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율 0.04%로 일반인보다 강력범죄 가능성 낮아…가족들 사회 부정적 시선에 쉬쉬하며 살아
“조현병이라고 하면 피하는 눈치예요.”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 한목소리로 털어놓는 말이다. 매년 조현병 환자가 일으킨 살인·방화·폭행 사건 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심리적 고통이 극심하다고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만 국가 차원에서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해 관심을 쏟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현병은 뇌 신경계 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뇌질환이다. 환청·환시·피해망상·과대망상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뇌세포 간의 신경정보 전달 과정에서 이상이 생기면서 귀로 소리를 듣지 않아도 뇌가 들었다고 인식해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앞서 2011년 KAIST 연구진은 후천적으로 발생한 뇌 특이적 체성 유전변이가 조현병을 일으킨다고 한 바 있다. 조현병 치료를 위해선 신경전달물질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은 약물치료가 필수”라며 “무기력 등 조현병 약 부작용으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부작용은 부작용대로 케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현병은 약 복용 중단 시 재발 비율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완치율은 20% 정도지만 꾸준하게 치료하면 환청·환시·피해망상 등의 증상이 완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정신질환 현황 실태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 수는 △2018년 12만 1439명 △2019년 12만 1417명 △2020년 12만 178명 △2021년 12만 720명 △2022년 10월 기준 11만 7468명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저희(보건복지부)가 조현병 환자 수를 직접적으로 관리하지 않아서 심평원의 질병 코드(급여비용 청구 시 사용하는 것)로 ‘환자 수가 이 정도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의료업계에선 국내에 약 50만 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돌보는 가족 수는 훨씬 더 많다.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심리적 고통, 비용 부담 등 자신들의 어려움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조현병이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인식 탓이다. 하지만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전체 범죄 중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인 사건의 비율은 0.04%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측은 치료와 관리를 받는 조현병 환자의 범죄 가능성은 일반인의 강력범죄 가능성보다 현저히 낮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현병 환자와 관련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조현병이 ‘살인을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이라는 시선과 인식이 팽배해진다. 이 때문에 일부 조현병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도 병을 알리고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외부에 조현병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과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호소하지 못하고 있다.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의료업계에선 조현병 증상이 심해지면 환자가 치료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지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가족의 도움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권준수 교수는 “조현병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의 돌봄이 중요하다”며 “‘조현병=살인 저지르는 질환’이라고 생각하면 환자의 가족들은 돌봄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리지 못하고 돌봄에도 지쳐만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인 20대 여성 양 아무개 씨의 어머니 A 씨는 조현병으로 정신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양 씨에 따르면 A 씨는 현재 조현병 약 부작용으로 매일 무기력한 상태에서 먹고 눕기만 한 채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 하고 있다. 양 씨는 지난 21일 서울의 한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엄마의 조현병으로 엄마와 가족들이 몇 년째 고생하고 있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양 씨는 “아주 가끔 지인들에게 ‘가족 중 조현병 환자가 있는데 가끔 환청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라고 말하는데, ‘조현병? 뉴스에 사건 많이 나오지 않아?’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면 괜히 말했다 싶다”고 하소연했다. 양 씨는 “연애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서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 ‘엄마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무섭다”며 “조현병 환자의 살인·방화 사건이 모든 조현병 환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2019년 6월 한국리서치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는 공격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한다’는 항목에 △동의 78% △비동의 16% △모름 6%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항목에는 △동의 73% △비동의 20% △모름 6% 였으며, ‘조현병 치료 경험이 있는 사람과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항목에는 △동의 34% △비동의 52% △모름 14%로 파악됐다.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만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조현병을 앓는 가족 구성원이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심지어 가족 중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늘 긴장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50대 남성 지 아무개 씨의 아내 B 씨도 조현병 환자다. 지 씨에 따르면 B 씨는 환청, 과대망상 등 조현병 증상을 나타낸다. 현재 B 씨는 약물치료 중이다. 지 씨는 지난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아내(B 씨)가 한동안 칼을 들고 다녔다”며 “가장 무서웠던 건 내가 집 주차장 쪽에서 걸어오는데 장을 보고 온 아내와 마주쳤다. 그런데 아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째려보면서 가방에 손을 넣더라. 알고 보니 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아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다른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 뉴스에 나오는 조현병 환자들의 살인사건처럼 내 아내도 언젠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하루하루가 괴롭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조현병 환자에게 가족 돌봄이 중요한 만큼 사회가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깨고 증상 완화를 위해 조현병 환자와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준수 교수는 “가정에 조현병 환자가 있으면 (환자의) 증상으로 가족들이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면서 “조현병 환자에게 가족은 정말 중요한 지지대다. 약물치료와 함께 가족 돌봄이 함께 이뤄지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증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조현병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더 이상 숨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치료환경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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