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가에선 박 전 대통령 정치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로 2004년을 꼽는다. 2002년 대선을 전후로 제1야당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썼다. 2004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결의하며 ‘탄핵 역풍’에 직면했다. 탄핵 반대 여론이 70% 가까이 됐던 까닭에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은 거셌다. 한나라당엔 패배 위기감이 짙게 깔렸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총선을 한 달 앞둔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해 17대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자랑하던 초호화 당사 여의도 아시아원빌딩을 박차고 나와 ‘천막당사’에서 당무를 보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천막당사는 옛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 부지에 들어섰다.

천막당사라는 파격 카드를 꺼낸 한나라당은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천막당사 체제에서 치른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 지위를 유지했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152석 과반 의석을 얻었다. 영남에서조차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강하게 불었던 것을 감안하면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에 동참했던 새천년민주당은 호남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며 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새천년민주당은 민주노동당(10석)에 이어 제3야당으로 주저앉으면서 역사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졌다.

당시 천막당사를 출입했던 전직 언론인은 “천막 안의 탁한 공기를 마시며 기사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기자들 사이에선 왜 한나라당이 쇄신을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같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푸념 섞인 불만이 들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22년 현재 천막당사 자리는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다. 중소기업박람회장 부지였다가 천막당사 부지로 활용된 뒤 이곳은 주차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서울국제금융센터(IFC)다. ‘초라함’을 바탕으로 쇄신 이미지 구축을 위해 낙점됐던 그 장소는 현재 금융 중심지 여의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들어선 땅이 됐다.
17대 총선 2년 후인 2006년 지방선거에선 박 전 대통령 ‘선거의 여왕’ 이미지가 다시 한번 부각됐다. 2006년 5월 31일 펼쳐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지방 광역단체장 16자리 중 13자리를 석권하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승을 거뒀다.

박 전 대통령 개인의 불행은 정치적 호재로 작용했다. 커터칼 피습사건 이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이 한나라당을 향한 표심으로 이어진 까닭이었다.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 우세가 예상됐던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판도가 뒤바뀌었다. 커터칼 피습사건을 기점으로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가 지지세를 확장하며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박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대전은요?”라고 했다는 말이 보도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수술 다음 날 대전 판세를 물어본 게 부풀려져서 알려졌다고 한다.
커터칼 피습사건은 대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지율이 앞서던 지역에선 승리 쐐기를 박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피습당했던 신촌 현대백화점 옆 골목 자리는 ‘천막당사’ 부지와 달리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피습 당시 존재했던 몇몇 영업장은 현재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시민들도 이 골목을 ‘커터칼 피습사건 현장’이라고 느끼기보다는 평소에 자주 지나가던 거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2004년 총선 선전에 이어 2006년 지방선거 압승을 진두지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주자급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정국으로 이어진다. 탄핵 소용돌이가 몰아친 뒤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12월 30일 사면됐다.
한나라당 시절 고위 당직을 지낸 한 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과 2006년 자신의 캐릭터를 시의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선거를 잘 운영한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선거의 여왕 이미지를 가진 뒤 대통령이 된 다음 탄핵 소용돌이에 말려들며 정치적으론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점 역시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개인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자신을 선거의 여왕으로 발돋움시킨 몇 가지 사건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건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겪은 각종 비극의 뿌리로 기억될지는 본인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