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3일 토요일 아침 서울 서부소방서 구조대에 근무하는 권영철 대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나섰다. 어느덧 자정을 지나 새벽 3시 47분 앞선 화재 신고가 오인 신고로 확인되면서 소방서로 복귀하고 있던 그때 묘한 긴장감을 깨우며 무전이 울린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에서 화재 발생."
급히 차를 돌려 빛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방차는 끼익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선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도로 양옆을 가득 채운 불법주정차 차량들이었다.
150m는 더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대원들은 20kg이 넘는 장비들을 들고 급히 뛰어야 했다. 숨 가쁘게 도착한 화재 현장은 시뻘건 불꽃을 내뿜으며 화재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다. 서둘러 최대 수압으로 방수가 시작된 바로 그때 "아들이 안에 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빨리요 빨리"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처절한 외침이 들렸다.
이 말에 대원들은 지체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데 1차 수색을 했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2차 수색을 위해 6명의 대원이 다시 집 안으로 진입한다. 같은 시각 지하실을 수색하고 나오던 권영철 대원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강한 충격을 받으며 쓰러진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 순간 평생 지울 수 없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2층 주택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집 안에 진입했던 대원들이 그대로 매몰되고 말았다. 미친 듯이 무전을 하고 목이 터져라 이름을 불러도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잔해 아래는 유독가스로 가득 찬 상황. 250명이 넘는 대원들이 동료를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와 삽과 망치를 들고 필사의 구조에 나선다. 영하의 날씨에도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진행된 구조작업은 어떤 결과를 맞았을까.
11월 9일은 국민에게 화재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을 높이고 화재를 예방하게 하여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소방의 날이다. 이날을 맞아 'First In, Last Out' '제일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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