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두 달, 시공단과 재건축조합 여전히 강경…현 조합 집행부 해임 시도까지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 1만 2032가구와 아파트 85개동이 들어설 예정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사업 공사가 4월 15일로 중단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서울시 측에서 재건축 사업 분쟁 중재안을 내놓았으나 6월 3일 둔촌주공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이 거부 의사를 밝힌 상태다.
시공사업단은 서울시에 조합 측이 먼저 소송을 취하하고 공사계약변경 총회 결의를 재취소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조합이 제기한 소송은 2020년 6월 전임 조합장과 시공사업단이 체결한 5600억 원 규모의 공사비 증액 변경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공사계약 무효소송이다. 조합 측의 공사비 증액 취소 움직임에 맞서 시공사업단은 공사를 중단하고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공사를 먼저 재개하고 조합이 소송을 취하하도록 중재했으나 시공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은 다시 조합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양측이 워낙 강경해 사태 조율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조합원 A 씨는 “조합집행부 측에서는 현재 소송 취하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조합원 94%가 공사비 증액안을 취소 의결했고 집행부는 증액 취소 안 하면 시공사를 바꿔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제 와서 시공사 주장을 받아들이자고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감재 문제도 있다. 서울시는 조합의 마감재 고급화 및 도급제 변경 요구를 수용하도록 중재했으나 시공사업단은 신속한 일반분양을 방해하는 조합의 고급화 추진은 재고돼야 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마감재 업체 선정 문제는 공사비 증액안 이슈와 더불어 조합과 시공사 측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문제다. 2021년 11월 조합이 마감재 고급화를 위해 수의계약 형식으로 새로운 업체를 선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미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한 시공사업단이 위약금을 물어줘야 한다며 조합의 요청을 거부했다. 마감재 업체 변경 요청을 거부하자 공사비 증액안 이슈까지 불똥이 튀었다는 게 시공사 측 주장이다.
설상가상으로 상가도 분쟁이 붙은 상태다. 지하철역 가까이에 위치한 2개 동은 상가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주상복합으로 건설되는데 현재 PM(부동산자산관리)사인 리츠인홀딩스가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리츠인홀딩스는 둔촌주공상가재건축사업만 수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특수목적법인으로 10년 동안 상가 계획 수립과 구청 인·허가 신청 업무 등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동·호수 추첨까지 마치고 일반분양 업무만 남긴 상태에서 지난해 말 돌연 계약을 해지당했다. 일반분양이 끝나고 남는 수익금을 가져가는 확정지분제 방식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
리츠인홀딩스 측은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관계를 검토하고 유치권 행사에 돌입 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상가건물 위로 주상복합을 시공해야 하기 때문에 리츠인홀딩스가 유치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전체 사업장 준공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10년을 같이 일했기 때문에 채권-채무 관계가 존재할 개연성이 충분해 보이고 따라서 유치권 행사도 정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민사는 1심에서 끝난다고 해도 최소 6개월~1년은 걸리기 때문에 양자가 조율·합의하지 않을 경우 공사 재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공사 측 역시 공사 재개 조건 중 하나로 ‘상가 관련 분쟁 해결’을 꼽았으나 해결은 난망해 보이는 상황이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 정상화위원회(정상위)의 한 관계자는 “현 조합 집행부 대부분이 상가 공유지분자들이고 처음에 상가 분쟁하다가 비상대책위원회 꾸리며 집행부가 된 분들이라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관련 없는 아파트 조합원들까지 피해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사자들끼리 빠르게 합의하거나 원상복구를 통해 분쟁을 종식시키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은 조합원의 편이 아니다. 공사가 지연될수록 철근, 시멘트 등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 비용이 오르는 데다가 손실 보상과 입주 지연으로 인한 임대차 비용 증가분 등도 따로 추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시공사와 조합 간의 분쟁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시공사라고 보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전임 조합장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체결한 협약인데 조합이 승계를 거부하고 말을 바꾼 상황”이라며 “귀책 사유가 조합에 있다고 보이고 공사 지연으로 인한 관리비 등 일체의 비용 또한 조합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여기서 공사 현장에 상주해 있는 57개의 타워 크레인이 해체될 경우 상황 해결은 더 까다로워진다. 크레인 해체에 2~3개월, 재설치에 최소 2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해체작업이 진행된 후에 공사를 재개할 경우 이전에 쓰던 크레인과 동일한 모델을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며 “저희가 쓰던 모델이 만약 국내에 없어서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 되면 최대 6개월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 측은 6월 7일 크레인을 해체할 예정이었으나 서울시와 강동구청, 둔촌주공 정상위 요청으로 잠정 연기한 상태다.
정상위가 공사 중단 6개월과 공기 연장 9개월을 가정해 외부 기관에 의뢰하여 추산한 총 손실비용 추정액은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조합원 1인당 2억 7000만 원씩은 부담해야 하는 셈인데 일반 분양가가 평당 46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만회가 가능한 금액이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2020년 7월에 추산한 2900만 원대의 평당 분양가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마감재 변경과 교체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위약금이 포함될 경우 조합원 분담금은 더 늘어난다.
이런 가운데 1조 4000억 원 규모의 이주비와 7000억 원 규모의 사업비 대출 만기가 각각 7월, 8월로 예정돼 있다. 이주비의 경우 사업 부지가 담보로 잡혀 있어 대출이 연장될 가능성이 있으나, 시공사가 연대 보증을 선 사업비는 그렇지 않다. 시공사업단이 보증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공사업단 측은 조합이 사업비 상환에 실패할 경우 대위변제 후 구상권을 행사하기로 기조를 잡고 있다. 만약 시공단의 구상권 행사로 부지가 경매에 넘어가면 조합원들은 분양권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부지를 담보로 받은 이주비도 같이 상환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 성수동 트리마제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고착되면서 정상위는 6월 8일 집행부 해임 논의에 착수했다. 현 조합 집행부에 대한 해임이 시도되는 것은 처음이다. 총회가 열리려면 10분의 1 이상의 조합원이 동의해야 하고 집행부 해임이 의결되려면 조합원 과반이 참석해 그 중 과반이 결의해야 한다. 조합원들 간 의견이 분분한 까닭에 정상위도 결과를 쉽게 예측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둔촌주공조합 집행부 측에 입장을 문의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와 관련,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사업비를 대위변제한 후 구상권을 행사한다는 말이 꼭 경매에 부친다는 말은 아니다”라며 “극단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저희는 그렇게까지 되기는 바라지 않고 있으며 최대한 원만하게 마무리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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