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은 뒤처지고 투자 여력도 충분치 않아…SK하이닉스 “키파운드리와 시너지 낼 부분 찾을 것”
#시스템 반도체 관심은 보이는데…
최근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설계와 위탁생산을 모두 맡는 IDM(종합반도체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4월 6일 삼성전자는 미국 AMD와 차세대 고성능·저전력 그래픽 설계자산(IP) 분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활용되는 설계자산 기업인 영국 ARM에서 공급 받은 설계 도면을 변형해 시스템 반도체를 직접 설계한다.
AMD와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은 그래픽 모듈 기능을 보완해 설계 능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자체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엑시노스’에 최적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들겠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계획이다. 모바일 AP는 시스템 반도체 대표 제품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모바일 AP 시장 점유율은 대만 미디어텍(35%), 미국 퀄컴(31%), 미국 애플(16%), 중국 유니SOC(11%), 삼성전자(7%) 순인데, 이 점유율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의도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지난해 삼성전자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미터(nm) 비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 파운드리는 시스템 반도체 위탁생산을 말한다. GAA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 4개 면을 게이트가 둘러싸는 방식이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도 지난해 말부터 3nm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TSMC가 58.5%, 삼성전자가 15.8%로 격차가 크다.
하지만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파운드리 역량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시스템LSI 포함) 매출은 7조 293억 원이다. 7조 2246억 원을 기록한 메모리 반도체 D램 매출과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3월 삼성전자는 경기도 용인에 2042년까지 300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에 이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겠다는 계획도 드러냈다.
시스템 반도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사이클에 취약하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생산되는 주문형 생산 방식으로, 특정 산업의 호황과 불황에 따른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 위주 전략에서 벗어나 시스템 반도체 분야로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메모리 반도체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를 둘러싼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에 관심을 보이지만, 아직은 영향력이 미미하다. SK하이닉스는 시스템 반도체의 일종인 CIS를 자체 CIS연구소에서 설계 및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한 파운드리 업체 키파운드리를 통해서 8인치 웨이퍼 기반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도 벌이고 있다.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IC)를 통해서도 CIS, DDI 등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전체 매출 중 시스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 내외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CIS 쪽 매출도 미미한 수준이다.
엄재철 영진전문대 반도체전자계열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은 제한적이라 결국 시스템 반도체로 넓혀야 한다. 최근 움직임을 보면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로 진출은 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역량이 안 따라주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설비투자 규모를 2019년 19조 원 대비 올해 50% 이상 줄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021년보다 45% 감소한 6조 80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한 탓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조 9770억 원이다. 2021년(5조 580억 원)보다 소폭 줄었다. 동시에 차입금 액수도 늘었다. SK하이닉스의 차입금은 지난해 22조 9946억 원으로, 2021년(17조 6238억 원) 대비 30% 늘었다. 4월 4일에는 운영자금 조달 목적으로 2조 2377억 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도 밝혔다.
SK하이닉스가 시스템 반도체 기술력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남건욱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 부회장은 “SK하이닉스는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의 경우 구형 장비로 레거시 제품을 만들어 틈새시장을 노리는 상황이라 좀 더 높은 기술로 옮겨가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한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는 미들엔드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진출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 등 하이엔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는 아직 진출을 안 한 상황이다. 키파운드리 인수만으로 비메모리 시장에서 크게 성장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이엔드 시스템 반도체가 미들엔드 시스템 반도체보다 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회사 입장에선 수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안정적으로 수익 낼 수 있을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SK하이닉스가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면, 주력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에서 안정적인 실적이 꾸준히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지난해 4분기에는 1조 8984억 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 1분기에는 영업손실이 4조 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공급 과잉이 지속되면서 2분기에도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나마 최근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감산 행렬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지난 4월 7일 삼성전자는 “공급성이 확보된 제품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감산을 결정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인 1998년 이후 25년 만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메모리 공급 과잉 상황 속에서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요 침체로 재고가 불어나자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4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해온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함으로써 추가 감산에 대한 부담도 덜게 됐다.
증권업계에서는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제작 기간이 3개월 정도라 감산 2~3개월 후에 물량이 본격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김황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업계 전반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 축소 기조가 본격화될 수 있다. 과거처럼 가격 경쟁을 통한 물량 밀어내기 가능성은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변수도 적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요 고객사인 IT 업체의 투자 심리가 언제 살아나는지, 삼성전자의 감산 수준과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가 메모리 반도체 업황 반등의 변수로 꼽힌다. 재고가 이미 많이 쌓인 탓에 실질적인 감산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은 15조 6647억 원으로, 2021년(8조 9500억 원) 대비 75% 증가했다.
최근 중국이 전 세계 D램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에 대한 수출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또 다른 변수다.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국가 안보 문제를 이유로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안보 심사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중국에 D램과 파운드리, 낸드플래시 생산시설 4곳을 두고 있다. 마이크론에 대한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SK하이닉스도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엄재철 교수는 “공장이 중국에 있기 때문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개별 업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우선 8인치 웨이퍼 기반 제품군이 적시에 공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업성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인수한 키파운드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볼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수급 균형이 맞춰지면 시장도 정상화할 것으로 본다. 지금의 다운턴(하강 국면) 상황을 기회로 삼고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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