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전 당시 파격 조건 내걸어 후유증 우려…조합원 갈등 및 서울시 고도제한 등 해결 과제 산적
한남2구역은 한남뉴타운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재개발 사업 구역이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 11만 4580m² 부지에 아파트 31개동, 1537가구(임대 238가구 포함)를 새로 지을 예정이다.
한남뉴타운사업은 부동산업계의 큰 관심을 받는 지역이었다. 등 뒤에 남산을 업고 한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역이다. 이 중에서도 한남2구역 재개발 사업은 한남뉴타운사업 구역 중 유일하게 초등학교를 끼고 있고 6호선 이태원역도 가까워 재건축 이후 단지의 가치 상승이 기대됐던 곳으로 꼽혔다. 또 총 사업비가 약 9486억 원에 달하는 대형 정비사업이어서 건설업계에선 올 하반기 최대어로 분류됐다.
한남2구역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치열한 수주전을 펼쳤다. 이들은 파격적인 사업 조건을 내걸며 조합원 표심 잡기에 나섰다.
대우건설은 ‘한남 써밋’(HANNAM SUMMIT), 롯데건설은 ‘르엘 팔라티노’(LE-EL PALATINO)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우건설은 최고 층수를 상향해 서울시의 고도제한을 해제시키고, ㄷ·ㄹ·ㅁ형 주동 배치를 전면 수정하겠다고 전했다. 롯데건설은 하이엔드 마감재, 호텔식 커뮤니티, 명품 상업시설을 제안했다.
이주비도 파격적이었다. 롯데건설은 이주비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140%를 책정했다. 대우건설은 기본 이주비 법정한도인 LTV 40% 외에 추가이주비 110%를 지원해 총 150%의 이주비를 책임지고 조달하기로 했다. 롯데건설이 최저 이주비 7억 원을 발표하자 대우건설은 최저 10억 원까지 내주겠다고 맞불을 놨다.
분담금 납부 관련 대우건설은 최대 입주 2년 후까지 잔금 납부를 미뤄주고, 롯데건설은 입주 4년 후 100% 납입 조건으로 입주 때까지 금융비용을 자사가 자체 부담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양사 모두 후분양을 제안했다. 후분양은 아파트 건설 전체 공정의 60~80% 이상 진행 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자가 직접 집을 보고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치열한 경쟁 끝에 지난 5일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부동산업계에선 기대와 걱정의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대우건설이 수주전 당시 내놓은 사업 조건들이 당장 이행될 수 없으며 대우건설 측에도 후유증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부동산중개법인 관계자는 “재개발 사업은 속도가 관건인데 결국 (수주전에서) 제시했던 사업 조건을 모두 이행해야 하는 대우건설에 과제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먼저 롯데건설과 고발전을 치러야 한다. 롯데건설은 지난 2일 한남2구역 부재자 투표장 무단 침입 의혹을 제기하며 대우건설 직원들을 건설산업기본법·입찰방해죄·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용산경찰서에 고발했다. 롯데건설 측은 "투표소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대우건설 협력업체 직원이 조합원 명부가 있는 컴퓨터에서 조합원 6명이 투표할 때까지 전산 작업을 하다 조합에 발각됐다"고 전했다. 실제 이 사안으로 오전 한때 투표가 중단된 바 있다. 시공사 선정 투표 결과 롯데건설과 차이가 66표밖에 나지 않아 조합원 갈등 봉합도 과제다.
서울시 고도제한 해제도 관건이다. 한남2구역은 남산 경관 보호 목적으로 고도제한(90m 이하)을 받고 있다. 대우건설은 수주전 당시 최고 층수를 상향하는 ‘118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18프로젝트는 최고 층수를 원안 설계인 14층에서 7개 층을 상향해 21층으로 높이는 것이 골자다.
