한 H 씨가 획득했던 그 메달이었다. 이 퍼포먼스가 펼쳐진 지 6일이 지난 10월 27일 H 씨를 둘러싼 편파판정 논란에 대한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11월 5일엔 대한핸드볼협회가 H 씨에 대한 ‘경기 배정 정지 5개월’ 징계를 발표했다.
체육계와 핸드볼계 일각에선 ‘윗선에서 H 씨에 대한 징계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흘러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체육계 관계자는 “한 여당 의원이 야권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한 H 씨에 대해 징계 관련 외압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일신여고 측 민원이 대한체육회와 청와대 국민청원, 그리고 한 국회의원실에 전달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핸드볼 경기인 출신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름이 거론됐다.
이런 가운데 11월 9일 오후 임오경 의원이 H 씨에게 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 의원 보좌관 역시 H 씨에게 세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H 씨는 전화를 모두 받지 않았다. H 씨는 “평소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이인데 전화가 왔는데 받지 못했다”면서 “임 의원 보좌관에게도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임오경 의원은 11월 2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내가 (H 씨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면서 “H 씨 쪽 자료가 홍준표 의원실, 배현진 의원실 이렇게 해서 갔다고 하더라. 그런데 의원들끼리 얘기하면서 내 이름이 거론됐다고 하기에 봤더니 11월 8일에 내가 협회하고 무슨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협회와 통화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H 씨에게 이게 무슨 내용인가 해서 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다.
H 씨 징계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임 의원은 “관련 민원이 의원실로 들어왔기에 절차를 정확하게 밟은 것이지 징계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임 의원은 “충북도체육회에서 의원실로 민원이 들어와 그걸 고스란히 핸드볼협회에 내려줬다”면서 “그건 협회에서 다뤄야지 의원실에서 다룰 일이 아니라고 봤다. 자료가 온 것을 고스란히 협회에다 내려준 것”이라고 했다.
임 의원은 “컨트롤타워를 정확하게 가르쳐준 건데 거기에 내 이름을 걸어놓으면 안 된다”면서 “내가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내가 개입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절차에 의해서 내려 보낸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그는 “H 씨가 홍준표 의원실로 무슨 글을 보냈는데 내가 협회하고 통화를 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 또 이게 말이 돌고 돌아서 내가 외압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임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서 일을 처리했으며 대한핸드볼협회 측과 직접 통화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H 씨는 “홍준표 의원이나 배현진 의원에게 자료를 건넨 적이 없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자료를 준 적도 없는데 추측성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한핸드볼협회 한 관계자는 11월 26일 “10월 말쯤에 임오경 의원이 내게 전화를 했다”면서 “충북도체육회가 제출한 편파판정 논란 관련 자료가 대한체육회에서 대한핸드볼협회로 이첩됐는데, 그 자료가 이첩되기 전 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임 의원에게 전달받은 내용은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민원이) 국회로 들어왔는데 (논란은) 스포츠 경기에서 나타난 부분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협회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잘 조사하고 정리해 달라’고 했다”며 “(통화 이후) 대한체육회 쪽에서 온 (민원) 내용도 똑같은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H 씨에 대한 불법 징계 의혹에 대해선 “H 씨에 대한 경기 배정 금지는 내부적인 처분으로 외부적으로만 징계로 발표한 것”이라며 “경기 배정 금지는 징계 범주에 속해 있지는 않다”고 보탰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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