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진서 응씨배 우승 5억 원대 상금 획득…단체전은 농심신라면배 대표적, 우승국이 5억 독식
#대만 부호 잉창치 1988년 응씨배 창설
상금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국내외 바둑대회들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세계대회 쪽을 보면 1988년 창설된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가 상금 액수로도 전통으로도 첫손에 꼽힌다. 응씨배는 대만의 부호이자 열렬한 바둑 애호가인 잉창치(應昌期) 씨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40만 달러(약 5억 3000만 원)라는 우승 상금을 걸고 창설한 본격 세계 기전이다.
당시 한·중·일에는 아직 세계대회가 없었는데 응씨배 창설 움직임을 보고 바둑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일본이 서둘러 전자회사 후지쯔의 후원을 받아 후지쯔배를 만들면서 최초의 세계바둑대회라는 타이틀을 가져갔다. 그러나 후지쯔배가 2011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응씨배가 가장 전통 있는 세계바둑대회가 됐다. 단 응씨배는 4년에 한 번 열린다는 희소성과 아쉬움을 동시에 갖는 기전이기도 하다.
응씨배 다음으로는 중국 주최의 몽백합배와 란커배가 랭킹 2위군을 형성하고 있다. 두 대회의 우승상금은 각각 180만 위안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억 3000만 원이다.
중국의 세계바둑대회는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연륜이 짧은 편이다. 이유는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늦어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세계바둑대회는 먼저 만들어진 후지쯔배나 삼성화재배, LG배 세계기왕전 등을 모델로 삼은 경우가 많아 3억 원 언저리의 우승상금이 걸린 대회가 대부분이다. 바이링배, 신아오배, 천부배 등도 비슷한 규모로 열렸지만 최근엔 중단된 상태다.
단체전으로는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 대표적인 기전으로 꼽힌다. 농심신라면배는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대표기사 5명이 겨루는 단체전이라 개인전과는 성격이 다른 기전이다. 우승국에는 5억 원의 상금이 주어지지만, 2위와 3위에겐 대국료 외에는 한푼도 지급되지 않는 냉정한(?) 기전이기도 하다.
과거 후지쯔배, 도요타덴소배 등을 열었던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실력으로 밀리면서 세계대회 개최도 자취를 감췄다. 최초의 세계대회라던 후지쯔배는 1997년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우승한 이후 마지막 2011년 제24회 대회까지 끝내 일본인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2002년 창설됐던 도요타덴소배 역시 마찬가지. 4회를 이어갔지만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중국 구리 9단이 돌아가며 우승했을 뿐, 일본 기사의 우승은 없었다. 기전의 중단 이유가 꼭 일본 기사들의 부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자국 기사들의 부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국내 기전은 축소되는 경향
자국 내 기전은 아직도 일본이 월등하다. 일본 기성전의 우승 상금은 4300만 엔(약 3억 9000만 원)이고 명인전은 3000만 엔(약 2억 7000만 원)이다. 웬만한 세계대회 상금을 능가하는 기전을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내 기전 역시 우려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기성전과 명인전과 함께 ‘3대 기전’이라 불렸던 본인방전의 상금 규모가 올해부터 3분의 1로 대폭 삭감돼(우승상금이 2800만 엔에서 850만 엔으로 축소됐다) 충격을 줬다. 또 기성전도 4500만 엔에서 4300만 엔으로, 명인전 역시 3700만 엔에서 3000만 엔으로 축소돼 위기의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는 중이다.
실력파 기사들의 층이 한·중·일 중 가장 두텁다고 평가받는 중국은 자국 내 기전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현재 중국에선 여자기전 포함 약 20개의 대회가 해마다 열린다. 이 중 왕중왕전과 기성전의 상금이 80만 위안(약 1억 5000만 원)으로 가장 큰 권위를 갖고 있고 대기사전(50만 위안), 창기배(45만 위안), 명인전(40만 위안), 천원전(40만 위안)이 뒤를 잇고 있다. 2000년 이후 약진한 중국 바둑의 저력은 이런 기전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최근 우리나라의 국내 프로바둑대회는 그 수가 줄거나 규모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현재 모든 기사들이 참가할 수 있는 종합기전은 5, 6개에 불과한 실정. 1980~1990년대 15개 이상을 헤아리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중 GS칼텍스배와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이 우승상금 7000만 원으로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일본은 둘째 치고 중국 최상위 기전의 절반에 불과한 규모다. 한국기원은 국내 바둑대회들이 한국바둑리그, 여자바둑리그, 시니어바둑리그 등 단체전으로 확장된 탓이라고 강변하지만 바둑만이 지니고 있는 승부의 매력인 ‘도전기’ ‘번기(番棋) 승부’ ‘타이틀매치’ 등을 찾아보기 어려워 아쉽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중견 프로기사는 “무엇보다 기사들이 가질 수 있는 파이가 커져야 우수 선수 발굴 및 육성, 경기력 향상, 바둑 인구 저변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 법인데, 현 상황에서는 우수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우리 바둑이 세계 정상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바둑시장이 지금보다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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