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트렌드 변화 제대로 대처 못해…“명품 위주 벗어나 한국만의 매력 강조된 상품 개발 노력해야”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면세업계가 엔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실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액은 약 13조 원이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2019년 24조 원과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면세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지난 1분기 매출 8196억 원, 영업손실 28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8.7% 늘었지만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3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호텔신라의 올해 1분기 매출은 980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4%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121억 원으로 65% 감소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올해 1분기 매출 2405억 원, 영업손실 5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적자 폭을 100억 원 넘게 줄였지만 적자는 지속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2018년 11월 출범 이후 내리 분기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3분기에야 첫 분기 흑자 10억 원을 거두었지만 4분기 다시 손실을 낸 뒤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잘나가던 우리나라 면세업계가 어려워진 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면세업은 관광객·여행객의 수요에 민감한 업종인데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히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750만 명에서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252만 명으로 줄어들더니 2021년엔 97만 명으로 떨어졌다.
2022년 320만 명으로 반등해 지난해 1100만 명대를 회복했지만 그동안 변화한 트렌드에 면세업계가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중국에서 단체 관광객(유커)이 한꺼번에 들어와 면세점 들러서 고가의 상품들을 많이 사갔지만 요즘은 여행 트렌드가 변해 단체 관광객보다 개별 관광객(싼커)이 더 많아졌다”며 “‘싼커’들은 대형 관광버스보다 지하철과 버스 등을 이용해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면세점이 아닌 올리브영이나 다이소 같은 곳에서 저가 쇼핑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면세업계가 부진한 반면 올리브영과 다이소의 실적은 좋아졌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해 1분기 외국인 매출이 글로벌 택스프리(GTF)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63% 증가했다”고 말했다. 다이소의 해외카드 결제금액은 2022년에 전년 대비 300%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엔 130% 증가했으며 올해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약 76%, 결제 건수는 약 61% 증가했다.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의 경우 고객의 90% 이상이 외국인이다. 명동과 홍대, 동대문에 위치한 다이소 매장은 방문객 중 외국인 비중이 50%에 달한다. 개별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의 김, 라면, 커피 등 식품을 비롯해 마스크팩과 값싼 화장품 등을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따이궁’이라 불리는 중국 보따리상들에 제공하던 송객 수수료를 낮춘 것도 면세업체들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따이궁에게 제공하던 수수료를 낮춰 수익성을 개선하려다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면세점 상품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던 중국 보따리상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도 면세업계 침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중국 경기가 오랫동안 침체해 있고 하이난 면세점 등 자국 면세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도 중국 관광객들의 우리나라 면세점 쇼핑을 줄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현재 1380원을 웃도는 등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면세점의 가격경쟁력도 약해졌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면세업계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5월 임원 급여 20% 삭감과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 등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면세점은 “선제적인 비상 경영체제 전환을 통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호텔신라는 지난 3일 자사주를 담보로 1328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만기일은 2029년 7월 5일이다. 교환 대상은 호텔신라 보통주 213만 5000주인데 1주당 교환가액은 가중산술평균주가에서 15%를 더한 6만 2200원이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현대면세점’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재도약에 나선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사명 변경과 함께 국내외 마케팅을 강화해 사업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면세업체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면세업계 관계자들은 부진 탈출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고 그에 맞추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면세점업계 한 관계자는 “매출 규모가 큰 명품 위주 상품에만 주력하고 고객의 소비 트렌드에 맞춰 상품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면세업계 한 종사자는 “여전히 ‘따이궁’이나 단체 관광객을 활용하려고 하는 등 영업 방식이 예전과 비교해 크게 변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한 인사는 “국내 관광객과 해외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라며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상품, 특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K-컬처를 비롯한 한국만의 매력이 강조된 차별화된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양보연 기자 by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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