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용적률’ 예고 불구 현장은 냉랭…“총선용 아니냐” 경계 눈초리도
윤 대통령 일행은 건물 여기저기 금이 가고 물이 샌 흔적, 상시 주차난에 시달리는 지하주차장 등 낡은 아파트의 내외부를 살폈다. 윤 대통령은 “신속하게 재건축이 이뤄지도록 지원하겠다”면서 “오는 4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앞서 주민이 원하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방향을 청취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 승부수를 꼽자면 단연 노후 신도시에 대한 재건축 특례 지원이다. 준공한 지 20년 이상 경과된 100만㎡ 이상 택지에 용적률 상향, 안전진단 면제·완화 등 각종 혜택을 부여해 재건축 추진 속도를 크게 높여주겠다는 방침이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수도권 5개 1기 신도시뿐 아니라 인천 연수, 부산 해운대, 대전 둔산 등 전국 51개 지역, 총 100만여 세대 노후 아파트가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세권 등 일부 지역에는 최대 500%의 용적률이 허용된다. 현재 1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은 188% 수준으로, 정부 방침대로 적용만 된다면 상당한 층수 상향 효과를 볼 수 있다.
수혜 지역의 규모나 수위만 보면 역대 어느 노후 신도시 재정비 정책에 비해 파격적이다. 그만큼 올해 부동산 시장을 설명할 핵심 이슈에서 빠질 수 없다. 그런데 현장에서 감지되는 파급력은 미지근하다 못해 냉랭할 정도다. 얼어붙은 주택·건설 경기 속에 정부의 분주한 정책 ‘바람몰이’도 썩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주택 거래 시장이 전반적으로 관망세에 빠지며 거래량이 얼어붙었고, 때문에 매매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최근 시장 흐름이 당분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동산R114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새해 1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1% 떨어지며 4주째 이어진 보합세를 깨고 하락 전환했다. 가격 하락은 영등포구·강서구·노원구 등 노후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수도권 1기 신도시 중에는 평촌이 0.04% 하락했고, 산본과 일산을 품은 군포와 고양이 각각 0.01% 하락했다.
이러한 장세는 시장 침체가 뚜렷해진 지난해 말부터 예견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난해 11월 말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를 통과했을 당시 낸 논평에서 “주택 거래 시장이 계절적 비수기인 겨울에 접어들어 숨을 고르고 있다”며 “특별법 제정만으로 단기 주택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는 제한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현재 나타나는 재건축 열기 침체는 분당과 같은 이른바 ‘리딩 지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높은 금리, 치솟은 건설 물가에 재건축 사업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인식이 대부분 노후 신도시에 넓게 퍼져 있다. 자연스레 '특별법 효과'에 대한 기대도 저조한 편이다.
김성훈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분당구지회장은 ‘일요신문i’와 통화에서 “금리나 전반적인 경제 조건이 불투명한데, 이것이 더 큰 요인이기 때문에 이번 노후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 이슈는 지역 주택 가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다”면서 “특별법도 아직 가시적으로 현실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의 심리는 특별법이 시행되더라도 재건축까지 10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신승만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일산서구지회장은 “현 정부 출범 때부터 1기 신도시 재건축 지원 얘기가 있었는데 일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물 거래가 잘 안 된 편”이라면서 “부동산은 어떤 큰 이슈도 중요하지만 가격 사이클이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은 (가격이) 가라앉는 시기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별 단지들 입장에서는 재건축 사업비용이나 추가부담금 등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 보기엔 아직 정보가 많이 부족한 어려움도 있다. 정부가 큰 폭의 용적률 상향 혜택을 예고했지만 같은 신도시 안에서도 개별 단지에 따라 혜택을 다르게 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직 구체적인 수준을 추정할 만한 근거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4월에 시행령을 발표한 뒤에도 결국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구체적인 정비계획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최대 500% 용적률’ 혜택도 초역세권이나 중심상권 인근 등 극히 일부 구역에만 적용 가능할 것이란 시선도 많다. 군포 산본신도시의 한 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장 A 씨는 “특별법에 대해 기본적인 기대는 계속 갖고 있다”면서도 “어떤 기준으로 용적률을 500%까지 적용하고, 각 구역에 어떻게 정해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용적률 상향을 통한 일반분양 물량 확보 인센티브가 각 단지별로 얼마나 적용될지 아직 미정이어서 막연하게 미래 시세 가치를 예상하는 것은 주의해야 할 시기”라면서 “기존 소유주들이 추가 공사비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 그 자금 여력이 관건으로, 그에 따라 지역 간 양극화가 심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가 올 하반기에 5개 1기 신도시에 1곳씩 지정하기로 한 ‘선도지구’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말이 무성하다. 현재 1기 신도시는 준공 후 30년 이상 된 아파트 단지가 150개를 웃도는데, 아파트 단지 몇 개씩 묶어 선도지구로 지정해 봐야 전체의 약 10% 정도만 포함되고 나머지는 또 세월만 보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경기도의회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심홍순 경기도의원(국민의힘)은 “선도지구 수가 너무 적다는 목소리에 공감한다”면서 “일산신도시의 경우 일산서구와 일산동구가 모두 들어가 있는데 선도지구를 1곳만 지정하는 것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1기 신도시의 한 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장 B 씨는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노후신도시 특별법에 대해 약간 의심을 하고 있다”면서 “정말 신도시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총선용 생색내기’로 하려는 것인지, 향후 정책이 어떻게 나오는지 세부 사항을 좀 봐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특별법 적용 대상으로 함께 거론되는 비수도권 노후 신도시들은 분위기가 더 안 좋다. 총 27개 노후 아파트 밀집 지역이 해당되는데, 전문가들은 비수도권의 집값 하락세가 더 뚜렷할 경우 재건축 사업성 확보도 훨씬 어려울 것으로 진단한다.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재건축을 하려면 사업성이 나와야 하는데 인근 단지들의 매매 가격이 상승하지 않으면 해당 단지들은 재건축을 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면 재건축을 추진하지 않는 단지들이 결국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 “지금 정부가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대응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 먹혀드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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