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묘소 참배, 반문·반민주당 ‘강공’ 집토끼 잡기 해석…여야 극한 대립 속 ‘준예산 사태’ 우려
#TK에서조차 부정평가 우세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3주기를 하루 앞둔 10월 25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동작동 현충원을 찾아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이날 참배에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김석기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대기 비서실장, 김성한 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고위 인사,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등이 총출동해 대규모 행사로 진행됐다. 여당과 대통령실, 정부까지 사전에 충분히 조율되고 준비한 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에 사전 공지되지 않았던 것이 경호상 이유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지만, 보수 지지층에 극적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쏟아졌다.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에 유족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현직 대통령이 묘소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10주기 즈음인 1989년 10월 25일 묘역을 참배했을 뿐이다. 이에 이날 참배는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이자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 많은 대구·경북(TK)을 비롯한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것으로 읽혔다.
이준석 전 대표와의 연쇄 소송전을 끊어낸 뒤 정상 출발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첫 현장 회의를 연 것도 대구였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10월 13일 대구를 찾아 비대위 첫 회의를 열면서 “대구·경북은 우리 당의 뿌리이자 심장이다. 위기마다 대구·경북은 우리 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고 말하며, 여러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몰표를 가져다준 TK를 한껏 치켜세웠다.
윤 대통령은 물론, 여당 비대위원장까지 직접 나서 보수층에 대해 강한 결집 신호를 쏘는 것은 콘크리트 지지층 확보를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지난 대선 결과를 보면 대구에서 윤 대통령은 75.14%, 경북에서는 72.76%라는 압도적 지지세를 거둬갔는데,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은 완전히 딴판이다.
여러 여론조사업체의 데이터를 종합해볼 때 윤 대통령의 전국 평균 지지율은 30%대 초반에서 답보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대선결과로 미뤄보면 TK에서만큼은 윤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한다. 하지만 몇몇 여론조사를 보면 TK에서조차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지역구에 가보면 전반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좋다”며 “그러나 윤 대통령은 서울이 고향인 데다 정치 경력이 짧다 보니 대구·경북과의 스킨십이 절대 부족하고 결국 윤 대통령에 대해 낯설어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윤 대통령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지지율이 출렁인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런 기류를 감지한 듯 중도로의 직진보다 보수 결집을 위한 우회전으로 방향타를 잡은 것으로 읽힌다. 실체 없는 중도를 쫓기보다는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이념 주파수도 오른쪽으로 확실히 틀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19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취임 후 첫 여당 원외당협위원장 초청 오찬간담회를 진행한 자리에서 “자유 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북한에 대해 확실히 선을 긋는 안보관을 나타냈다. 이 발언은 최근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거론하며 ‘종북 주사파 세력에 밀리면 안 된다’는 한 당협위원장의 발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좌우로 나뉜 진영 대결이 거리정치로 다시 나타나면서, 갈수록 대치가 심화하는 것도 여권의 우회전 판단을 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10월 22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가 동시에 대규모 집회를 열고 극명한 세력 대결 양상을 보였다.
#보수 결집 위한 확실한 카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검찰 수사는 일단 제쳐둔다 해도, 대통령실과 여권은 보수 결집력 동원을 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강공 모드를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의 정권교체 원동력이 ‘반문(반문재인) 연대’에 있었던 만큼, 보수 결집을 위한 카드로 일단 반문을 꺼내들었다.
때문에 연일 문재인 정부 때리기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오찬 간담회에서 “우리가 과거 탄소중립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시했는데 국민과 산업계에서 어리둥절한 바 있다. 과학적 근거도 없고 산업계의 여론 수렴이라든가 (하지 않고) 로드맵도 정하지 않고 발표했다”며 “국민 부담이 어떤 것인지 과연 제대로 짚어보고 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공언한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당시에도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와 관련 포럼 등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산업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설정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야권을 향해서도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정부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10월 25일 국회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연설 전 사전 간담회 자리에서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이 윤 대통령 미국 순방 중 이른바 ‘욕설 논란’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며 이 비대위원장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을 향해 성토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다음날 출근길 출입기자들과의 문답에서는 국회 시정연설 첫 보이콧과 관련해 “안타까운 것은 정치 상황이 어떻더라도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우리 헌정사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 온 것이 어제부로 무너졌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 “앞으로는 정치 상황에 따라 대통령 시정연설에 국회의원들이 불참하는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기지 않겠나 싶다. 그것은 결국 대통합뿐 아니라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더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발언, 민주당을 국회에 대한 신뢰 상실을 가져오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윤 대통령은 지지층 동원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 사용하는 어휘도 수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선택하고 있다. 10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윤 대통령은 최근 마약 확산과 관련해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마약 대응 정책 적극 시행을 ‘전쟁’에 비유하면서 특단의 대책 필요성을 피력한 것.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윤 대통령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보폭을 맞추고 있다. 한 장관은 10월 27일 개인 자격 입장문을 내고, 자신과 윤 대통령의 이른바 ‘김앤장 변호사들과 청담동 심야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에 대해 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저질 가짜뉴스를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재생하고, 나아가 신빙성이 높다거나 태스크포스(TF)를 꾸리자고 했다”며 “허위사실유포의 피해자로서 민주당 차원의 진솔한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예산 국회 이제 어쩌나
여야의 강경 대치 국면이 하필이면 예산 국회를 코앞에 두고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 국민의힘은 물론, 대통령실과 정부 관계자들 역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러다가 예산안 법정 시한(12월 2일) 처리가 불발되면서, 준예산 집행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의 비협조로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처리되지 못하면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준예산은 최소한의 예산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준예산이 집행되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던 각종 사업 관련 예산은 전액 쓸 수 없게 되고,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한 관리비·인건비 등 최소한 지출만 할 수 있다.
1960년 준예산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과거 정부가 예산 심사 표류 가능성을 고려해 준예산 편성을 준비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실제 집행까지 이른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대통령실은 준예산 준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을 감행한 민주당이 야당 탄압을 구실로 ‘준예산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0월 27일 의원총회에서 “올해는 예산이 (법정기한인) 12월 2일 통과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준예산 사태까지 갈 경우, 여론전에서 유리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 집행이 한시라도 급한 여당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민주당과의 예산협상에서 결국 져주는 싸움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내놓고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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