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여름 복도 난간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소년(오충빈 씨)은 미용실로 출근하는 엄마(임경애 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도 소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날이 흐르고 달이 바뀌어도 엄마의 퇴근은 소식이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는 명절 차례상에 딸 몫의 숟가락을 올렸다. 소년은 엄마를 가슴에 묻은 채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24년이 지난 2007년 5월. 뜻밖의 엽서 한 통이 날아왔다. 발신지는 경기도 용인 소재의 노숙인 수용시설 '서울시립 영보자애원'으로 엄마를 모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다시 만난 아들을 보고도 표정이 없었다.
복수 찬 듯 불러온 배, 몇 개 남지 않은 치아, 지적장애 증세 등 온몸이 망가져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대소변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해 늘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했다.
가족을 찾기 전까지 임경애 씨가 머물렀던 마지막 장소 '서울시립 영보자애원'은 80년대 중반 서울시립 남부부녀보호지도소에서 전원 되어 온 이들이 많다. 2017년 이곳을 방문한 민간조사원들은 서울시 노숙인 생활시설 인권실태조사를 위해 각각 10여 명의 생활인을 인터뷰했다.
2017 서울시 노숙인 생활시설 인권실태조사 민간조사원 박병섭 씨는 "어떻게 해서 오게 됐습니까? 충격적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끌려왔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박병섭 씨를 비롯한 민간조사원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생활인 중 자진 입소자는 12%에 불과했다. 나머지 88%는 입소 경위를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경찰 등에 의한 강제 입소자였다 답변했다. 박 씨는 이 같은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보건복지부에 인권침해 '특이사항 없음'으로 보고했음에 의아함을 표했다.
9월 8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여성 수용시설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임경애 씨뿐만이 아니다. 잘 알려진 형제복지원 외에도 서울시립갱생원, 동부여자기술원, 서울시립 남부부녀보호지도소 등 1970~80년대 급증한 노숙인 수용 시설들. 그 무렵 거리에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들. 그들이 붙잡힌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을 끌고 간 이들은 누구일지 사라진 사람들의 시간을 추적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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