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뒤집혀 최 회장 완패, ‘세기의 이혼’ SK 지배구조 흔들…대법원 상고심 대응에 ‘올인’
#1심과 2심 무엇이 달라졌나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5월 30일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로 1조 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 액수는 지금껏 알려진 중에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관장이 SK그룹의 자산 형성 과정에 기여한 부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재산분할액이 대폭 늘었다. 30년이 넘는 혼인기간과 재산의 생성 시점 및 형성과정 등에 비추어 볼 때, SK(주)의 주식 및 재산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가 인정돼 부부공동재산에 해당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SK그룹 지주사인 SK(주) 주식을 비롯한 최 회장의 재산은 혼인 기간 중 취득한 부부의 공동 재산으로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SK(주)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보아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 1심 판단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특유재산은 결혼 전 갖고 있던 재산을 말한다.
법원이 판단한 두 사람의 공동 재산 규모는 약 4조 115억 원이다. 이 가운데 65%를 최 회장, 나머지 35%를 노 관장 몫으로 산정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에게 재산분할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했다.
1심에서는 포함되지 않았거나 아예 판단조차 하지 않았던 부분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된 점도 눈에 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지출한 219억 원도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최 회장이 김 이사장에게 이체한 10억 8476만 원과, 학비 5억 3400만 원, 티앤씨재단 출연금 49억 9900만 원 그리고 김 이사장 가족에 대여해준 11억 원 등이 전부 분할 대상에 들어갔다.
또 1심과 달리 최 회장이 모친에게 상속받은 163억 8600만 원 상당의 예술품 740점, 2018년 최 회장이 친족에게 증여한 SK(주) 지분 약 1조 원도 새롭게 분할 대상에 들어갔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2심의 경우 완벽하게 노 관장이 승리한 재판이라고 분석했다. 법원이 소송 총비용의 상당부분을 최 회장이 부담하라고 한 것도 이런 분석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 2심은 소송 과정에서 초래된 인지대, 변호사비 등 일체의 비용을 최 회장이 70% 부담하라고 판단했다. 앞선 1심에서는 각자 부담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이 컸다”며 1심에서 1억 원이었던 위자료도 20억 원으로 대폭 늘렸다. 재판부는 최 회장을 향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혼인관계는 최 회장의 주된 책임으로 파탄됐다”며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 회장은 2019년 2월부터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
#'1.3조 어디서 마련할까' 관심
2심 재판부가 사실상 노 관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SK그룹의 지배구조가 달라질 가능성까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2심 판결이 SK그룹의 경영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 회장이 1조 30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현금으로 마련하기 위해 주식 매각에 나설 경우 지배구조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SK그룹 지배구조가 ‘최태원→SK(주)→SK이노베이션·SK스퀘어·SKC’로 이어진다.
2024년 3월 31일 기준 SK(주)의 최대주주는 17.73%를 보유한 최 회장이다. 5월 30일 종가 기준으로 약 2조 516억 원에 달한다. 지주사 외에도 SK디스커버리 0.12%(2만 1816주)와 우선주 3.11%(4만 2200주), SK케미칼 우선주 3.21%(6만 7971주), SK텔레콤 303주, SK스퀘어 196주와 비상장 주식인 SK실트론의 지분 29.4%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최 회장의 동생 최기원 이사장은 SK(주) 지분 6.58%를 보유하고 있으며 노 관장은 0.01%만 가지고 있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미 ‘소버린의 악몽’을 겪은 바 있는 최 회장이다. 소버린 사태는 2003년 8월 영국계 자산 운용사인 소버린이 SK그룹 경영권을 뺏으려 했던 사건이다. 당시 소버린은 SK(주) 지분율을 14.99%까지 끌어올려 SK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뒤 같은 해 11월 이사 후보를 추천하면서 최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SK(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은 가까스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최 회장이 가지고 있는 17.73%의 지분도 대주주로서 그리 안전한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유력한 방법은 보유 주식을 처분하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최대한 SK(주) 주식을 처분하지 않는 방식으로 SK그룹 경영권과는 무관한 SK실트론 지분부터 매각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최 회장은 2017년 SK(주)가 LG에서 실트론을 인수할 당시 개인적으로 지분을 인수했다. 인수 당시 지분 가치는 2600억 원이었지만 현재는 그 3배인 7500억 원이다. 다만 이를 모두 매각한다고 해도 재산분할 액수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째 대안은 SK(주)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주식담보대출은 통상 대출일 전날 종가의 40~70% 수준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미 SK(주) 보유 주식 중 767만 주를 담보로 4115억 원을 대출 받은 상태다. 따라서 비상장 주식 매각과 대출을 활용하고도 부족한 금액은 부동산 등 다른 자산을 매각해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 따라서 최 회장 측은 대법원 상고심 대응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두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88년 결혼했다. 현직 대통령 딸과 재벌그룹 아들의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의 존재를 알렸고 2017년 7월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노 관장은 이혼 요구를 거부하다 이후 최 회장을 상대로 3억 원의 위자료와 SK(주) 주식의 절반에 해당하는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법정에는 최 회장과 노 관장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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