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연구와 실험을 통해 만든 요철 캔버스가 시그니처
장희진 작가는 바실리 칸딘스키, 마크 로스코와 맞닿아 있다. 장 작가는 색으로 빛의 우물(공간에 들어온 빛이 정지된 듯한 상태)을 만든다. 색을 분할하고 선을 그어 색면추상을 구현한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장 작가 삶의 경험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작가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변화에 따라 색을 분할하고 선을 그으며 적합한 색을 찾는 감각을 일깨웠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삶에 대한 경험을 이미지로 각인, 색면으로 펼쳐낸다.
이번 전시는 근작들이 가진 무거운 색감과 힘을 뺀, 상대적으로 평면 캔버스 구조를 강조한 최근작들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조명 고도를 낮추어 캔버스 프레임에 초점을 맞추면 요철 캔버스(modeling made canvas)가 만들어 낸 주름(골)이 뚜렷해지며 바랜 색이 나온다. 장희진 회화는 캔버스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로서 깊이와 평면으로서 넓이를 아우르며 색의 이면, 천착한 삶을 사유한다.
장희진 작가가 자유로운 추상 회화를 선택한 건 필연적이란 얘기가 있다. 장 작가 외할아버지 고 김기린 작가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한국 추상 회화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었다. 장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선화예중, 예고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 작가는 2002년부터 2022년까지 17회 개인전과 독일, 스위스, 뉴욕, 싱가폴, 중국, 대만 등 해외 아트페어와 기획전 등을 참가하였고, 오직 작가 손과 시간으로 만들어진 모델링 페이스트로 만든 표면 요철을 시그니처로 20여 년간 활동하고 있는 전업 작가다.
장희진 작가는 자신 작업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장 작가는 “먼저, 회화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캔버스에 특수 제작한 물결모양 대형 곡선자를 이용하여 9mm 간격 라인을 치고, 라인을 따라 0.4mm 라인 테이프를 붙인 뒤 그 위에 나이프를 사용하여 모델링 페이스트를 수십 차례 펴 발라 올리기를 반복한다. 매체 표면이 적당히 마르면 그 위에 다시 얇게 펴 바르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노동 과정을 48시간 정도 지속한다. 이 과정을 거쳐 캔버스 모델링 표면층이 0.5mm 정도 두께가 되었을 때 하루를 건조한 후, 라인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이렇게 하면 라인 테이프와 함께 떼어진 부분은 음각이 되고 나머지 부분이 양각되는데, 이렇게 내 작품 특징적 기본 베이스인 요철면 캔버스가 제작되는 것이다. 이후 수십 차례 사포질과 다듬기, 그리고 베이스 칠을 해서 화면 베이스를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모델링 요철 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특별한 점은 작품 이미지가 나무 혹은 숲 형태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실재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빈 곳 즉 여백, 혹은 허공을 그린다는 점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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