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기시감 느끼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볼거리 원해…“캐스팅 전략 변화 필요” 목소리도
최근 배우 하정우가 주연한 영화 ‘하이재킹’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IPTV와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때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끌면서 출연작을 대부분 흥행으로 이끈 하정우였지만 최근 받아든 성적표는 시원치 않다.
박보검과 수지, 탕웨이 등 내로라하는 인기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 ‘원더랜드’ 역시 극장 개봉을 통해 100만 관객도 모으지 못한 채 넷플릭스 공개로 직행했다. 배우 손석구가 주연한 ‘댓글부대’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에서도 업계 최고 출연료를 자랑하는 배우들이 줄줄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캐스팅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정우 출연작 내리 세 편 손익분기점 못 넘겨
하정우는 최근 1년 동안 여름 성수기와 추석 명절 등 전통적으로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에 세 편의 주연영화를 내놓았다. 적게는 100억 원대 중반에서 많게는 200억 원대 초반에 이르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이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한때 ‘최연소 1억 (관객) 배우’로 불렸던 하정우의 활약상이 무색한 성적이다.
실제로 하정우가 지난해 7월 선보인 영화 ‘비공식작전’은 105만 관객 동원에 그쳤다. 1980년대 레바논에서 벌어진 외교관 구출 작전 실화를 옮긴 이 영화는 하정우와 주지훈이라는 스타 캐스팅, 영화 ‘터널’로 700만 관객을 동원한 김성훈 감독의 연출, 해외 로케이션을 통한 스케일 등으로 경쟁력을 갖췄지만 관객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9월 개봉한 ‘1947 보스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마라토너 서윤복과 손기정 감독의 실화를 그려 추석 연휴를 공략했으나 최종 관객 수는 102만 명.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인 데다 대규모 호주 로케이션 등을 진행하면서 제작비를 많이 투입했지만 극장 개봉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는 데 실패했고 작품의 얼굴로 나선 하정우 역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지난 6월 21일 개봉한 하정우의 최근 주연작인 ‘하이재킹’의 사정은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7월 30일까지 극장에서 모은 관객은 177만 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1970년대 속초를 출발해 서울로 오던 여객기가 공중에서 납치된 실화 사건을 극화한 영화는 긴박한 비행기 공중 납치극과 당대 시대상을 녹여 주목받았다. 하지만 손익분기점 230만~250만 명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극장 상영만으로 제작비 회수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하이재킹’은 7월 29일 안방극장에서 공개됐다. 극장 상영을 마무리하고 부가판권을 통한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한 선택이다. 제작진으로서는 개봉 신작 효과에 기대 제작비 손해를 만회할 기회를 노려야 하지만, 주인공 하정우의 입장에서는 이번 ‘하이재킹’까지 최종 관객이 100만 명대에 머물면서 세 편 연속 손익분기점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클 수밖에 없다.
현재 하정우는 한국영화의 주연 배우 중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 중 한명이다. 물론 높은 출연료는 그가 수립한 탁월한 흥행 기록을 바탕으로 책정됐다. 1000만 흥행작만 세 편을 보유했고, 약 10년 동안 그의 출연작은 모두 손익분기점을 돌파와 더불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하정우의 전성기’가 곧 ‘한국영화의 전성기’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영화 선택 기준이 확연히 달라지고, 한국영화 침체기와 함께 하정우 역시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전에 많이 봐 왔던 익숙한 스타일의 작품에 대해 관객들이 더는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시감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볼거리와 체험형 관람을 원하는 변화 속에 하정우도 고전하고 있는 셈이다.
#박보검의 ‘원더랜드’ 손석구의 ‘댓글부대’도…
사실 하정우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6월 5일 개봉한 ‘원더랜드’는 박보검과 수지를 비롯해 탕웨이, 정유미, 최우식이라는 화려한 배우들을 캐스팅했지만 극장에서 62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영화 한 편에 모으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했지만, 정작 영화는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290만 명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원더랜드’는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탕웨이가 참여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들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이별한 사람들과 재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내세우면서도 사랑과 이별이라는 서정적인 메시지를 녹여내는 시도가 지나치게 전형적인 구도로 짜여 관객의 호기심까지 끌지 못했다는 평가다.
‘원더랜드’는 개봉 두 달여 만인 오는 8월 1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개봉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한 뒤 일정한 기간을 갖고 IPTV와 OTT 플랫폼에서 공개한다. 이 같은 홀드백은 극장 상영작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최근 중요한 이슈로 부각했지만, 손해가 현실로 닥친 영화들은 당장 제작비 회수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 홀드백이 점차 짧아지는 이유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히는 손석구 역시 이름값이 무색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3월 27일 개봉한 ‘댓글부대’의 손익분기점은 195만 명으로 알려졌지만 영화가 극장 상영으로 동원한 최종 관객은 97만 명에 불과하다.
주연 배우의 출연료가 상승하면 영화 전체 제작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특히 스타 배우들은 중‧저예산 영화보다 빅시즌을 겨냥한 텐트폴 대작에 더 욕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잇달아 손익분기점 도달에 실패한 인기 배우들의 성적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연 배우의 몸값이 곧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와 장르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더는 ‘안정된 흥행’은 이뤄질 수 없다는 메시지가 공고해지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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