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법인 실적 하락세 속 북미시장 돌파구 가능성…LG생활건강 “사업 구조 재정비하고 성장 기회 모색”
#더 에이본 컴퍼니에 쏠리는 눈
에이본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고 지난해에는 화장품 공급 거래선과의 계약도 마무리 지으면서 LG생활건강 내부에서는 청산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본사 직원들이 직접 파견되는 등 최근 분위기가 돌연 바뀌고 있다. LG생활건강 내부 관계자는 “미국에서 실적이 나와줘야 하고 덩치가 큰 회사다보니 본사 차원에서 에이본을 소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거 같다”라고 귀띔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8월 북미 시장 교두보로 삼기 위해 130년 전통의 미국 화장품 브랜드인 에이본을 1억 2500만 달러를 투자해 100% 인수했다. 그러나 에이본의 실적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2022년 총포괄손익에서 적자를 기록한 에이본은 2023년에도 352억 원 규모의 손실을 냈다. 매출 역시 2022년 3790억 원에서 2023년 3251억 원으로 14%가량 하락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에이본의 영업권에 대해 전액 손상차손 처리한 LG생활건강은 2023년 297억 원의 손상차손을 추가로 인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에이본의 캐나다 법인 매출 역시 849억 원에서 774억 원으로 줄었고 총포괄손실은 100억 원에서 379억 원으로 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더 에이본 컴퍼니 매출 비중의 80%가 사양산업으로 꼽히는 방문판매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에이본은 온라인 홈페이지와 소책자 등을 통해 상품을 판매원에게 소개하고 판매원이 이를 주문해 일반 소비자에게 재판매하는 형태의 사업 구조를 고집하고 있다. 판매원과 고객 모두 고령층에 가깝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의 LG생활건강 내부 관계자는 “다른 리테일 채널을 빨리 찾아야 한다. 그룹 지주사인 (주)LG에서도 실적이 안 나오니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올해 안에 개선되는 추이를 보여주지 못하면 연말쯤 사업 중단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유통 채널을 전환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법인 파견 경험이 있는 한 LG생활건강 직원은 “아마존 등 다른 전국유통망에 진입하려 해도 브랜드 경쟁력이 약하다.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보려고 해도 품질관리 기준에 대한 에이본 임원들 눈높이가 높아서 단가가 안 맞는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화장품 소싱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공급 거래선과의 계약을 끝내면서 신규 공급 거래선을 뚫는 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품(여러 사유로 인해 정해진 수량에서 부족하거나 빠진 상품)이 늘어나면서 현지에서는 적자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미에서 돌파구 만들어낼 수 있을까
최근 LG생활건강의 실적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LG생활건강의 2023년 매출은 6조 8048억 원으로 2022년 7조 1858억 원보다 5%가량 줄었다. 영업이익은 4870억 원으로 2022년 7111억 원에 비해 32%나 감소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뷰티 부문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2조 8157억 원과 1465억 원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는 각각 전년 대비 12%, 53%가량 감소한 수치다.
가장 비중이 큰 중국법인 매출이 7241억 원으로 2022년에 비해 20%가량 감소했다. 일본과 유럽 매출도 3767억 원과 567억 원에 그치면서 각각 9%, 14% 줄었다. 특히 4분기로 갈수록 매출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우려를 키웠다.
반면 북미 시장에서는 약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LG생활건강의 북미법인들은 총 641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1% 성장했다. 2022년 중반에 인수한 더크렘샵 매출이 합산되면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해외 지역별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3%에서 11%로 감소한 반면 북미 시장 비중은 8%에서 9%로 증가했다.
더크렘샵은 선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더 크렘샵은 중국과 한국에서 제품을 소싱해 미국 내 주요 유통채널을 중심으로 판매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23년 136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188% 성장했다. 당기순이익도 312억 원으로 같은 기간과 비교해 215% 증가했다.
LG생활건강이 에이본의 실적 회복에 힘을 쏟는 것도 전체 해외법인의 실적이 하락세인 가운데 북미 시장 비중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에게 미국 시장은 특히 중요하다. 다른 나라들과 시장 규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을 못 뚫으면 성장이 어려운데 중국에서 힘을 못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장품업계 다른 관계자 또한 “요새는 다들 중국 시장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워낙 변수가 많고 인구도 많으니까 아예 놓아버리지는 않고 있지만 미국이나 동남아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열기가 덜하다”라고 말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융합대학원장은 “지금 당장 뚜렷한 돌파구가 없기 때문에 부진 사업체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로컬 브랜드들 때문에 중저가 시장에서도 쉽지가 않다”며 “에이본은 그나마 미국에서 전통과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고 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현재 유통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역량 강화 등 에이본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북미 시장은 중장기 관점에서 중요한 시장으로, 기존 M&A로 확보한 인프라를 활용해 현지 시장 상황과 고객 특성에 맞는 제품과 브랜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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