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업 요직 장악 라자팍사 족벌 국가예산 4분의 3 통제…부정부패와 살인적 물가에 분노한 시민들이 정권교체
이런 파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년 동안 스리랑카를 쥐락펴락해왔던 라자팍사 가문의 부정부패에 민심은 이미 흉흉해진 상태였고,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살인적인 물가와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결국 민심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2019년 대선에 출마했던 고타바야는 당시 파격적인 공약을 하나 내걸었다. 파탄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세금을 감면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부가가치세를 15%에서 8%로 낮추고, 다른 세금도 연이어 감면 혹은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스리랑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감세 정책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즉시 공약을 실행에 옮겼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민들은 빠른 조치에 환호했다. 하지만 모두가 반겼던 건 아니었다. 이런 조치를 우려스럽게 바라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만갈라 사마라위라 당시 재무장관은 “나라 전체가 파산할 수 있다. 제2의 베네수엘라나 그리스가 될지도 모른다”라며 경고했다.
이런 경고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실제 스리랑카 경제는 몇 년 동안 계속된 불황으로 이미 휘청이고 있었고, 부채 역시 급증하고 있었다. 운도 좋지 않았다. 2020년 초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력인 관광산업마저 무너졌고,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불거진 식량난과 에너지 시장의 혼란으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현재 연료, 식품, 의약품 등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4.6% 급등한 상태며, 몇 개월 안에 70%까지 치솟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대책은 무책임한 수준이었다. 올해 초에는 하루 열세 시간 동안 강제로 단전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고, 시민들은 연료를 구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감세 정책 발표 후 한동안 상승했던 주식시장은 올해 들어 전세계 시장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심지어 러시아보다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사정이 이러니 결국 채권단은 스리랑카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은 빠른 속도로 고갈돼 갔다. 스리랑카 정부에 선뜻 대출을 해주는 곳도 없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사마라위라의 예언이 현실화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0개월 후인 지난 5월, 스리랑카는 공식적으로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이는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 벌어진 최악의 국가 위기 상태였다.
‘뉴욕타임스’는 스리랑카의 경제 위기에 대해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부채 급증, 중국의 지정학적 야망,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 식량 및 에너지 시장의 혼란 등이다”라고 분석하면서 “그리고 그 모든 배경에는 라자팍사 가문의 오만과 무모함이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콜롬보 정책대안센터의 파이키아소티 사라바나무투 사무총장 역시 “고타바야가 처음부터 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니지만, 라자팍사 가문의 족벌주의 정치와 부정부패, 인권 침해로 정부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스리랑카의 유명한 정치 집안으로, 지난 20년간 가족들이 정부 요직을 독차지하면서 독재를 일삼아왔다. 아버지 D.A. 라자팍사가 1950~1960년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라자팍사 가문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9남매 가운데 다섯째였던 고타바야의 경우에는 당시 정치에 뜻이 없었기에 미국으로 이주해 IT회사에서 일하면서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다.
라자팍사 가문이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은 2005년, 셋째인 마힌다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였다. 그 후 마힌다는 2010년 재선에 성공했고, 2015년까지 10년 동안 나라를 가족 사업체처럼 운영했다. 무엇보다 정부 요직에 검증 안된 친인척들을 앉혀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런 행태는 고타바야가 형의 뒤를 이어 2019년 대선에 승리한 후 최근 사임할 때까지 20년 동안 계속 됐다. 이 기간 라자팍사 가문은 항만 사업, 농업, 금융 등 주요 부처들을 장악하면서 국가 예산의 4분의 3을 통제했다.
마힌다는 대통령직 외에도 총리직을 두 차례나 역임했고, 고타바야는 마힌다가 대통령에 재직할 당시 타밀 분리주의 반군을 유혈 진압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방도시개발부 비서로 처음 임명됐다. 이 밖에 당시 여섯째인 바실은 경제개발부 장관으로, 그리고 첫째인 차말은 국회의장으로 임명됐으며, 사촌 조카인 니푸라마는 급수 및 배수 담당 차관 자리를 차지했다.
얼마 전 고타바야가 사퇴할 당시에도 행정부 요직에는 라자팍사 가문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재무장관 자리에는 바실이, 총리 자리에는 마힌다가 각각 올라 있었다.
그렇다 해도 라자팍사 형제들이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면 민심이 들끓진 않았을 터.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형제들은 국가의 자립력을 키우기보다는 독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외채를 급격히 늘려나갔다.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스리랑카는 일대일로의 야심을 품은 중국 정부에게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중국은 스리랑카에 막대한 금액의 차관을 제공했다.
