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할당 범위 내에서만 탄소 배출…세금 부과 방식보다 감축량 측정 쉽고 조세 저항 적어
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반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에너지를 줄이고, 쓰레기 분리배출에 노력하며,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대한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탄소 중립 활동도 필수다.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물건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탄소를 마냥 내뿜으면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기업들이 탄소를 차차 줄여나가면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1990년 세계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창설해 온실가스 감축을 공동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UNFCCC 자체로는 강제성이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탄소 배출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행방안이나 정책 강화가 필요했다. UNFCCC는 정기적으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당사국 총회(COP)를 여는데, 세 번째 COP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담긴 새로운 의정서를 채택했다. 일본 교토에서 채택돼 ‘교토의정서’라고 일컫는다.
‘탄소배출권’은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다. 탄소배출권은 말 그대로 온실가스(탄소)를 배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각국 정부가 기간별로 세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에 따라 각 기업에 할당한다. 정부에서 할당한 범위, 즉 주어진 '배출권' 내에서만 기업이 탄소를 배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 탄소배출권 제도를 도입했다. 2015년 교토의정서를 보완한 파리협정이 체결됐고, 온실가스 감축 대상이 모든 협약 국가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당사국들은 스스로 정한 감축목표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5년 단위로 제출해야 한다.
국내 탄소배출권 할당 대상은 기업뿐이다. 정확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이 어려운 개인은 제외다. 우리나라는 3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연평균 총량이 12만 5000t(톤) 이상 업체, 2만 5000t 이상 사업장을 하나 이상 보유한 업체, 자발적으로 할당대상업체로 지정 신청을 한 업체에 배출권을 할당하고 있다. 선정된 할당대상업체는 매년 3월 31일 배출가스 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 1년간 할당량을 기준으로 배출량을 초과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작성한 ‘2050 탄소중립과 배출권거래제의 활성화’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배출권은 각 나라가 예측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탄소를 감축할 수 있도록 돕는다. 탄소에 세금을 부과하면 감축량보다 가격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둬들인 세금이 얼마나 탄소를 감축했는지 측정하기 어렵다.
또 탄소배출권은 세금 부과보다 재정 수입이 수월하다고 말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탄소 배출량에 세금을 부과하는 쉬운 방법도 있겠으나 이는 탄소배출권과 비교했을 때 조세 저항을 불러오는 등 경직돼 있다”며 “배출권은 기업의 노력에 따라 충분히 비용 절감할 수 있는 구조다. 시장 기능을 활용하는 구조기에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가 탄소배출권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 당시 인준에는 동의했으나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감축 의무가 없었다. 2023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전 세계 경제 규모에서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최근에는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에 우리나라를 포함해 G8로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급격한 성장세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었다. 신동훈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가 쓴 ‘탄소시장과 탄소배출권’ 저서에 따르면 1990~2005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2배로 늘었으며, 2019년에는 글로벌카본프로젝트(GCP)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를 기록했다. 1인당 이산화탄소배출량 기준으로는 우리나라가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다. 탄소배출 분야 한 전문가는 “과거에는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지만 이제 우리나라의 국격이 상당히 높아졌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흐름인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 6월 30일 1차 NDC를 제출한 이후 여러 차례 수정·보완을 거쳐왔다. 현재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심의·의결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안’이 큰 틀에서는 가장 최신 안이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에는 순 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약 436만t을 감축해야 한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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