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4개 기업 분할 ‘먹고살 만해지니 분가’ 논란…LG화학 “LG BCM 상장 계획 없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은 손뗐지만 양극재 등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주주들을 설득해왔다. 하지만 LG BCM이 신설되면서 LG화학의 약속이 의심받고 있다. LG BCM이 양극재 생산량을 늘리면 LG화학 양극재 사업의 미래 가치가 LG BCM에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LG화학 측은 “LG BCM 상장 계획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 LG BCM
LG화학은 2021년 11월 양극재 생산법인 LG BCM을 설립했다. LG BCM은 오는 2025년까지 5000억 원을 투입해 2차전지 양극재 공장을 짓고 직간접적으로 1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다. LG BCM이 짓는 구미공장은 양극재 6만 톤(t)을 생산한다. 이는 고성능 순수 전기차(1회 충전으로 380km 이상 주행) 기준 50만 대의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는 규모다. 단일 공장으로는 기존 LG화학 청주공장(3만 5000t)의 2배에 육박한다.
구미공장은 ‘구미형 일자리’ 사업으로 기획됐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와 비슷한 방식이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2020년 말 LG전자가 TV 생산라인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옮기면서 구미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이번 LG화학의 구미공장 설립은 그에 대한 대책으로 추진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른바 정치권 이슈 때문에 추진되는 것이니만큼 (구미공장)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시각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구미공장의 생산 규모가 예상보다 크고, LG BCM이 중국 화유코발트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구미공장을 짓는 방안이 논의되자 LG화학 직원과 증권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화유코발트는 세계 최대 정련 업체인 만큼 보여주기식의 공장 설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LG화학 한 직원은 블라인드 사내 게시판을 통해 “청주화학 노조위원장이 ‘구미 정치권 공약 때문에 마지못해 구미 공장을 신설하지만 향후에도 양극재 공장은 청주 중심으로 증설할 것이라고 회사 측으로부터 확답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면서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구미와 LG BCM 중심으로 (증설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LG화학 다른 직원도 “광주형 일자리는 GGM이라는 작명만 봐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LG BCM은 ‘코어’와 같은 단어를 사명에 넣어 굉장히 의미 있는 자회사라고 대내외에 알리는 것만 같다”고 꼬집었다.
증권가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양극재도 배터리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LG BCM이 설립된 이상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지속적인 자금 수혈로 전체 기업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 LG화학과 유사한 규모로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는 2016년 이후 각각 두 차례(5180억 원)와 네 차례(4300억 원)의 유상증자를 결의한 바 있다. LG BCM도 모회사 LG화학을 통해 자금을 수혈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향후 분할된다면 LG엔솔 때처럼 “LG화학 덕에 성장한 회사가 먹고살 만해지니 따로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LG BCM처럼) 작은 기업으로 설립한 후 점차 덩치를 불리면 궁극적으로는 기업공개(IPO·상장)를 한다고 해도 LG화학 투자자들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LG화학은 터무니없는 우려라고 반박한다. LG화학은 첨단소재부문을 통해 양극재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즉, 구미공장은 여러 생산기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LG화학 관계자도 “LG BCM 상장 계획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분할로 경쟁력 키운 LG화학의 역사
주주들의 반발과 별개로 LG화학이 오랜 기업 분할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분할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신규 먹거리가 될 만한 사업을 인큐베이팅(숙성)한 후 분할하는 것이 LG화학의 역할이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LG화학은 2000년 이후 4개 기업을 분할했다. 2001년 LG생활건강을 시작으로 2002년 LG생명과학, 2009년 LG하우시스(현 LX하우시스), 2020년 LG에너지솔루션을 분할했다. 분할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역신장한 적이 없고, 2000년 1만 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70만 원 안팎으로 상승했다.
분할된 기업도 대부분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LG생활건강은 분할 이후 화장품, 생활용품 시장에 집중하면서 2001년 당시 1만 원대였던 주가가 2020년 한때 178만 원까지 올랐다.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해 온라인 CEO(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LG생활건강과 LG하우시스 분사가 우리의 성장을 막지 못했듯 LG엔솔 분사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화학이 배출한 기업들이 잘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과거에 비해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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