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앞뒀던 황 예비후보, 김진태 컷오프 반발에 원점…경선 땐 ‘조직력’ 김 전 의원 유리 관측
황상무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예비후보는 강원도 평창군에서 출생해 춘천시에서 자랐다. 춘천고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을 졸업했다.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한 그는 언론인으로 모든 커리어를 KBS에서만 보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황 예비후보는 KBS 9시 뉴스 평일 앵커로 활동했다. 장기간 평일 뉴스 앵커 자리를 맡으며 ‘얼굴 보면 아는 사람’ 반열에 올랐다.
황 예비후보는 2020년 11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황 예비후보는 사내 게시판에 “국민 수신료로 운영되는 회사가 한쪽 진영에 서면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면서 “KBS는 극단의 적대정치에 편승하면 안 된다”는 글을 올린 뒤 사직했다.
황 예비후보는 사직한 지 1년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2021년 12월 국민의힘에 합류한 그는 제20대 대선 윤석열 중앙선대위에서 언론전략기획단장으로 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과정서 약점이라고 지적받았던 토론과 관련한 자문을 해줬던 인물 중 한 명이 황 예비후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을 거치며 황 예비후보는 ‘친윤계’로 부상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승리를 확정 지은 다음 날인 3월 11일 황 예비후보는 전격 강원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공천은 2파전으로 좁혀졌다. 김진태 전 의원과 황 예비후보 사이 일대일 구도가 형성됐다. 두 예비후보가 안고 있는 장단점은 명확했다.
김 전 의원은 정치 경험을 토대로 한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2017년 탄핵 정국 당시 그가 보였던 강성 성향이 본선거에서 중도층 유권자를 흡수할 수 있느냐는 부분이 약점으로 꼽혔다. 황 예비후보는 정치 경험이 없어 조직력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었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근으로 대선에서 뛰었다는 점과 대중적 인지도가 있어 중도층 흡수해 유리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분석됐다.
강원도지사 후보 공천은 손쉽게 끝나는 듯 보였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4월 14일 김 전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며 황 예비후보가 단수공천된 까닭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강원도지사 후보군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주공산에 입성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황 예비후보는 ‘장밋빛 미래’를 앞두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펼쳐졌다. 공천에서 배제됐던 김 전 의원은 재심을 신청하고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자 공관위가 한 발 물러섰다. 재심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행 국민의힘 공관위 대변인은 “김진태 후보가 5·18과 불교 관련 문제에 대한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한다면 다시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일부 공관위원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국민의힘 최고위도 황상무 예비후보 단수공천 건을 보류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자 김 전 의원은 즉각 국민 앞에 사과했다. 4월 18일 오전 김 전 의원은 국회 앞에 마련한 자신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김 전 의원은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해 5·18 공청회를 내가 공동주최한 것이 맞다”면서 “공청회 포스터에도 북한군 개입설이 명기돼 있다. 그러니 그 행사에서 나온 일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에 대해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앞으로 다시는 5·18 민주화운동 본질을 훼손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 전 의원이 대국민사과를 진행하자 강원도지사 후보 공천은 다시 경쟁구도로 회귀했다. 그러면서 ‘강원도지사 우파 방송인 징크스’가 다시 정치권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경선이 진행될 경우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김 전 의원이 황 예비후보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다.
이 징크스의 시작은 이계진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은 KBS 공채 1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안정적인 진행 능력을 자랑하는 사회자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2004년 제17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성한 그는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강원도 원주를 지역구로 뒀던 그는 제18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이 전 의원은 2010년 강원도지사 선거로 눈을 돌렸다. 임기 중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정치적 성장을 노렸다. 하지만 선거에서 맞붙은 상대 후보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좌희정 우광재(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의원을 일컫는 별칭)’로 불린 친노계 좌장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이 전 의원과 맞붙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1년 만에 펼쳐진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후보는 ‘노무현 후광’을 등에 업은 데다 막강한 조직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강원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엔 이광재 의원 조직력이 워낙 막강했다”면서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강원 지역에서 진보진영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일 것”이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 관계자는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이계진 전 의원도 경쟁력이 있었지만, 이광재 의원에 대한 지역 내 인기가 워낙 높았다”면서 “충남과 강원에서 ‘좌희정 우광재’가 나란히 당선됐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전 의원도 나름 선전한 것으로 봤다”고 했다.
그런데 이광재 의원이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 변수가 발생했다. 당선된 지 1개월 만에 박연차 게이트 관련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도지사 직무가 정지됐다. 2011년 1월엔 대법원이 당선무효형을 선고하면서 이 의원은 당선 7개월 만에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보궐선거가 펼쳐지게 됐다.
강원도지사 보궐선거는 2011년 4월 27일에 펼쳐졌다. 이 선거에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앵커 중 하나로 꼽혔던 인물이 정치의 쓴맛을 봤다. 바로 엄기영 전 MBC 사장이었다. 당시 정치권에선 엄 전 사장이 진보진영 간판을 달고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런데 엄 전 사장은 보수정당이던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민주당은 같은 MBC 사장 출신 인사로 맞불을 놨다. 바로 최문순 현 강원도지사다. 엄 전 사장과 최 지사는 춘천고 동문에 MBC 사장 출신 공통분모를 갖춰 화제를 모았다. 이 맞대결은 강원도지사 선거 중 가장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매치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당초 선거는 엄 전 사장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강원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대중적 인지도에서 엄 전 사장이 우세한 데다 지역 내 평판 또한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엄 전 사장이 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엄 전 사장이 최 지사에 10%포인트 이상 우세한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최 지사 손을 들어줬다.
엄 전 사장이 유리한 판세를 지켜내지 못한 배경엔 각종 잡음과 논란이 있었다. 먼저 친야권(진보성향) 인사라고 불렸던 엄 전 사장 영입에 한나라당 내·외부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리고 엄 전 사장 측이 선거 과정에서 미등록 불법사무소를 차려놓고 유권자들에게 지지전화를 돌린 것이 적발됐다. 또 지역 주민들에게 식사 등 향응을 제공하다 선관위에 적발됐다.
앞서 언급한 대형 이슈가 불거지면서 엄 전 사장 지지세는 약해졌다. 결국 본선거에서 최 지사가 과반득표를 얻어 엄 전 사장을 꺾었다. 엄 전 사장을 꺾은 최 지사는 이후 승승장구해 3선 임기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당시 엄 전 사장 캠프에 합류하려다 마음을 돌렸던 지역 정치권 인사는 “캠프 내부적으로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면서 “판세가 유리하다 보니 선거를 어떻게 이길까 하는 논의보다, 이기면 무엇부터 할까 하는 내부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판세가 뒤집어지는 방아쇠를 엄 전 사장 측 내부에서 당긴 셈”이라고도 했다.
춘천고 동문회 관계자는 “2011년 보궐선거 당시 동문회 내에서 아무래도 엄 전 사장이 더 유리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는데,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면서 “결과가 나온 뒤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긴 것이라는 말들이 동문들 사이에서 회자됐다”고 했다.
과거 한나라당에서 당직을 지냈던 한 정치권 인사는 방송인 출신이 강원도지사 선거에 빈번하게 등장했던 이유에 대해 “강원도는 전반적으로 유권자 평균 연령이 높은 데다, TV를 가장 친숙한 매스미디어로 생각하는 노령 인구 비중 또한 높다”면서 “방송을 중심으로 인지도를 형성한 사람들이 강원도 지역 특성에 따라 맞춤형 인물로 거론되는 빈도가 높았던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유명한 방송인 중 강원도 출신 비율이 높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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