대우건설은 서울시의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토대로 시와 협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지난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시는 도시공간 재구조화를 위해 △보행 일상권 조성 △수변중심 공간 재편 △미래성장거점 중심지 혁신 △다양한 도시모습 도시계획 대전환 △기반시설 입체화 △미래교통 인프라 확충, 6대 계획을 수립했다. 6대 계획 중에는 서울 전역에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창출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대우건설은 서울시의 스카이라인 창출 의지를 바탕으로 고도제한을 해제할 수 있도록 협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은 결국 도시 미관을 유지하고 주거의 편의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는 118프로젝트와 같은 방향성인 셈”이라며 “(118프로젝트는) 오히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부합하는 설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입장은 다르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남2구역은 2016년 9월 고시된 ‘한남지구재정비촉진계획 변경지침’을 따른다. 이 지침엔 (한남2구역의) 고도제한이 90m 이하”라며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은 고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한남2구역의 고도제한 근거를 들 수 있는 지침이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건설자재 물가 상승 등으로 건설사 수익성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대우건설의 사업 조건이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기업평가(KR)가 지난 9월 발표한 건설사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KR 유효 등급을 보유한 22개 건설사의 PF 우발채무(정비사업 제외)는 총 18조 4000억 원에 달한다. PF 우발채무는 장래에 발생한 불확정 채무를 뜻한다. 건설사들이 호황기 때 공격적으로 수주에 나섰지만 시장이 악화되면서 삽을 뜨지 못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연결기준 대우건설의 PF 우발채무는 1조 1590억 원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우건설은 롯데건설과 수주전 당시 후분양과 함께 사업비 및 LTV 150% 책임조달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우건설이 내건 조건들이 무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후분양제를 실시하면 시공 전 수분양자(소비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을 수 없다. 주택도시기금법상 후분양제 시기는 공정률 80% 이상부터 분양을 진행한다. LTV도 마찬가지다. 대우건설은 기본 이주비 법정한도인 LTV 40%에 추가이주비 110%를 지원해 총 150%의 이주비를 책임조달 하겠다고 밝혔다. LTV가 40%라면 1억 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최대 40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 대우건설 관계자는 “우리로선 무리가 없는 사업조건이라고 생각해 발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우건설이 올 3분기 어닝서프라이즈(기업의 실적이 예상치보다 좋은 것)를 기록해 재정 부담에 무리가 없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올 3분기 매출액이 7조 2109억 원으로 전년 동기(6조 2465억 원) 대비 15.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340억 원으로 전년 동기(5132억 원) 대비 3.9% 줄었다. 주택건축부문 매출은 4조 6535억 원으로 전년 동기(4조 2513억 원) 대비 9.5% 올랐다. 주택건축부문은 전체 매출의 약 65%를 차지하며 주 수익원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대우건설이 중흥그룹에 인수되기 전 미약했던 토목·플랜트 부문도 성장세를 보였다. 플랜트 부문 매출은 올 3분기 9800억 원으로 전년 동기(6342억 원) 대비 55% 올랐다. 토목 부문은 같은 기간 1조 3525억 원으로 전년 동기(9546억 원) 대비 3.4% 상승했다. 앞서 올해 초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대우건설 임직원께 드리는 글’에서 대우건설의 토목·플랜트 부문에 대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성장을 이끌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대우건설의 올 3분기 현금성 자산은 2조 2000억 원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해 있는 상황에서도 대우건설이 성장세를 보인 것에 대해 박영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중흥그룹 편입 후 지배구조 강화로 경영 상황이 개선돼 두드러지는 경영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이러한 성과가) 중흥그룹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하긴 어렵다”며 정창선 회장이 대우건설 재무구조 개선 및 안정화에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건설사의 보유 자산과 관계없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무리한 사업 조건을 내놓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과열수주를 보이는 재개발 구역이 있다”며 “만약 수주 과정에서 건설사가 내놓은 사업 조건이 이행되지 않을 시 조합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조합원들은) 사업 조건을 기대하고 시공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열수주 양상이 보일 때 건설사들의 이주비 지원 등 무리한 사업 조건을 막기 위해 국토교통부 도시정비과에서 시공사선정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보류됐다”며 “부동산 시장 변동 등에 따라 이행하기 힘든 사업 조건은 내걸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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