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중국 생활 마무리, P급 감독 자격증 따내…“2002 월드컵 경기장 못 밟았지만 현장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
#오랜 기간 코치 생활, 다음 행보는?
최성용 코치는 최근 2019시즌부터 시작한 약 3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했다. 최강희 감독을 따라 중국으로 향한 그는 3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톈진 취안젠, 다롄 이팡, 상하이 선화, 3팀을 경험했다. 그는 "중국이라는 무대가 역시나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팀이 흔들려도 감독 교체 이야기가 나온다. 그동안 중국 리그가 돈을 많이 써 왔기에 엄청난 몸값의 외국인 선수들과 함께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2021시즌 말미에는 동료들보다 일찍 한국으로 복귀했다. 그는 "최강희 감독님은 시즌 도중 사임하셨지만 구단에 '코치들은 시즌 끝까지 팀을 맡게 해달라'고 당부하셔서 선수들과 함께했다"며 "연말에 리그 일정과 P급 라이선스 교육이 겹쳤다. 구단 배려로 시즌이 끝나기 전 한국에 미리 들어와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교육은 다 받은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상하이에서 마지막 일부 급여를 받지 못했다. 팀에서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의 일부 정책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기다리다보면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며 웃었다.
최성용 코치는 10년 이상 지도자 생활을 이어왔다. 그간 코치직만 이어왔지만 이제는 프로 최상위 무대 감독까지 맡을 수 있는 자격증(P급 라이선스)을 따냈다. 오랜 기간 코치로 활약해 온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코치 생활을 오래했는데 이제 감독이 될 수 있는 P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감독 자리에 가면 좋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코치는 현장에서 열심히만 하면 불러주시는 곳이 많다. 감사하게도 최근까지 러브콜이 많았다. 감독이 되는 것은 좀 다른 것 같다(웃음).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한 느낌이다. 당분간은 좀 쉬면서 기회를 기다려야겠다"고 말했다.
#한일전에 강했던 최성용, J리그 진출까지
최 코치는 선수시절 당대 대한민국 최고 측면 수비수로 각광받았다. 체구가 크지는 않았지만 스피드와 파워를 겸비했고 측면에서 크로스도 날카로웠다. 세계 최고 측면 수비수였던 호베르투 카를로스에 빗대 '최를로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수비수 본연의 임무인 수비에서도 강점을 보여 상대 에이스를 전담 마크하는 역할도 잘 수행했다. 그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각인된 계기 또한 수비력 덕분이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준비하는 대표팀에 선발됐다. 당시 팀은 최용수, 윤정환 등 두세 살 많은 형들이 있던 팀이었다. 일종의 '월반'으로 팀에 들어간 것이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일본을 만났고 당시 일본에서 각광받던 마에조노를 잘 막아서면서 팀에서 자리를 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곧 A대표팀에도 불려갔는데 또 한일전을 치렀다. 그러면서 대학생 신분인데도 일본 축구계에 내가 조금 알려졌던 것 같다."
한일전과 유난히 인연이 깊었다. 1994년 연말 올림픽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이후 1995년 초, 세 번째로 치른 경기가 한일전이었다. 당시 1월 열렸던 올림픽 대표팀의 친선대회 직후 2월에는 A대표팀에 합류했다. A매치에서도 약속이나 한 듯 일본을 만났다. 그의 A매치 첫 4경기 중 3경기가 한일전이었다.
한일전에서 활약은 일본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학생이던 그에게 J리그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2002년 때도 그렇고 그 이후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따며 군 혜택을 받는 선수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1990년대에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고 생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며 "J리그 구단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군대 문제가 걸렸다. 대학교 4학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식도 하기 전에 상무에 입대했다(웃음). 군복무를 하고 나서 J리그로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화려했던 대표팀 생활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대표팀 생활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1996년 올림픽을 비롯해 두 번의 월드컵(1998, 2002) 등 굵직한 대회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그 외에 종종 축구팬들에게 회자되는 경기는 브라질과 친선경기다.
"1997년과 1999년, 두 경기를 치렀다. 당시 브라질은 '삼바축구'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다. 1997년에는 호나우두, 카를로스, 카푸, 둥가 등 최고 선수들이 다 뛰었다. 1999년에는 히바우두, 카푸 등이 있었는데 (김)도훈이 형이 골 넣으면서 우리가 이기지 않았나. 1997년에도 잘 싸웠는데 90분 막판에 한 골 실점하면서 1-2로 졌다."
1999년 브라질이 한국에 당한 패배는 브라질 A매치 역사상 최초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한 패배였다. 당시 김도훈의 결승골에 도움을 기록한 선수가 최 코치다. 그는 "한창 몸 상태가 좋을 때였는데도 개인 돌파로는 브라질 선수들을 뚫지 못하겠더라"며 "2 대 1 패스로 주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이다 마지막에는 뛰어 들어가는 도훈이 형을 보고 기습적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감사하게도 잘 마무리 해주셔서 골이 들어갔다"며 웃었다.
아쉬움이 남는 대회도 있다. 대한민국이 역대 최고 성과를 낸 2002 한일 월드컵이다. 23인 최종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장을 밟지는 못했다. 그는 "사실 엔트리에서도 탈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표를 앞두고 부상이 있어 훈련도 참가하기가 힘든 상태였다. 핌 베어벡 당시 코치가 잘 봐줘서 뽑히지 않았나 생각한다(웃음). 몸 상태를 끌어올렸지만 경기를 뛰지는 못했다. 주위에선 아쉽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웃지 못할 기록에 대해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이걸 내 입으로 얘기하면 '무덤 파는 일'일 수도 있는데(웃음) 대표팀의 기록적인 대패에 모두 함께했다"면서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에 0-5로 깨질 때, 히딩크 감독 오시고 '오대빵' 별명 생겼던 프랑스전, 체코전 0-5 패배까지 세 경기에 모두 뛰었다. 그걸 다 뛰는 것은 쉽지 않다(웃음). 딱 두 명인데 나랑 이민성 형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나는 내 지역에서 잘 막았는데 민성이 형이 많이 뚫렸다"는 농담도 더했다.
#축구 지도자 최성용이 그리는 그림
10여 년 이상 코치 경험을 쌓은 최 코치는 이제 감독 데뷔를 기다린다. 그는 "라이선스를 획득했으니 이제 조금은 욕심을 내봐도 되지 않을까. 코치 시절에도 B팀 감독을 맡을 때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최전선에 서서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이 된다면 펼쳐 보이고 싶은 축구는 무엇일까. 아직은 준비 단계지만 그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최 코치는 "축구는 지속적으로 변한다"는 전제를 먼저 말했다. "몇 년 전까지는 공을 소유하는 축구가 세계를 지배했다. 나도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또 다른 축구가 득세를 한다. 결국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공을 빠르게 공격 지역으로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원 삼성 코치 시절 서정원 감독과, 중국에서 최강희 감독과 오랜 기간 손발을 맞췄다. 공교롭게도 둘은 국내 무대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다. 최 코치는 이들과 함께했던 것이 자신의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서정원 감독님은 선수들이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지도자다. 자연스레 장기간 팀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다. 최강희 감독님은 결과를 내는 데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리그를 치르다 보면 중요한 고비가 오는데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을 하신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팀이 우승을 한다. 두 분의 장점을 모두 흡수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내 목표다."
최 코치는 두 감독의 공통점도 찾아냈다. 그는 "선수들이 인간적으로 따르는 지도자다"라며 "두 분 모두 팀을 떠날 때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떠난 이후에도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경우를 봐왔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울리는 것이 지도자와 선수 관계 아니겠나. 나 또한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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