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사고 영업정지 결정, 화정동 사고 등록말소 예고…“소송전 불가피하고 재등록 가능, 당장의 여파 없을 것” 관측도
현산은 과거 현대그룹 내에서 1976년과 1977년에 각각 창립한 한국도시개발과 한라건설이 합병해 세워진 회사다. 1999년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됐으며 2018년 HDC그룹의 사업회사로 정식 출범했다. 업계에서는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현산은 건설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사 안에 드는 대형 건설사로 잡코리아가 2020년 매출액 기준으로 평가한 순위에 따르면 대우건설에 이어 동종업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1700여 명의 사원이 근무하는 대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산은 최근 각종 사고로 창립 이후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난 상황이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철거공사 붕괴사고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며 지나가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시민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지난 1월에는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가 벌어졌다. 16개 층이 연속으로 무너져 작업하던 인부들을 깔아뭉갰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시공사는 둘 다 현산이었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불법 하도급 문제와 부실시공 등이 지목됐다.
광주 학동 사고와 관련해 국토부는 2021년 9월 10일 ‘부실시공’과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에 대해 현산의 관할관청인 서울시에 행정처분을 요청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30일 ‘부실시공’ 혐의로 현산에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렸다. 영업정지 처분에 관해 규정한 건설산업기본법 제82조 제2항 제5호와 동법 시행령 제80조 제1항을 근거조항으로 삼았다. 아직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에 대한 처분도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하수급 업체에 대해 관할 자치구인 영등포구의 처분이 선행돼야 한다. 서울시의 조치는 그 이후에 내려진다. 서울시에서는 4월 중 영등포구가 4월 중 법률자문을 거쳐 처분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현산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통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공시했다.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행정처분 취소소송 판결 시점까지는 영업활동에 제약이 없다. 일단 시간을 버는 셈이다. 행정처분이 확정될 경우에도 행정처분을 받기 전 체결한 계약이나 착공한 건설공사의 경우에는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수주에 차질을 빚겠지만 완전히 영업이익을 못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형 악재는 또 기다리고 있다.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해 국토부가 서울시에 현산에게 '가장 엄중한 처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최고 수준의 징계는 건설업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처분이다. 관련 업계는 사실상 국토부가 등록말소를 요청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건설 대기업에 등록말소의 처분을 내려야 할 수도 있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일단 관계법령 미비를 이유로 국토부에 질의서를 보냈다. 등록말소와 관련한 기준이 없는 현재 시행령을 개정하거나 등록말소가 가능할 만한 논리를 제공해달라는 차원에서다.
국토부가 근거로 든 조항은 건산법 제83조 제10호다. 고의나 과실로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등록말소 또는 1년 이내의 영업정지를 부과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동법 시행령 제80조에서 이 경우 ‘영업정지기간은 1년’이라고만 단순 규정해 놓은 데 있다. 상위법에는 등록말소가 명시돼 있으나 시행령에는 어떤 기준으로 등록말소를 결정할지 나와 있지 않은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이내 중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경우에는 등록을 말소하고 어느 경우에는 영업을 정지해야 하는지 시행령에서 기준을 명확히 정해주지 않았다”며 “위임되지 않은 영역을 저희가 함부로 판단해 등록을 말소할 경우 향후 이어질 소송에서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측에서는 지난 3월 30일에 서울시 측에 문제될 내용이 없다는 내용을 회신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등록말소의 경우 상위법에 이미 명시돼 있기 때문에 시행령에서 굳이 기준을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별도로 표기하지 않은 것”이라며 “경중을 따져서 등록 말소냐, 영업 정지냐를 가름해야 할 부분이지 등록말소에 대한 조항이 없어서 등록말소가 어렵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라고 말했다.
국토부 논리대로라면 현산에 등록말소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특히 두 사고가 워낙 중대한 만큼 서울시에서도 내부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현산 내부에서도 난감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연속으로 예고된 대형 악재에 3월 29일 현산 주주총회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주주들이 몰려들었다. 평소의 4~6배에 달하는 130여 명의 주주가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날선 질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산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등록말소가 된다고 해도 건설업계에 당장의 여파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와 관련,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 행정처분과 관련한 소송이 얼마든지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업계에 큰 지각변동이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산이 위기 상황인 건 맞지만 설령 등록말소가 된다고 해도 재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사업을 접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국세청이 현산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나섰다. 지난 3월 31일 국세청이 서울 용산구에 있는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 직원들을 파견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를 진행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조사1·2·3국과는 달리 일반적인 정기 세무조사가 아닌 기업에 대한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곳이다. 탈세 또는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혐의를 포착했을 경우에 예고 없이 조사에 나서는 ‘기업 잡는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5년 전인 2017년 8월에도 조사4국이 현산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여 거액의 세금을 추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현산 관계자는 “광주에서의 사고에 대해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향후 직원, 협력사, 고객과 투자자를 위해 신중하게 사고수습을 위한 노력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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