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과 패키지’ 소문 돌다 수면 아래로…당분간 민영화보단 항공우주산업 육성 집중 목소리
#KAI 매각설 사그라지지 않는 까닭
KAI는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 현대우주항공, 삼성항공우주산업, 대우중공업 3사의 항공 관련 방산 사업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졌다. 민간기업이지만 사실상 공기업 성격이 짙다. 올해 상반기 기준 KAI의 최대주주는 26.41% 지분을 소유한 수출입은행, 2대 주주는 10.33%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다. 방산 및 항공우주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한화의 KAI 인수설은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확산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의 특수선 사업부만 인수하고 싶었으나, 매각 측인 KDB산업은행이 통매각 원칙을 요구하자 한화가 KAI 인수를 조건으로 내세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지난 9월 28일 한화와 KAI가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KAI 매각설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KAI를 인수하면 육해공 방위산업을 모두 영위하게 돼, KAI 인수에 관심을 보였으리란 분석도 나왔다. 또 한화는 M&A(인수합병)로 성장해온 기업이라는 점도 인수설에 힘을 보탰다.
일단 한화와 수출입은행, KAI는 인수설을 부인하며 선을 긋고 있다. 수출입은행 측은 “KAI와 관련해 한화 측과 접촉 및 논의 진행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KAI 측도 입장문을 통해 “‘KAI가 한화 측과 여러 차례 접촉하며 사업현황과 미래 먹거리, 민영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 등을 논의했다’, ‘KAI도 수익 창출과 합리적 경영을 위해 민영화를 반기는 분위기’ 등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한화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한화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한화의 KAI 인수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하지만 KAI 노조는 민영화에 대비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곽상훈 KAI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업계 관계자들이나 대우조선해양 매각 관련 협상에 들어갔던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KAI와 대우조선해양을 패키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2012년에도 정책금융공사(당시 KAI 최대주주)는 KAI 매각 추진 발표 전날까지도 ‘매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다. 이번에도 갑자기 매각 발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역 여론을 모아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KAI 민영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0월 4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99년 이후 8조 6000억 원 이상 공적자금이 투입된 KAI를 결실을 눈앞에 두고 대기업에 헐값에 넘기는 것은 명백한 배임”이라며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민영화 움직임에 맞서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민영화와 국가 자산매각을 총력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민영화, 추진한다면 지금이어야 할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KAI 민영화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장원준 방위산업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 미국 록히드마틴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세계 10~20위권의 방산 기업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수단이 M&A다. 195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이 글로벌 방산 대기업을 키워온 방법이다. 영국이 BA로 (방산 경쟁력이) 집중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수순으로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공기업 성격을 띤 KAI는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장 연구위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바뀌니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부침이 있었고, 정부 지분이 있다 보니 과감한 투자를 하는 데 미진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KAI는 낙하산 인사로 꾸준히 빈축을 사 왔다. 역대 대부분의 KAI 사장이 외부 영입 인사다.
최기일 상지대 국가안보학부 교수도 “방산 수출을 통해 우리나라 방산산업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방산 생태계가 대형화 및 통합화돼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방위산업 측면에서 글로벌 방산 업체가 만들어지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일각에선 대형 방산업체가 국내 방산 시장을 독점하면 방산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지만, 방위산업은 태생적으로 일부 대기업 위주의 독점 및 과점 형태로 유지돼 왔다. 또 국내 개발 외에 해외 무기 도입이라는 대체재가 있는 만큼 오히려 국내 방산기업의 규모와 경쟁력이 갖춰지게 되면서 자율적인 경쟁체제가 균형을 이뤄 나가리라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민영화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왕 민간기업에 넘길 것이라면 매각에 속도를 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현재도 KAI가 수조 원 정도로 몸값이 싸지 않은 만큼, 추후 인수가가 더 높아지면 인수하려는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다.
반면 세금이 투입된 만큼 기업 가치를 더 높여 매각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금 시점에서 민영화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민간 기업에 넘겼을 때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항공방산산업은 투자에서 투자금 회수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산업 분야인데, 민간기업이 수익성을 이유로 투자를 줄이면 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투기 하나를 개발해 시제품을 만드는 데까지는 10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조건 당장 민간 기업에 맡긴다고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라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장의 민영화 추진보다는 당분간 어떻게 산업을 육성할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은 선진국들과 기술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실제로 현재 KAI가 2026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시험 중인 KF-21도 4.5세대 전투기다. 글로벌 방산기업들이 최근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자생력이 검증될 때까지 정부의 육성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당 기간 정부가 KAI를 운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언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앞서의 곽상훈 KAI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정부는 KAI 본사가 있는 사천에 항공우주청을 설립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만약 당장 KAI가 다른 기업에 매각된다면, 항공우주청이 설립된다 하더라도 신설의 타당성이 떨어진다. KAI는 인수하는 기업이 위치한 지역으로 옮겨지게 돼 핵심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산업 육성을 위해 항공우주청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다만 항공우주청 신설 계획이 정부조직 개편안에서는 빠진 상태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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