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규제로 혜택 본 IT·플랫폼 업계가 법 제정 강력 반대…소상공인·소비자 부담 커져
#대선 정국 속 물 건너간 ‘온플법’
지난 1월 20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중기중앙회 정책간담회’에서 “올해 주요 정책으로 온플법 제정을 추진해 공정거래를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 위원장은 “플랫폼이 독점력과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갑을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공정위는 갑을 이슈 대응으로 온플법 제정을 통해 플랫폼 독점력 남용에 대해서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플법 제정은 조 위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안이다.
앞서 1월 11일 막을 내린 임시국회에서 온플법 제정안 통과가 무산됐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입법 의지를 재차 강조한 셈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도 온플법이 1년이나 계류한 법안이고 여야 모두 법 취지에 공감하는 만큼 서둘러 통과시키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지난해 11월 이후 여야 논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도 없고 대선을 앞둔 만큼 차기 정부에서 다시 논의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
대선 정국으로 인해 여야 논의가 중단된 만큼 차기 정부에서 온플법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정권이 바뀐다면 입법 논의를 원점에서 시작하거나 아예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온플법 입법을 당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국민의힘은 중복규제 우려·명료한 기준 미비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아직 온플법 관련 입장이나 공약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새해 시작과 함께 플랫폼 규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1월 6일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심사지침’ 제정안을 마련해 1월 26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지침에 명시된 주요 법 위반 행위 유형은 ‘자사 우대·끼워 팔기’와 입점업체·소비자가 경쟁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직·간접적으로 방해하는 ‘멀티호밍 제한’이 있다. 입점업체 등에 거래 조건을 경쟁 플랫폼 조건과 최소한 같거나, 더 유리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최혜 대우’ 행위도 포함돼 있다. 이런 행위를 한다면 공정거래법(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지난 1월 4일에는 ‘디지털 공정경제 구현’을 목표로 플랫폼과 온라인 쇼핑 등 혁신 분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2022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과제는 디지털 경제에서의 경쟁촉진 및 소비자 권익증진이다. 이를 위해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력 남용행위를 집중 모니터링한다. 모빌리티·온라인쇼핑 분야에서 성행하는 자사 우대(심판·선수를 겸하는 이중적 지위를 이용한 연관시장 독점화), 앱 마켓 분야에서의 멀티호밍 제한(다른 플랫폼 이용 제한) 등이 주요 대상이다.
웹툰·웹소설 분야의 2차 저작권 양도 요구, 음악 저작권 분야의 경쟁사업자 진입 차단 등 지식재산권 보호도 강화한다. 지난해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와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저작권 갑질 논란으로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바 있다. 메타버스, NFT(대체불가토큰)를 비롯한 디지털 거래 전반의 불공정 행위도 집중해서 점검한다. 아울러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음원서비스 등 디지털 구독서비스의 까다로운 이용해지 절차, 지나친 취소 수수료 등의 실태를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내로남불 국내 IT·플랫폼?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7개 단체가 모인 디지털경제연합(디경연)은 정부에 법안 추진 즉시 중단을 요구하며 현 온플법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디경연은 기업·학계·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심층 논의 선행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연이어 내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 등 6개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는 “코로나19로 유통 산업의 온라인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중소상공인의 의존도가 증가했다”면서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IT업계와 소상공인 간 극심한 입장 차이는 온플법 관련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는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가운데 플랫폼이 잇따라 수수료를 올리면서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 주요 배달 플랫폼에서 배달료를 속속 인상하고 있다. 이에 각종 프랜차이즈들도 가격을 인상하고 나섰다. BHC는 치킨 메뉴의 권장 소비자가격을 1000~2000원, 교촌치킨은 상품 가격을 500~2000원 인상했다. 1월 10일 한국행정연구원 미래행정혁신연구실의 ‘배송·배달 서비스 관련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음식배달 시 배달료 적정 여부에 대해서 응답자의 53.4%는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프랜차이즈업계 한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배달수수료 부담이 커지면서 자사앱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민 중”이라며 “수수료 인상 관련해서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결국 1월 21일 이억원 기획재정부 차관은 ‘제3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개최하고 “2월부터는 소비자단체협의회가 매달 1회 배달수수료 현황을 조사해 소비자단체협의회 홈페이지와 소비자원 홈페이지에 공개할 계획”이라며 “최근 급격히 상승한 배달수수료는 외식물가 상승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배달비를 아끼려고 아파트 주민들끼리 한 번에 배달시키는 ‘배달 공구’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배달수수료를 비교하려면 일일이 각각 배달앱에 들어가서 비교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내 IT·플랫폼 업계의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명 ‘구글갑질방지법’(인앱결제강제금지법)이 세계 최초로 지난해 9월 14일부터 한국에서 시행되면서 수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7일 애플은 법 준수를 위해 한국 앱스토어 상의 앱 내 제3자 결제 서비스를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구글도 제3자 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반면 네이버클라우드는 구글갑질방지법을 계기로 촉발된 게임앱 결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과거 국내 IT·플랫폼 업계는 글로벌 앱 마켓을 양분하고 있는 구글·애플이 최대 30%에 달하는 수수료(통행세)를 부과하는 인앱결제 시스템 도입을 마켓 입점사에 강제하는 관행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구글갑질방지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국내 IT·플랫폼 기업들도 플랫폼 기업 노동자 사망, 수수료 논란, 갑질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실제 지난해 3월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앱마켓 입접업체의 40%, 숙박앱 입점업체의 31.2%가 불공정거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시기 중기중앙회 조사에서는 오픈마켓 입점업체의 98.8%, 배달앱 입점업체의 68.4%가 온플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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