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거란전쟁’ 양규 장군으로 인생 캐릭터 갱신…명품 조연서 ‘믿보’ 주연 등극, 연말 수상 기대 ‘업’
지승현이 연기한 양규는 제2차 여요전쟁(고려거란전쟁) 때 최전선에서 맹활약하며 고려의 멸망을 막아낸 용장이다. ‘고려거란전쟁’ 방영 초반 큰 화제를 낳았던 흥화진 전투에서 40만 거란 대군을 3000명 남짓의 고려군으로 막아낸 것을 시작으로 그가 전사한 마지막 전투까지 거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제3차 여요전쟁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위인으로 알려져 있다. 강감찬이나 서희 등 비슷한 시기 활약한 유명 위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으나 이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양규→강감찬→현종’ 순으로 전장의 영웅들이 쌓아 올린 서사가 어떻게 성군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지 순차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런 만큼 서사 초반을 책임지는 양규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거란전쟁’ 직전 지승현은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MBC 금토 드라마 ‘연인’에서 여주인공 길채의 남편 구원무 역을 맡아 비중 있는 연기를 선보였으나, 장르상 대체역사극이기 때문에 ‘고려거란전쟁’이 그의 첫 정통 사극 주연 도전작이 된 셈이었다. 방영 전 지승현이 양규 역을 맡아 활약한다는 정보가 공개됐을 때 그가 이제까지 정통 사극에서 메인 주연급을 맡아본 적 없다는 점이 지적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뚜껑이 열리기가 무섭게 사그라졌다. 1~2화 동안 빠르게 이뤄진 목종(백성현 분)과 천추태후(이민영 분)의 대립과 최후를 디딤돌 삼아 곧바로 제2차 여요전쟁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양규에게 온전히 초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실제로 ‘고려거란전쟁’ 제작발표회에서 김한솔 감독은 “전쟁 담당으로 말씀드리지만 최수종 장군님 보러 왔다가 지승현 장군님 주워갈 거다”라며 지승현의 연기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흥화진 전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지승현이 연기한 양규의 활약을 보고 네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는 비화도 덧붙였다.
그의 자신감대로 시청자들은 흥화진 전투 시작부터 지금까지 ‘양규 홀릭’이다. 양규가 선봉에 나섰던 흥화진 전투를 다룬 5회부터 7회가 방영되는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와 X(구 트위터) 등 SNS에서 양규의 활약상을 편집한 영상 콘텐츠는 사극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1020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 정도였다.
인물의 영웅적인 면모도 그렇지만 이만한 인기와 열기엔 배우 지승현의 열연이 큰 몫을 해냈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배우 자신뿐 아니라 그를 10여 년 동안 꾸준히 지켜봐 온 팬들에겐 지금의 상황이 더욱 값지게 다가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고려거란전쟁’ 양규로 인생 캐릭터를 갱신한 그가 이번에야말로 연기대상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행복한 꿈도 꿔볼 법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같은 명품 조연으로 활약해 온 지승현의 이름을 대중에게 처음 각인시킨 작품은 역시 영화 ‘바람’(2009)일 것이다. 일진을 주제로 한 배우 정우의 자전적인 성장 영화인 이 작품에서 지승현은 정우의 로망 그 자체인 ‘일진 짱’ 선배 김정완 역을 맡았다. 후배를 위한 전면전 선봉에 서서 상대편 ‘짱’에게 여유롭게 대결을 요청한 뒤, 대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 “끄지라”(꺼져라)라고 받아친 대사가 지금까지도 명대사로 꼽힐 정도로 짧은 출연이었지만 커다란 임팩트를 남겼었다.
드라마로 그를 기억하는 대중에겐 무엇보다 KBS2 ‘태양의 후예’(2016)의 북한군 안정준 상위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유시진(송중기 분)과 남북 분단 관계를 넘어선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준 안정준을 연기하며 지승현은 2007년 데뷔 후 처음으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주목 받을 때나 무명 배우로 살 때나 달라진 것은 없다. 제 인기는 곧 사그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평소처럼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배우로서의 인기와 맡는 역할의 비중 어느 쪽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지승현은 그만큼 어떤 작품에서든 열혈 활동을 펼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07년부터 연기만 할 수 있다면 딱 한 신만 나오는 단역 중의 단역이라도 무조건 기회를 쥐어 잡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연기를 향한 열정만으로 10년 무명을 버텨냈다는 그는 거의 매년 최소 2개 이상의 작품에서 활약하며 연예관계자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차근차근 그의 존재를 알려 왔다. 그 결과 누아르부터 코미디, 스릴러, 액션, 로맨스까지 장르 불문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갖춘 보기 드문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정통 사극까지 가능한 배우로 공식 인증을 받은 만큼 앞으로 더욱 풍부해진 그의 활약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지승현은 2023년 올 한 해 동안만 지상파 3사와 OTT를 넘나들며 작품을 선보여 주목 받기도 했다. 디즈니 플러스(+) ‘형사록 시즌2’와 ‘최악의 악’, MBC ‘연인’, SBS ‘7인의 탈출’(특별출연), KBS2 ‘고려거란전쟁’ 등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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