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통해 배우로서의 변화 모색…차기작 ‘메이드 인 코리아’에선 야망가 역할 맡아
배우 현빈이 독립운동사를 상징하는 투사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다. 12월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그는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린다. 안중근 의사는 세종대왕, 이순신과 더불어 영화와 드라마에서 꾸준히 다뤄지는 역사 속의 인물이다. 존경받는 실존 인물인 만큼 현빈은 그 역할을 맡기까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결심하게 만든 건 ‘도전’을 향한 갈망이었다.
‘하얼빈’은 개봉까지 아직 3개월을 남겨두고 있지만 영화를 향한 관심은 일찌감치 고조된다. 최근에 열린 제4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되면서 현지에서 호평을 이끌어 내고 있어서다. 북미 현지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얻는 현빈과 또 다른 주인공 이동욱이 영화제의 레드카펫과 공식 상영에 참여할 때마다 현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작품의 완성도 역시 주목받았다. 한국 근대사를 바탕에 둔 영화이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분투와 반전의 메시지를 녹여내면서 해외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13년 만에 해외 영화제 초청받아
현빈은 ‘하얼빈’ 출연을 결정한 건 2021년 말이다. 당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본에서 다시 한 번 한류 붐을 일으킨 상태였다. 영화 ‘교섭’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현빈은 로맨스나 멜로 장르의 드라마에서 벗어나 무게감을 지닌 장르 영화 출연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배우로서의 변화를 모색하고 활동의 무대를 확장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얼빈’을 만났다.
물론 안중근 의사 역할은 현빈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배우로서의 기회'에 집중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방문 당시에 현빈은 현지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로부터 ‘안중근 의사 역할을 맡은 이유’를 궁금해 하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안중근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린 모든 사람들, 모든 독립군의 이야기”라고 답했다. 특정 시기, 특정 인물을 다룬 영화이지만 시야를 확장한다면 아픈 역사를 겪은 어느 나라의 관객이 봐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얼빈’의 연출은 ‘내부자들’과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등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이 맡았다. 재벌과 정치인, 언론이 결탁한 검은 커넥션부터 1960년대 마약 카르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이야기 등 근·현대사를 넘나드는 현실감 넘치는 작품에 주력한 감독이다. 이번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하얼빈역으로 향하는 안중근 의사와 투사들의 여정을 첩보 드라마로 완성한다.
우 감독은 “나치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서양에서 꾸준히 나오듯이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하얼빈’을 촬영하면서 계속 되새긴 말”이라고 밝혔다.
현빈이 그리는 안중근 의사는 조금 다르다. 역사에 기반한 안중근 의사의 엄숙한 모습보다 당시 대한제국을 유린한 ‘일본 늑대의 우두머리’를 처단하기 위해 독립투사들과 함께 첩보 작전을 펼치는 리더의 모습이다. ‘하얼빈’은 역사적인 사실과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도 첩보 장르를 내세우는 차별화를 시도한다.
현빈의 새로운 도전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도 단연 화제를 모았다. ‘시크릿 가든’부터 ‘사랑의 불시착’까지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 드라마의 주연으로 활약하면서 쌓은 뜨거운 인기가 현장에서 확인됐다. 영화제 측은 SNS를 통해 “레드카펫 가운데 가장 뜨거운 함성이 터졌다”고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 반응은 영화 공개 이후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덕분에 현빈은 해외 영화제를 향한 갈등도 시원하게 날렸다. 2011년 임수정과 호흡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후 13년 동안 해외 영화제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날리듯 토론토에서 두 차례 공식 상영한 ‘하얼빈’은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뜨거운 환호에 현빈은 “영화제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하얼빈’의 동지들인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애정을 보였다.
#아내 손예진, ‘하얼빈’ 촬영 때 “모든 부분 서포트”
현빈은 2022년 초 손예진과 결혼하고 그해 첫 아들을 낳았다. 비슷한 시기에 ‘하얼빈’ 촬영에 돌입했다. 결혼하고 아빠가 된 뒤 촬영하는 첫 번째 작품인 만큼 책임감도 컸지만 그의 곁에는 아내가 있었다. 현빈은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 도중 가진 인터뷰에서 손예진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묻는 질문에 “같은 직업을 갖고 있고, 같은 배우이다 보니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부분이 크다”고 답했다. 이어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데 모든 부분에서 다 서포트를 해줬다”면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현빈의 도전은 ‘하얼빈’ 이후로도 계속된다. 일찌감치 차기작으로 우민호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메이드 인 코리아’ 주연을 확정했다. OTT 플랫폼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하는 이번 작품은 격동의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부와 권력에 대한 야망을 지닌 주인공 백기태와 그를 막으려는 검사 장건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빈은 마약의 세계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인물 백기태 역을 맡아, 그를 막으려 모든 것을 내던진 검사 장건영을 연기하는 정우성과 호흡을 맞춘다. 무엇보다 ‘하얼빈’의 우민호 감독과 다시 만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현빈의 선택이 눈길을 끈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지만, 작품과 감독에 거는 신뢰와 자신감이 엿보이는 행보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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