그렇게 라자팍사 형제를 돈으로 사로잡는 데 성공한 중국 정부는 결국 스리랑카 최대 채권 보유국 가운데 하나가 됐다. 곧 수십억 달러가 스리랑카로 유입됐고, 수도 콜롬보에서는 한동안 대대적인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라자팍사 형제는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중국 국영기업들과 스리랑카 공무원들 사이의 의심스러운 거래를 포함해 각종 냄새나는 계약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바실의 경우에는 정부가 맺은 각종 계약마다 10%씩의 수수료를 뒷돈으로 챙기면서 ‘미스터 10%’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건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힌다는 대통령 재임 당시 중국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투입해 가문의 터전인 남부 함반토타에 무역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고많은 곳 가운데 왜 하필 함반토타였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 무시했다. 당시 마힌다는 “이곳을 남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만들겠다”고 장담하면서 사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2010년과 2020년 사이 외채는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결국 더 이상 외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었던 스리랑카 정부는 2017년 함반토타를 비롯해 1만 5000에이커에 달하는 인근 부지를 중국에 99년 동안 임대해주는 어처구니없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관련, 산키타 구나라트네 ‘스리랑카 투명성기구’ 사무차장은 “마힌다와 바실이 쓰나미 구호물자를 빼돌리고 개인 토지 매입에 공적자금을 사용한 혐의로 수차례 고발을 당했지만, 대부분 수사가 지연되거나 철회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라자팍사 가문의 부패는 많은 이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큰 나무와 같았다”고 비꼬았다.
스리랑카 야당의 한 관계자는 “라자팍사 정부 측근들이 악명 높은 조세 피난처인 두바이에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비밀리에 송금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는 스리랑카의 외환보유액보다 더 많은 액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전직 정부 관리들 역시 라자팍사 가문이 지금까지 최소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부정 축적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두바이, 세이셸, 서인도제도 상마르탱의 은행 계좌에 숨겨 놓았다고 주장했다.
라자팍사 형제들이 얼마나 호화롭게 생활했는지는 최근 공개된 대통령궁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시위대가 점거한 대통령궁의 모습은 말 그대로 궁전이었다. 고급 가구와 그림들이 도처에 걸려 있었고, 대통령 개인전용 체육관과 수영장, 정원은 베벌리힐스 저택 못지않았다.
2015년 결국 3선 도전에 실패했던 마힌다가 물러나면서 라자팍사 가문의 족벌 정치는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2019년, 29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다시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고타바야가 차기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선거 유세에서 고타바야는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한 치안을 강조하면서 민심에 호소했다. 그러면서 “국방, 최고의 통치, 경제 발전을 약속한다. 나는 테크노크라트(과학기술분야 전문가)다. 인도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콜롬보에 고층 빌딩으로 이뤄진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만들겠다. 이렇게 되면 콜롬보는 제2의 싱가포르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런 미사여구 덕분에 그는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고타바야의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취임 선서를 하던 날 가문을 상징하는 빨간색 스카프인 ‘사타카’를 착용하는 대신 반팔 셔츠를 입고 등장한 그는 앞으로 가족과 거리를 두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재임 중 1000루피 지폐에 자신의 초상화를 인쇄했던 형 마힌다와 달리 관공서에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거는 행위도 금지하겠다고 했다.
이런 약속들은 모두 지켜졌을까. 훗날 고타바야 정부에서 언론부 장관이 된 날라카 고다헤와는 “그 다음 날부터 몰락이 시작됐다”라고 털어놓았다. 첫 내각이 발표됐을 때 스리랑카 국민들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총리는 마힌다였고, 정부 요직은 또 다시 라자팍사 가문의 친인척과 측근들로 채워졌다. 심지어 법원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개헌안도 통과됐다.
여기에 더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미명 하에 대대적으로 세금을 감면하면서 재정은 파탄나기 시작했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자 정부는 엉뚱한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이제부터는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도록 농가에 명령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유기농법으로 바꿔서 ‘비료 마피아’와 싸우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은 이 조치가 달러를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여겼다.
이 금지 조치는 역효과를 낳았다. 스리랑카 전체 노동력의 3분의 1과 국내총생산의 8%를 차지하고 있는 농가들이 황당한 정책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으며, 이로 인해 곡물 생산량은 43% 감소했다. 결국 정부는 쌀을 수입해야 했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농부들을 위해 값비싼 식량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스리랑카의 핵심 수출 품목인 차를 재배하지 못하게 되면서 차 생산량도 18% 감소했다. 이에 반발하는 농가들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지난해 11월, 정부는 부분적으로 금지령을 철회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식량, 전기, 의약품이 부족해지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고타는 집에 가라!’ ‘고타는 미쳤다!’라고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위에 참석한 한 남성은 “라자팍사 정부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 우리는 변화를 원하고 지금 그것을 원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스리랑카 경제는 자유낙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지난 7월 9일, 콜롬보에 운집한 20만 명의 시위대는 라자팍사 가문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스리랑카의 차기 대통령은 오는 20일 의회에서 선출될 예정이다.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은 2024년까지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되며, 현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연합의 사지트 프레마다사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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