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처분에 증권사 승소했지만 금융위 항소로 2심 돌입…1심 재판부 “차명계좌가 꼭 비실명계좌는 아냐”
서울행정법원 제5부 재판부는 최근 유안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제기한 ‘홍원식 회장의 차명계좌 관련 과징금 및 가산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금융위가 각 증권사에 내린 과징금 및 가산세 처분이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홍원식 회장은 2018년 대법원에서 차명 주식 미신고 혐의로 벌금 1억 원을 확정 받았다. 홍 회장은 남양유업 직원들 명의로 남양유업 주식 약 19만 8000주(지분율 27.5%)를 소유해왔다. 검찰이 이와 관련한 수사에 착수하자 홍 회장은 2013년 12월 직원들의 주식을 모두 본인 명의로 전환했다.
금융위는 2020년 9월 유안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게 과징금을 부과했다. 차명계좌의 자금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과징금을 원천징수해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유안타증권에 과징금과 가산금을 합쳐 1억 6200만여 원, 미래에셋증권에는 6800만여 원을 각각 청구했다.
금융위는 과징금 부과의 근거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을 들었다. 금융실명법 부칙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기존 금융 자산의 거래자가 명의를 실명으로 전환할 경우 긴급명령 시행일 기준 금융자산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원천징수해 정부에 납부해야 한다. 즉, 비실명자산으로 드러난 경우 해당 계좌가 계설된 금융기관에게 과징금을 물리도록 한 것이다.
홍원식 회장은 남양유업 직원 두 명의 유안타증권 계좌로 1991년과 1993년 남양유업 주식 1000주와 1180주를 각각 매수해 취득했다. 또 다른 직원의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통해서도 남양유업 주식을 매입했다. 해당 계좌들은 모두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됐다.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시행일 기준 홍원식 회장의 유안타증권 차명계좌 재산가액은 3억 2260만 원, 미래에셋증권 차명계좌 재산가액은 1억 2400만 원 수준이었다. 금융위는 “긴급명령과 금융실명법은 금융자산의 명의신탁을 금지하고 실명에 의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과징금 부과 처분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안타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금융위의 과징금 처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차명계좌를 통한 금융거래에는 금융실명법 부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원천징수제도는 조세 징수의 편의를 위한 제도인데, 원천징수의무자(증권사)가 이행할 수 없는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1심 법원은 증권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단순 차명계좌라는 사정만으로 비실명계좌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들 계좌가 차명계좌이기는 해도 예금주 명의의 실명계좌라고 본 것이다. 홍원식 회장이 차명계좌로 활용한 유안타증권과 미래에셋증권 계좌들은 1993~1994년 실명 확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증권사들이 원천징수를 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판단했다. 홍원식 회장의 차명계좌는 예금주 명의로 된 실명계좌이기 때문에 증권사의 원천징수 의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차명계좌의 금융자산을 홍 회장에게 귀속시키기는 내용의 합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금융위는 지난 11월 말 항소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2심에서도 판결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세무 전문 변호사는 “금융기관 책임 여부의 문제”라며 “금융기관이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고 이것을 재판부에서도 인정한 셈이기 때문에 2심에서 판결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당초 금융위는 차명계좌라도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주 명의로 된 실명계좌라면 해당 계좌의 금융자산은 실명 재산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2017년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차명계좌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석을 바꿨다. 검찰 수사나 국세청 조사, 금융감독원 검사 등에 의해 사후적으로 차명계좌라는 것이 밝혀지면 해당 금융자산은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금융위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시중은행 5곳과 증권사 1곳은 지난해 12월 지방 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득세 징수 취소 소송’과 ‘법인세 징수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과세당국이 해당 금융사들에게 차명계좌의 금융자산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 소득에 대해 과세하자 금융사들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각 계좌(차명계좌)의 금융자산이 비실명 금융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2심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승소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고,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진행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 중인 건이라 답이 어려울 듯하다”고 전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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