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입증과 영업망이 관건…사업 영역 겹치는 카카오브레인·카카오헬스케어 교통정리 필요성도
#카카오브레인의 의료 사업 진출
카카오브레인은 2017년 설립된 카카오 계열사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초대 대표를 맡았다. 카카오브레인은 그간 AI 기술 연구에 집중해오다가 올해부터는 직접 제품을 출시하며 수익 창출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월 내놓은 영어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앱) ‘레미’다. 레미에는 카카오브레인이 자체 개발한 AI 언어 분석 기술이 탑재됐다.
카카오브레인은 의료 영역으로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AI의 부가가치가 크다고 본 것이다. 카카오브레인은 흉부 엑스레이 영상으로 판독문 초안을 만드는 AI 모델 ‘AI 캐드(CAD)’를 개발 중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엑스레이 영상을 토대로 병변의 위치나 크기 등을 파악해 판독문을 작성한다. 그렇지만 의사가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하고 판독문을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해 병변 부위 등을 제시하고, 의사는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판독문을 작성할 수 있다. 김일두 카카오브레인 대표는 지난 12월 9일 카카오 개발자 콘퍼런스 ‘이프 카카오 데브 2022’에서 “내부 임상 검증에 따르면 영상 판독 효율을 두 배까지 향상시켰다”고 밝혔다.
카카오브레인의 강점은 ‘초거대 AI 기술’이다. AI 캐드 개발에도 카카오브레인이 자체 개발한 초거대 AI 기술이 적용된다. 초거대 AI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AI의 학습 능력을 높인 기술이다.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기술 ‘코지피티(KoGPT)’는 AI가 자동으로 판독문 초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코지피티는 자연어처리 능력을 갖춘 GPT-3에 한국어를 학습시킨 기술이다. 한국어로 된 긴 문장의 주요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거나 결론이 없는 문장을 추론해 결론을 예측하며 주어진 문장의 다음 내용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카카오브레인이 코지피티를 활용해 개발한 시 쓰는 AI ‘시아(SIA)’는 올해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카카오브레인의 이러한 AI 기술 고도화는 카카오라는 뒷배가 있기에 가능했다. 카카오는 200억 원을 출자해 카카오브레인을 설립한 이후 매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4월에도 카카오브레인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400억 원을 투입했다.
편의성과 정확도가 관건인 AI 영상 판독 시장에서는 고도화된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다. 일단 국내 AI 영상 판독 업계에서는 카카오브레인의 등장에 기대감을 드러낸다. AI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외 AI 판독 시장이 아직 초창기다”라며 “카카오가 들어오면 시장 자체가 커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카카오가 시장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국내 기업 중에서도 뷰노와 루닛이 흉부 엑스레이 판독 보조 서비스 등으로 국내외 AI 판독 시장에 이미 진출해 있다. 외국계 기업인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바이엘 등도 관련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AI가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면서 고도화되는 면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에 빨리 진출한 기업이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임상적 유용성을 얼마나 입증하는지, 의사를 얼마나 설득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며 “현재 나온 제품들도 AI가 판독한 후 리포트를 만들어주는데 의사들이 이 리포트를 보고 판독문을 작성하는 데 크게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AI 판독 업체들이 국내보다는 해외를 노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아직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AI 영상 진단이 없다. 그만큼 국내 보험 체계에 진입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해외 시장의 경우에는 ‘영업망’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러나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영업망을 잘 갖춘 것은 아니다. 미국 IBM은 2015년 4조 원을 들여 의료 영상을 판독하고 암을 진단하는 AI 암 치료 솔루션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내놓았다. 하지만 올해 초 IBM은 왓슨 사업을 사모펀드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진단 능력이 예상보다 떨어지고 영업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적자를 거듭한 점이 IBM의 패인으로 전해진다.
#의료 사업 진출 둘러싼 논란 살펴보니
한편 카카오는 그룹 차원에서 헬스케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2024년 AI 캐드의 국내외 상용화를 시작으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에도 해당 기술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카카오브레인은 AI 판독 서비스 외에 AI 신약 분야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AI 신약 개발사 갤럭스에 50억 원을 투자했고 지난 7월에는 갤럭스와 5년간의 ‘AI 기반 항체 신약 플랫폼’ 공동 연구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카카오는 올해 3월 카카오헬스케어를 설립했다. 이어 지난 4월에는 카카오헬스케어 유상증자에 참여해 1200억 원을 투입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내년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 치료 모바일 서비스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환자가 본인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게 도와주는 서비스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의료기관의 임상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도 내놓을 계획이다.
카카오의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놓고 긍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규제로 가로막힌 비대면 진료마저 앞으로는 대세가 될 수 있다”며 “플랫폼 경쟁력이 있는 카카오의 헬스케어 시장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투자를 넘어 직접 진출하는 것에 대해 문어발 확장 논란이 제기된다. 증권가 일부에서는 카카오브레인과 카카오헬스케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카카오의 자금으로 실컷 성장시켜놓고, 결국에는 해당 기업의 기업공개(IPO·상장)를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카카오브레인과 카카오헬스케어 모두 AI 기반 헬스케어 사업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두 회사를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카카오브레인 관계자는 “AI가 만든 의료 영상 초안 판독문 결과를 활용할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카카오브레인과 카카오헬스케어 간 사업부문을 합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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