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등 전국 개발 예정지 노린 거래 기승…“허가제 부활 현실성 없지만 적절한 제한 조치 필요”
토지거래허가구역에 속하는 땅을 허가 없이 무단으로 사들인 외국인들도 적발되고 있다. 중국인 C 씨는 경기 안양시에 있는 군사시설보호구역 내 임야를 토지취득허가 절차 없이 사들였다가 지난해 하반기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에 적발됐다. 조사 결과 C 씨는 해당 토지 인근 군부대가 이전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개발 시세차익을 노려 투기성 매수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C 씨처럼 토지취득허가를 받지 않고 군사시설보호구역 내 땅을 매수했다가 지난해 경기도에 적발된 외국인은 총 43명, 이들의 거래액은 총 73억 원에 달했다.
외국인들의 국내 토지 매수 거래가 매년 2000건 이상 나오는 가운데 신도시 등 개발호재를 노린 투기성 거래나 각종 위법·탈법 거래도 기승을 부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2017~2022년 전국에서 이뤄진 1만 4938건의 외국인 토지거래를 전수조사한 결과 모두 437건의 위법의심거래를 적발했다. 위법행위 유형으로는 △토지취득을 위한 해외현금 불법반입 △거래금액 허위신고 △명의신탁 △편법증여 등이 있다.
적발 건을 국적별로 보면 중국인(56.1%)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미국인(21%) △대만인(8%) △캐나다인(6.6%) 순이었다. 위법의심거래가 이뤄진 지역은 △경기(40.7%) △충남(14%) △제주(12.2%) 순으로 많았다.
외국인의 투기성 토지 매수는 3기 신도시 등 개발 예정지나 그 주변에서도 종종 포착된다. ‘광명시흥신도시’ 예정지인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서는 2021년 중국인과 캐나다인, 두 명의 외국인이 농지를 사들인 것이 한 시민단체 조사에 포착돼 투기 의심을 샀다. 하남 ‘교산신도시’ 예정지 인근에서도 한 미국인이 신도시 지정 직전 기획부동산을 끼고 임야를 사들인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사들인 국내 토지 면적이 총 2억 6547만㎡(2023년 6월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90배 규모로, 전체 땅값은 공시지가 기준 총 33조 2046억 원에 이른다.
부동산 업계에선 외국인들이 주로 장기적으로 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이나 산업시설투자가 집중되는 지역, 자국 국적 노동자가 밀집해 거주하는 지역, 서울을 잇는 교통망이 양호한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들의 국내 주택 매수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편이지만 토지 매수는 전국적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우려는 갈수록 치솟고 있지만 이들의 거래 행위를 막을 방도는 마땅히 없는 상태다. 현행법상 외국인은 내국인처럼 규모나 목적의 관계없이 신고만으로 토지 취득이 가능하다. 과거 허가제를 통해 규제했던 외국인 부동산 취득은 토지시장 개방과 IMF 외환위기 등을 계기로 1998년 신고제로 전환한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내국인에게는 적용되지만 외국인에겐 열려 있던 특수구역 토지거래도 최근에 와서야 동등하게 제한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외국인이 국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나 문화재보호구역, 생태·경관보전지역 등에 있는 토지를 취득하려면 내국인처럼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무분별한 국내 부동산 취득을 막을 현실적 방안으로 ‘상호주의’ 도입을 꼽는다. 현재 중국과 캐나다, 싱가포르, 호주 등 해외 여러 나라는 외국인을 상대로 △주택 매입 금지 조치 △구입 허가제 △취득세 추가 등 각종 규제를 두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지난해 15개 주가 중국인 등 외국인의 토지 보유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한 데 이어 올해 20개 주가 추가로 제정에 나설 예정이다.
우리 국회에서는 2020년 국가 간 ‘상호주의’를 강화하는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법안을 발의한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7일 ‘일요신문i’에 “외국인이 국내 산업단지나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유치해야겠지만 특히 중국인들의 경우 산업적 투자보다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토지)을 매수하는 경향이 있어 상호주의에 근거해 이를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 문제에 대해 다소 뭉그적거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다시 논의를 하기엔 국회 상황상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국회 내부에선 외국인을 상대로 부동산 거래 허가제를 부활시키는 카드는 현실성이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다만 비거주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을 적절히 제한하는 조치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 관련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모든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에 대해 일률적으로 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역시 상호주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비거주 외국인의 투기성 부동산 취득을 규제하는 방안은 필요하지만 그 규제의 정도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 등 관계당국에서는 외국인의 위법적 부동산 거래행위를 원활히 단속하기 위해 해당 외국인의 국내 거주 여부나 실질 거주지, 가족관계 등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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