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 예산 대폭 삭감에 “고통 피부로 느껴”…정책·지원도 걸음마 수준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도 CES2024에 달려갔다. 특히 미래 ‘먹거리 분야’ 사업 구상에 대한 관심이 돋보였다. 그동안 CES에는 IT‧전자업계 오너 경영자들이 주로 발걸음했다면 올해는 유통‧식품가 차세대 리더들이 대거 현장을 찾아 시선을 끌어당겼다.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김동선 한화로보틱스 부사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 상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푸드테크’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CES 현장에선 우리 푸드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탑테이블’은 4차원 푸드프린팅 시스템을 선보여 음식과 농업기술 부문 최고혁신상, 스마트홈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미드바르’는 세계 최초 공기주입식 스마트팜 모듈을 출품해 역시 최고혁신상을 받는 쾌거를 달성했다.
미국의 미래학자 겸 CTA(소비자기술협회) 디렉터인 브라이언 코미스키는 CES2024 미디어 투어에 앞서 올해 CES의 기술 트렌드를 크게 인공지능 기술, 디지털 헬스, 푸드테크 등 크게 3가지로 요약했다. 그만큼 푸드테크는 전 세계의 공통의 관심사이자 미래 먹거리로 각광 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푸드테크 산업의 시장 규모는 5542억 달러(약 743조 원)로 추정된다. 국내 시장은 2020년 기준 61조 원 규모로 2017년부터 연평균 31.4%의 고성장을 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온라인 식품거래, 케어푸드 등 특정 분야만을 고려해 추산한 것으로 국내 전체 식품 산업 규모를 고려하면 적어도 600조 이상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푸드테크 업계에서는 국내 푸드테크 기술이 ‘전 세계 넘버 원(No.1)’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렇다고 앞길에 ‘꽃길’이 열린 것으로 자신하지는 못 한다. 줄어든 R&D 예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가 R&D 예산이 4조 원 넘게 삭감된 것이 푸드테크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련 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시기에 연구 예산 삭감은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타격이 크다.
푸드테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세부 특정 분야에 쏠려있거나 관련 법‧제도가 미비한 문제도 커 기술력이 일반에 상용화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마디로 기술은 '달리고' 있는데 정부의 지원이나 제도 마련은 여전히 '걷고' 있다는 얘기다.
푸드테크는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식품 산업의 생산성, 효율성, 안전성, 지속가능성 등을 4차 산업기술을 적용해 개선하고 이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을 뜻한다. 식재료를 기르고 식품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유통, 외식, 음식물쓰레기 처리 등 전 분야에 걸쳐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공학, 생물공학, 자동화 기술 등이 적용돼 발전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외식 산업에서 활용되는 키오스크(무인 정보단말기), 서빙 로봇, 음식 제조 로봇 등으로 알려진 분야이기도 하다.
푸드테크는 인구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발생된 식품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푸드테크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식품 소비 트렌드가 건강과 환경 중시의 가치소비로 확산되고 개인 맞춤형 소비, 비대면 소비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고성장이 전망되는 산업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 이기원 한국푸드테크협의회 회장(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은 “식품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이를 예측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푸드테크”라며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첨단기술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푸드테크의 중요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는 있다. 정부는 2022년 12월 ‘푸드테크 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1000억 원 규모의 푸드테크 전용 펀드 조성 △푸드테크 융합 연구지원센터 구축 △푸드테크기업 인증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발전방안 발표 당시 양주필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푸드테크는 정보통신, 인공지능, 로봇 등에서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되며 관련 장비 산업까지 해외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2027년까지 푸드테크 유니콘 기업 30개 육성, 푸드테크 수출액 20억 달성을 목표로 발전방안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2021년 ‘푸드테크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고 지난 15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푸드테크 산업 육성에 비교적 빠르게 나선 축에 속한다며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최근 R&D 예산 삭감을 '피부'로 느낀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터져 나온다. 국회는 지난달 21일 ‘2024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의결‧확정했는데 R&D 예산이 전년 대비 4조 6000억 원(14.7%) 감액된 규모로 정해졌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 현장에서 예산 삭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데 푸드테크 분야도 마찬가지다. CES2024에서 4차원 푸드프린팅 시스템으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탑테이블’의 유현주 대표는 “R&D 국가 예산 삭감으로 현장에서는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수준”이라며 “이미 국가 선정 과제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들도 과제비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연락을 받아 난감한 상황이란 얘길 많이 들었다. 푸드테크 산업이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푸드테크 산업이 연관 분야 산업들과 유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연구와 창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협동로봇 전문업체 ‘뉴로메카’의 박종훈 대표는 “로봇‧자동화 관련 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은 기존에 잘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를 유지‧보수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연관 서비스 업체들에 대한 발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로봇 연관 산업에 대한 청년 창업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기술 인증 제도와 같은 측면에서도 개선의 요구가 나온다. 푸드테크가 신산업 분야인 특성상 관련 정책이나 법 체계, 인증 제도 등이 아직 미비하다 보니 연구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에도 힘이 실린다. 유현주 탑테이블 대표는 “개발 후 인증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새로운 기술이다 보니 적합한 규정이 없어서 규제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며 “시간이 비용이고 경쟁력인데 전도유망한 푸드테크 기술들이 현장에 도입될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 제도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업의 세부 분야는 달라도 정부 차원의 정책 기반이 미비한 부분에는 공통적으로 불만이 표출된다. 급식소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의 양과 종류를 3D스캔 기술을 활용해 분석, 음식물 쓰레기가 절감되도록 돕는 ‘누비스캐너’ 개발기업 누비랩의 김대훈 대표는 “우리나라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식을 중점적으로 정책이 시행돼 왔고 발생 단계부터 관리하는 정책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한 때”라고 호소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푸드테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함께 소통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협의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기원 회장은 “지금 우리가 보유한 기술들이 분야에 따라 별도 영역으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농식품, 유통, 제조 전부 개별 기업들이 따로 개발하고 사업을 시행하다 보니 연계가 안 되고 글로벌 진출도 각자도생으로 하고 있는데, 협의체나 협력기관을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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