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강경파 주도 속 일각 책임론 염두 “속도조절”…국민의힘 ‘꽃놀이패’ 내심 반기는 기류
여야 극한 대립으로 번진 검수완박 정국의 하이라이트는 지난 4월 20일이었다. 이날 민주당은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 조치했다. 민 의원을 무소속 신분으로 바꿔 안건조정위원회에 투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보다 하루 앞선 4월 19일엔 현역 최고령 김진표 의원을 국방위에서 법사위로 옮겼다. 안건조정위원장은 최연장자 의원이 맡는다는 관례에 따라 그가 안건조정위원회를 이끌게 됐다.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원회를 앞두고 ‘이중 장치’를 마련한 것은 국민의힘 저지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2012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의 경우 각 상임위가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한 뒤 회부할 수 있도록 했다. 최장 90일간 이견을 좁히는 절차를 거친다. 1교섭단체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견제하려는 취지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를 통해 법안을 상임위에 묶어둔다면 문 대통령 임기 내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민주당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여당 3명, 야당 3명으로 구성된다. 무소속은 야당으로 분류된다. 4명 이상 찬성하면 법안은 바로 통과된다. 민주당이었던 민형배 의원이 무소속 신분이 됨에 따라 안건조정위원회는 ‘여당 3명, 국민의힘 2명, 무소속 1명’으로 짜이게 됐다. 사실상 민주당이 정족수인 4명을 채우게 된 셈이지만 국민의힘에선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했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내부에선 ‘묘수’라는 자화자찬이 나오기도 하지만 정가에선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4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바둑 격언에 묘수 3번이면 진다는 말이 있다. 비상식이 한 번이면 묘수지만, 반복되는 비상식은 통하지 않는다”면서 “국민 공감대 없는 소탐대실은 자승자박, 정권을 잃은 교훈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도 “(꼼수 탈당은) 거대 정당 입법 폭주의 완결판”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검수완박 속도전’에 불을 지핀 것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이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검수완박’의 명분은 검찰 기능의 정상화다. 하지만 그 이면엔 검찰 수사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노무현 학습효과’다. 이런 상황에서 윤 당선인 최측근이자 문재인 정부에서 여러 번 좌천을 당했던 한동훈 후보자가 검찰을 관리·감독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민주당 움직임이 더 다급해졌다. 이는 ‘정권 교체 후를 대비해 검찰 힘을 빼려 한다’는 야권과 법조계 시각과 맞물린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검수완박을)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할 때부터 분위기가 살벌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반대 기류가 제법 있었지만 완전 묻혔다. 강경파 10여 명이 주도했다”고 전했다. 그는 “말이 문 대통령이지, 솔직히 지금 검수완박 부르짖는 의원들이 자기 살자고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제법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출신으로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을 밝혔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4월 21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민주당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양 의원 말이 사실일 것이다. 나도 몇몇 친문 인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비슷한 취지의 말을 들었다. 검수완박으로 수사권을 가져오지 못하면 검찰이 민주당 의원들을 표적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여소야대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 윤석열 당선인이 벌써부터 검찰 사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 일각에선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면서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 지지율 40%를 받치고 있는 집토끼를 잡아야 지방선거에서 이긴다’는 주장이 더 강했다. ‘핵심 지지층만 결집하면 된다’는 민주당 친문 강경파 특유의 진영논리가 검수완박 ‘풀 액셀’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앞서의 민주당 재선 의원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 대선 패배 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오히려 독이 됐다. 대선 패배 기억은 온데간데없다. 지방선거가 걱정”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선 중도성향 한 중진 의원 중심으로 4월 10일경 ‘검수완박 반대’를 위한 연판장 작성까지 논의됐다고 한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 법사위 사보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던 때였다. 이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눈치만 보던 초재선 많은 의원들이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소 30명이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물론, 많은 이들이 만류해 철회했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자칫 집안싸움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면서 “이재명 상임고문 쪽에서도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덧붙였다.
이를 놓고 정가에선 민주당 신구 주류 권력다툼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구주류 친문 강경파의 검수완박 강행에 다른 계파, 특히 신주류인 친명 진영에서 별다른 견제 움직임이 나오지 않자 향후 ‘책임론’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민형배 탈당’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국회에서 통과가 되건 안 되건, 민주당 전체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검수완박을 이끈 의원들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민주당 권력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재명 고문에겐 크게 손해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71석의 민주당이 물리적으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으로선 막을 방법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인사청문회 및 지방선거에서 ‘꽃놀이패’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마저 읽힌다. 이준석 대표의 “검수완박은 ‘지민완박(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완전히 박살난다)’” 발언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화력을 총동원해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동훈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수완박 정국이 유리할 것으로 점친다. 한 후보자는 지명 다음 날인 4월 15일 첫 출근부터 검수완박 추진을 “야반도주”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는데, 검찰 안팎에선 “한 후보자가 일부러 민주당에 싸움을 걸었다”는 말이 나왔다. 인사청문회에서 개인 신상보다는 본인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 수사권 문제가 쟁점으로 다뤄지길 바라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의미다.
검수완박 이슈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관계자들이 검수완박 뉴스에 반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검사 출신인 윤 당선인은 그 누구보다 검수완박에 민감하다. 하지만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면서 “자칫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장관 인선 등에서 불거진 잡음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는 것도 작용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폭주는 우리에겐 호재다. 국회 다수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지난 3월 대선에 이어 6월 지방선거로 이어질 것이다. 검수완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얼마든지 조정할 부분이 있다. 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장기전으로 가도 불리할 게 없다. 지금 민주당 내부 반대 여론도 높다고 한다.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문재인 친위대’, 즉 친문이 이번에 자충수를 제대로 뒀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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