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입소문 타고 역주행 기세↑…‘변호인’ ‘택시운전사’ 잇는 새 근현대사 천만 영화 가능성도
11월 22일 개봉해 개봉 3주차를 맞은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4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4일차에 100만 돌파를 시작으로 6일차 200만 돌파, 10일차 300만 돌파, 12일차 400만 등 약 이틀 간격으로 기록을 경신 중이다. 특히 개봉 3주차에 2주차 대비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역주행'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46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순조로운 흥행이 계속 이어진다면 올 겨울 또 다른 대작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노량: 죽음의 바다'와 더불어 쌍으로 천만 고지를 내다볼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과 군의 정치개입을 막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의 충돌을 메인으로 하는 이 영화는 역사를 직접 겪은 기성세대는 물론, 구전으로만 전해 들은 MZ세대까지 사로잡으며 '분노의 N차 관람(같은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 관람하는 것)' 챌린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채로 관람을 마친 뒤 분노로 인해 스트레스와 심박수 수치가 어느 정도로 치솟았는지를 SNS에 공유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세대들의 주목을 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관객들의 비선호 장르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근현대사 배경 시대극에 특히 1020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새롭게 모이면서 이런 분노 챌린지 외 관람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 근현대사 배경 영화 정주행 챌린지'다. '서울의 봄' 흥행 후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한국 근현대사 배경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각 시대순대로 정주행하면서 생긴 자발적인 챌린지 콘텐츠를 가리킨다. 1950년을 배경으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국제시장'(1955년) '효자동 이발사'(1960년대), '실미도'(1968년), '킹메이커'(1970년), '서울의 봄'·'남산의 부장들'(1979년), '화려한 휴가'·'택시운전사'(1980년), '변호인'·'헌트'(1980년대 초), '1987'(1987년) 등 작품에서 이처럼 '정주행 같은 역주행' 관람이 이어졌다.
영화계에서는 '서울의 봄'의 의외의 선전으로 오랜만에 근현대사 영화의 '천만 기록'이 나올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 천만을 달성한다면 비슷한 시기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변호인'(2013), '택시운전사'(2017)에 이어 6년 만에 시대극이 천만 고지를 탈환하게 된다. 코로나19 시국을 겪으며 블록버스터 액션이나 코미디, 대형 프랜차이즈의 영화 시리즈 등 '보장된 흥행성'을 갖춘 작품들만이 흥행 싹쓸이를 해왔던 최근 극장가 상황을 본다면 '서울의 봄'의 약진은 괄목할 만한 변화인 셈이다.
이처럼 전세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데엔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공기를 담아보자"라는 목표 하에 촬영, 조명, 미술 등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베테랑 스태프들이 작품에 온전히 쏟아부은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감기' '아수라'에 이어 '서울의 봄'으로 김성수 감독과 재회한 이모개 촬영감독은 집요하면서도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1979년 12월 12일, 그날의 현장과 인물을 담아냈다.
그는 "김성수 감독님이 다른 영화 때와 달리 참고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감독님 머리 속에 생생하게 있는 '그날로 가보자'는 말씀이 곧 촬영 콘셉트였다"라며 "배우들이 화면을 꽉 채운 장면도 각자가 다른 무엇을 하고 있다. 리허설을 하고 배우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와 동선을 정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는데 '서울의 봄'은 인물이 많아서 더 효과적이었다. 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감독님의 원칙 하에 감정선이 중요할 때엔 집요하게 인물에 따라붙었다"며 대치 장면과 총격전 등 대규모 스케일에서도 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은 촬영 비하인드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김성수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이성환 조명 감독은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조명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배경에 실제 있는 광원을 찾으려고 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나 서치라이트, 경광등, 가로등 같은 빛을 활용해서 리얼함을 더했다"라며 "전두광은 빛을 잘 사용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숨고 싶을 때는 어둠 속으로, 대중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빛을 즐기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태신의 얼굴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썼다는 그는 "이태신의 얼굴, 그의 고단함과 외로움, 혼란 등의 감정을 빛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서치라이트가 수도 없이 그를 때린다. 그렇게 맞아도 포기하지 않는 이태신의 근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시대의 리얼리티와 인물의 대비가 확실히 드러나게 구성된 라이팅 작업의 비하인드를 전했다.
'지구를 지켜라!' '승리호' '아수라' 등으로 독보적인 세계와 진득한 리얼리티가 담긴 프로덕션 디자인을 보여준 장근영 미술감독은 "12·12 군사반란 직후의 13일 새벽, 광화문 광장과 서울 시내를 다큐멘터리로 찍은 옛 영상 자료를 봤다. 서울 도심에 탱크가 들어와 있고, 지금의 서울과 달리 공기가 무겁고 묵직한 분위기를 느꼈다"며 "이를 메타포로 '그날의 공기'를 제안했고, 이후 '서울의 봄'의 비주얼 컨셉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육군본부 B2 벙커, 반란군의 본부인 30경비단, 보안사와 수경사, 특전사령관실 등 리얼함이 살아있는 공간을 완성시켰다.
김성수 감독은 "이들은 진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하면 영화의 신경 조직을 이해하고 영화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저희가 얼마나 한국영화를 발전시키고 연구하는지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이들과 함께 작업을 했던 소감과 노고에 감사를 함께 전했다.
한편 '서울의 봄'은 500만 관객 동원을 기념하며 1979년 12월 12일, 긴박한 현장 속에 있던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스페셜 포스터를 추가로 공개했다. 공개된 포스터는 흑백 배경 속 황정민부터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까지 반란군과 진압군으로 대립하고 있는 이들의 강렬한 눈빛과 분위기를 한 장에 담아냈다. 나라를 삼키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대한민국의 운명을 두고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이 한 데 모인 모습은 1979년 군사반란 속에 있던 인물들을 직접 눈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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