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비밀, 이젠 시청률 조작업체가 방송 좌지우지…국가 주도 시청률 조사 주장엔 “방송 장악” 비판론
방송제작사 진둔필름의 리쉐정 주임은 2017년 히트한 ‘인민의 명의’ 총감독 및 배급자다. 최근 그는 “90% 이상의 드라마가 시청률 조작에 가담한 상황이다. 시청률 조작 문제는 현재 업계 전반의 악성종양과도 같다”고 폭로했다.
리쉐정 주임은 “‘인민의 명의’가 방송되기 전 나는 시청률을 살지 말지 고민하다 결국 포기했다. 대신 3000만 위안(55억 7000만 원)을 홍보비로 썼다”면서 “다행히도 시청률이 잘 나왔다. 그때를 계기로 시청률 조작과의 전쟁을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률 조작 반대운동은 ‘인민의 명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악성 관행을 물리칠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가 한 관계자도 “새로 설립된 제작자들은 별다른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청률을 구입(조작을 의미)해서 인지도를 쌓고 회사를 키우면 된다. 이러다 보니 (시청률을 조작하지 않는) 일부 제작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됐다. 또 업계가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작품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사실 시청률 조작은 중국 방송계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2016년 한 제작사는 ‘미인사방채’라는 드라마를 모두 찍고, 방영이 가능한 방송사를 접촉했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드라마는 방영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작사가 시청률 조작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중국 드라마제작산업협회가 회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제작사 대표들은 ‘시청률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방송국은 높은 시청률만을 원했고, 이젠 제작사보다 시청률 조작 업체의 파워가 더 세졌다. 제작사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2018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드라마 ‘낭도’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7200만 위안(133억 원)을 지불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시청률 공신력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던 것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리쉐정 주임이 투자에 참여해 2021년 4월 방영된 드라마는 편당 1억 위안(185억 원)을 방송사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제작사는 편당 9000만 위안(167억 원)을 시청률 조작에 썼다. 리쉐정은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시청률 구매에 썼다. 그러다보니 작품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제작사 사정은 어려워졌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시청률 조작 전문업체가 갈수록 권력화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제작사는 물론 방송사마저 시청률 조작업체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시청률이 높으면 더 많은 수익과 광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주는 시청률을 기준으로 비용을 차등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웹드라마로 유명세를 떨친 작가 궈밍은 일부 시청률 조작업체가 아예 제작사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신생 제작사들이 만든 프로그램 질은 그야말로 수준 이하였다. 그런데도 어떤 플랫폼에서 방송을 해도, 품질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시청률은 잘 나왔다. 시청률 조작업체들이 방송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언론대학 류옌난 교수에 따르면 시청률 조사는 이렇다. 우선 시장 크기에 따라 무작위로 표본 가구를 추출한다. 그 다음 이들에게 필기로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 카드 또는 단말기를 지급한다. 표본으로 추출된 가구원은 TV를 볼 때마다 자신의 시청행위를 여기에 지급한다. 그 후 시청률 조사업체가 이를 회수해 집계한 뒤 통계를 낸다.
업체들이 이 과정에서 시청률을 조작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추출된 표본 가구원의 정보를 입수해 이들을 직접 접촉하는 경우다. 업체는 가구원에게 돈을 주거나 생활용품을 주는 등 꾸준히 로비를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적어 내도록 했다.
다른 방법은 좀 더 기술적이다. 궈밍은 “몇몇 업체들은 돈을 아끼지 않고 서버 해킹 등을 통해 시청률 조사업체의 행위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구원이 단말기 버튼을 눌러 선택한 결과가 조사업체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시청률이 조작된다는 뜻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드라마의 경우 회당 50만 위안(9200만 원) 정도를 내면 시청률 순위 3위에 진입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제작사와 방송사가 시청률 조작에 목을 매는 것은 광고 때문이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정젠은 “우리가 광고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청률이다. 시청률에 따라 지급하는 광고비는 크게 차이가 난다. 계약서상 시청률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즉시 광고를 뺀다는 조항은 이제 기본”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방송가는 이른바 ‘맞불계약’이 대세라고 한다. 방송사와 광고주가 계약을 할 때 합의된 시청률 수치를 달성해야 약속된 광고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시청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계약서상 비율에 따라 광고비는 삭감된다. 방송계 다른 관계자는 “계약서상 설정된 최저 시청률 밑으로 가면 아예 돈을 받지 못하는 계약도 많다”고 귀띔했다.
중국영화문학학회 부회장이자 유명 각본가인 왕하이린은 “시청률 수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시청률은 계산하기 어렵다”면서 “방송국이 제작사에게 만약 제작비용을 일부 선지급했다면, 이는 작품을 만드는 데 쓰라는 게 아니고 시청률을 사라는 얘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지는 그의 비판이다.
“2010년대 들어 새로운 제작사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작품도 없이 우선 시청률부터 구매하는 방식으로 방송사와 계약했다. 기존 제작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따라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작사들은 사라졌다. 작품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아무도 극의 품질엔 관심이 없다.”
시청자들과 누리꾼들 역시 시청률 조작 행태를 성토하고 나섰다. 한 누리꾼은 “솔직히 요즘 국내 작품은 안 본다. 한국 드라마와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 시청률뿐 아니라 드라마 팬도 가짜고, 리뷰도 가짜다. 모든 게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한 유명 드라마 블로거도 “요즘 제작사와 채널들이 우후죽순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시청률만 사면 바로 방송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드라마는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자본의 오물”이라고 했다.
그러자 당국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가방송총국은 ‘방송업계 통계관리’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규정엔 시청률 통계를 방해하거나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시청률 조작을 막기 위해 주무부처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시청률 조사방법을 검토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또한 전무한 시청률 관련 법규 제정도 논의 중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영화처럼 국가 주도로 시청률을 조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영화의 경우 국가가 직접 관객수를 집계하고 있다. 국가영화자금처 관계자는 “과거엔 외국 자본이 포함된 민간 영역에 흥행 집계를 맡겼다. 그 당시 흥행 집계는 엉망이었다”면서 “하지만 국가가 직접 하기 시작한 후 중국 영화 흥행 데이터는 객관적이고 투명해졌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감지된다. 영화에 이어 방송마저 국가가 장악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 조사에 필요한 빅데이터 자산을 국유화하면서 인민 통제를 강화하고, 당국 입맛에 맞는 드라마들만 방영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익명을 원한 한 전문가는 “영화 흥행 집계가 투명해졌다고 하는데, 지금 나오는 영화들의 작품성만을 놓고 보면 과연 국가 주도가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한때 우리 영화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뛰어난 작품이 안 나온다. 영화를 국가가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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