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할머니도 상품 모두 젖은 상인도 망연자실…부산 청년들부터 베트남 유학생까지 자원봉사 발길 이어져
8월 15일 오전 9시 20분, 연휴인데도 침수 피해 복구를 위해 봉사자들은 하나둘씩 관악구 은천동주민센터로 모였다. 이들은 봉사활동 시 주의사항과 침수피해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장으로 나섰다. 기자가 간 곳은 봉천동에 위치한 김정순 씨(가명‧84)의 집이었다. 1층이었지만 반지하 못지않게 피해가 심했다. 현관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방안은 밤새 빗물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들로 어지러웠다. 김 씨는 “쌀통도 반찬통도 물에 둥둥 떠 다녔어. 갈 곳이 없어 여관에서 지내고 있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먼저 봉사자들은 집안에 있는 물에 젖은 물건들을 밖으로 꺼냈다. 가구들과 살림살이들은 성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침대 틀은 침대를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고, TV 케이블 선‧냉장고‧밥솥 등에도 물이 고여 있었다. 침수로 망가진 물건들을 바라보는 김 씨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습한 날씨로 봉사자들은 연신 땀을 흘리며 가구를 옮기고, 청소를 했다. 기자와 함께 봉사활동을 한 봉사자들은 침수 피해 가구를 돕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서울지역 지원자는 물론, 부산에서 온 청년들도 있었다. 봉사자 중에는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도 있었다. 하티 투 짱 씨(26)는 SNS의 베트남인 커뮤니티에서 침수 피해복구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에 지원했다고 했다. 하티 투 짱 씨는 “할머니 혼자 청소하면 엄청 힘들었을 것 같아요. 도울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봉사활동 계속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물에 젖고, 망가진 살림살이들을 다 꺼낸 후 각종 흙과 오염물들이 묻은 장판을 닦았다. 여전히 물기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두세 번 반복해서 닦은 후에야 깨끗한 바닥을 볼 수 있었다. 청소가 끝난 후 소독을 마치고, 쓸 수 있는 살림살이들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봉사자 A 씨는 “어머니, 장판 마르게 보일러랑 선풍기 켜두시고, 가전제품은 꼭 수리 받으셔야 해요”라고 김정순 할머니께 당부했다. A 씨는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종이에 ‘가전제품 수리 요망’, ‘선풍기, TV 전원 끄세요’ 등의 메모를 써서 붙여놓기도 했다. 봉사자들은 김정순 할머니께 인사를 한 후 다른 피해 가구 현장을 도우러 나섰다. 김정순 할머니는 봉사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반복했다.
관악구자원봉사센터에서 8월 10일부터 15일까지 침수피해복구를 도운 봉사자들만 총 536명이었다. 임현주 관악구자원봉사센터 센터장은 “휴일을 반납하고 자원봉사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다”며 “큰 짐은 군인들이 옮기고 자원봉사자들은 작은 짐을 옮기거나 청소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콘센트나 차단기 수리, 보일러 점검, 장판 도배 등을 주민센터에서 도와주는데, 이런 부분도 자원봉사를 통해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8월 8일부터 16일까지 침수 피해를 당한 주택은 5585가구, 점포는 1369곳이다. 수해 폐기물은 3474t으로 80~85% 정도 처리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피해 지역에 방역 소독 실시하고 있고, 토사물 제거나 하수‧전기 수리 등은 임시조치는 해놓은 상황”이라며 “완전히 무너지거나 부서진 곳들의 경우에는 하루이틀 만에 끝나지는 않아서 현재 계속 보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8월 16일 찾아간 강남구 침수 현장.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인 그곳도 피해복구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강남구의 한 주상복합 건물 상가 상인 B 씨는 집중호우가 내리던 당시 팔던 물건들이 다 젖어 피해를 봤다. 그는 “다 젖어 있잖아요. 바깥에 내놓은 물건들도 다 젖어있어요”라며 “이 건물 자체에 전기도 안 들어와서 복구 되려면 한 달 정도 걸린대요”라고 말했다. B 씨가 장사를 하던 상가 안에는 비에 젖은 옷가지들이 비닐봉지에 넣어진 채 쌓여있었다.
같은 건물 지하주차장에서는 물 빼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하 6층까지 있는 주차장에는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주민들은 엘리베이터 작동이 되지 않아 계단을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해당 건물 총 관리인인 박경준 씨는 “지하 6층에 전체 건물 기계실이 다 있는데 거기에 물이 차서 물을 빼고 재시공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엘리베이터도 작동이 안 돼서 기술자들을 불렀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판자촌 구룡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폭우로 젖은 장판을 새로 갈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박 아무개 씨(64)는 “9시에 자려고 이불 깔고 누웠는데 물이 확 들어오더라고요. 지난주 토요일까지 근처 학교 대피소에서 잤어요”라며 “지금은 잘 곳만 정리해놓은 상황이에요. 그 외에는 아예 손도 못 댔어요”라고 말했다. 박 씨는 그치지 않는 비에 물을 퍼낼 겨를 없이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도 비가 많이 와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지만 이번이 가장 피해가 심했다”고 전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C 씨도 “집에 있는 물건 다 떠내려가고 몸만 빠져나왔다”고 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남구 이재민들은 106명으로 이 중 50여 명이 임시 숙소에 거주 중이다. 강남구청 언론팀 관계자는 “침수로 인한 토사물이나 물은 다 빼낸 상태이고, 침수됐던 집 등을 청소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주거 환경이 열악한 구룡마을에서 침수 피해가 커 30가구 정도가 임시 숙소에 들어가 계신다”라고 말했다. 정우태 강남구자원봉사센터 팀장은 “강남구에서는 논현 1동과 구룡마을이 가장 피해가 크다”며 “개인 봉사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단체로 봉사를 지원해주셔서 돕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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