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 관련 수백억대, 손 전 회장은 강력 부인…금감원 공개 두고 ‘중징계 맞서 승소 괘씸죄’ 해석도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11일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처남댁, 처조카 등 친인척을 대상으로 부당대출을 실행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기간은 2020년 4월 3일부터 2024년 1월 16일까지다. 손태승 전 회장의 임기는 2018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였다. 손 전 회장 취임 전 해당 친인척 관련 차주 대상 대출은 4억 5000만 원에 불과했다.
대출 내역을 보면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11개 차주에게 총 454억 원의 대출을 취급했다. 해당 친인척이 대출금의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9개 차주 대상 162억 원(19건)의 대출을 포함할 경우, 총 616억 원(42건)의 관련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금감원은 판단했다. 지난 7월 19일 기준, 전체 대출 중 잔액 269억 원에서 부실이 발생(기한이익상실)했거나 연체 중이다. 전체 대출 중 350억 원 상당은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았다.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 과정에서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차주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별도의 사실 확인 없이 대출을 실행했다. 담보가치 평가나 담보 자체에 하자가 있는 대출을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눈길을 끄는 점은 금감원이 이번 부당대출 적발 사실을 밝혔지만, 실제 적발한 주체는 우리은행이라는 점이다. 관련 임원의 퇴직과정에서 벌인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지난 4월 해당 임원을 징계하면서도 금융당국에 보고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금감원이 관련 사실을 밝히기 직전인 8월 9일에야 부당대출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금감원이 수사기관에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우리은행도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밝히면서 언뜻 손 전 회장의 불법 혐의가 굳어지는 분위기지만 손태승 전 회장 측은 이번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아무리 친인척에 부당한 대출에 이뤄졌다고 해도 손 전 회장이 개입 또는 연루된 증거가 없다면 형사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부당 대출과 관련자들의 증언이나 진술이 나올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열린 긴급 임원회의에서 한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임 회장은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 여전히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명백한 지시가 없더라도 암묵적인 간접적 압력 등이 있었다면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에 의해 부당 대출이 가능함을 인정한 셈이다.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을 적발하고도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도 법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41조에 의해 금융기관은 위법·부당한 행위로 해당 금융기관 또는 금융거래자에게 손실이 발생하거나 금융질서를 문란해진 경우 이를 즉시 금융감독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다만 동 규정 시행세칙 제67조는 감독원 검사에서 적출된 금융사고, 여신심사 소홀 등으로 인한 부실여신은 금융사고에서 제외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 의혹에 대해 심사 소홀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주장이 사실이라면 손 전 회장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는 지난 9일 우리은행이 관련자를 경찰에 고소한 결정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불법이 없었다면 고소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은 사건을 금감원이 보도자료까지 내며 대중에 알린 배경을 두고 ‘괘씸죄’ 의혹도 제기된다. 손태승 전 회장은 DLF 불완전판매 책임자로 지목돼 금융감독원에서 중징계를 받았다. 중징계가 확정되면 금융회사 임원직 연임이 불가능하다. 손 전 회장은 금감원 징계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승소했다. 손 전 회장의 뒤를 이어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유사한 소송을 벌여 역시 중징계를 피했다. 이후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책임으로 금감원 중징계를 받은 금융회사 전·현직 최고경영자들도 잇따라 소송으로 맞섰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금융회사 임원에 제재를 할 때마다 소송전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하게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이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손태승 전 회장은 은행장을 포함해 회장까지 만 5년 4개월 동안 CEO 자리에 있었다. 은행장 경력까지 포함하면 국내 금융지주 회장의 CEO 재임기간은 짧게는 9년 길게는 12년에 달한다. 오랜 기간 재임하면서 제왕적 권한을 누리게 되면 그만큼 내부감시 체제는 무력화되기 쉽다. 은행은 상임감사를 두어야 하지만 지분 100%를 가진 금융지주가 선임권을 갖는다.
금융지주는 상임감사 대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권은 회장이 갖는다. 아무리 감사위원이라도 자신의 인사권을 가진 회장과 관련된 비리를 적극적으로 적발하기는 어렵다. 오랜 기간 재임할수록 해당 CEO가 연루된 각종 부정이 은폐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BNK경남은행의 3000억 원 횡령 사건을 비롯해 우리은행까지 대부분의 금융사고는 금융당국 검사가 아닌 은행 자체감사 결과 전모가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자체 감사 시점은 사고 발생 당시 CEO가 퇴임한 이후다. 금융사고 발생 당시 CEO가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도 거의 없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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