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부품 안쓴 사유화차 편입 지연 ‘갑질’ 논란…코레일 “기술적 검토에 따른 것, 특정 업체 지정 아냐”
#화차 납품 늦어지는 까닭
코레일이 3년 전 발주한 컨테이너 화물열차 251량 중 100량 가까이가 아직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해당 화차는 이미 제작이 완료된 상태다. 철도 물류업계에 따르면 코레일의 제작 협의가 신차 공급을 더디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제작사들은 성능이 입증된 부품이면 차량 제작에 활용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철도차량기술기준을 충족하고 형식승인과 안전관리체계승인도 받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마지막 허들이 남아있다. 코레일의 특수제작설명서를 충족해야 한다.
예컨대 주행장치와 관련해 코레일은 컨테이너차 특수제작설명서에 “국가 R&D(연구개발)로 개발돼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을 명시했는데 국가 R&D 과제로 주행장치를 개발한 회사는 특정 회사가 유일하다. 기초제동장치, P4a 제동장치 역시 특정 회사가 국내에 독점공급하고 있다. 코레일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제작사 측에서 더 성능이 좋은 부품과 설계를 사용하려고 설득했는데 코레일 측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철도공사에서 사용을 지시한 일부 부품 중에서는 준비가 안 된 제품들도 있어서 제작사 측에서 몹시 애를 먹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같은 문제로 고객사가 제작한 컨테이너 사유화차의 운용 역시 늦어지고 있다. 철도안전법의 하위법까지 전부 충족해서 차량을 제작해도 코레일이 차량번호를 부여해 차적에 편입시켜주지 않으면 운용할 길이 없다. 코레일이 지정한 부품을 쓰지 않은 사유화차의 차적편입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서의 관계자는 “특정 회사가 제작한 사유화차의 차적 편입이 1년 가까이 늦어진 사례도 있다.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의 형식인증을 받았는데도 코레일이 호환성 핑계를 대거나 철도공사 내규를 핑계로 차적편입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화차 편입이 계속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는 사이 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발생하는 차입금 이자 손실 등 금융비용은 제작사 쪽에서 오롯이 부담하고 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갑질이 따로 없다. 계약서상에 보편타당하게 업계에서 쓸 수 있는 기자재 공급자 리스트를 복수로 제공하는 것이 국제 표준”이라며 “특정 부품 사용을 강요하는 행태는 책임자 해고 사유에 해당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제소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코레일은 “지적된 부품은 한국철도표준규격에 해당하는 부품으로 국내외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특정 업체를 지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유화차 차적편입 지연의 경우 절차(제작협의·기술검토)를 거치지 않고 편입을 요구해, 신규 사유화차와 기존 운영화차와의 운행안전성을 위한 기술적 검토에 따라 지연이 발생했다”고 반박했다.
#운임료 책정 이슈로 고객사 이탈 가속화
코레일은 올해 6월 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평가 대상 공기업 31곳 중 유일하게 최하위인 ‘E(아주 미흡)’ 등급을 받았다. D등급을 받은 지난해에 이어 더욱 등급이 하락한 셈이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2027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 관리 계획에서도 코레일은 ‘재무 위험 공기업’ 14곳 중 13위를 기록했다. 코레일의 적자 중 70%는 물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91년도에 6121만 톤(t)을 찍었던 철도물류 수송량은 지난해 2362만t으로 대폭 감소했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현장에서는 올해 수송량이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는 운임료 책정 이슈로 고객사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물차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이후 코레일 역시 시장 교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철송 운임을 유가와 연동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지난해 3분기 국내 기준 유가가 리터당 1900원대로 치솟았을 때 운임을 올린 철도공사는 올해 초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 더 이상 운임을 조정하지 않고 있다. 육송 운임의 경우 올해 유가가 1500원대로 내려갔던 시점을 기준으로 시장 운임이 형성돼 있어 운임 차이가 현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철도 운송의 경우 구간운임이 끝이 아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평택 사업장에서 출하된 반도체를 부산항을 통해 수출할 경우 각각의 터미널과 철도 간의 육상운송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컨테이너를 옮겨 싣기 위한 장비와 인력에 대한 고정비까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육송에 비해 과도한 운임료가 청구되고 있는 셈이다.
운임은 올랐는데 운송 서비스 품질은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레일은 고객사들이 원하는 시간대와 구간에 대량 화물을 직통으로 수송하는 전용 열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고객사에 따르면 철도노조의 파업 영향 등으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용 열차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철도물류 고객사 관계자는 “철도에 오늘 물량을 실어서 내일 가야 하는데 못 가거나 100개를 계약했는데 50개밖에 못 가는 식이니 전혀 신뢰할 수가 없다”며 “철도 운임을 올린 만큼 매출은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고객이 이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화차 부족으로 인한 수송 차질도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유화차든 사유화차든 화차는 6개월, 1년, 2년 등 주기별로 검수를 하게 되어 있다. 검수가 즉각 이뤄지는 사외검수와 달리 철도공사 내부에서 이뤄지는 검수는 속도가 느려 현재 검수를 대기 중인 화차의 숫자만 600~700량에 달한다. 앞서의 고객사 관계자는 “화차가 부족해서 전용열차가 못 움직인 경우도 있었다. 사고가 나든 파업을 하든 즉각적으로 정상화해줘야 하는데 화차도 부족하고 인력 투입도 안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고객사들이 직접 비용을 투입해 제작하는 사유화차 역시 줄어들 전망이다. 사유화차 1량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은 약 1억 6000만 원 정도로 코레일은 화차를 제작해 준 고객사들의 투자비 보전을 위해 적정 할인율을 제공하고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할인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유가 연동으로 운임료 책정 기준이 불명확해지면서 코레일은 적정 할인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미 내용 연수가 지나 지난해 54량의 사유화차가 폐차됐고 올해에 이어 내년에 대거 폐차가 이어질 예정이라는 점이다. 화차를 만들려면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벌써 제작에 들어갔어야 한다. 올해 연말까지 수송 조건 협의가 완료되지 않으면 화차 부족 현상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코레일 관계자는 “한 번에 화차를 길게 연결해 수송력을 높이고 향후 의왕 ICD 같은 복합화물터미널과 생활물류시설 등을 활성화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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